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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하 May 12. 2022

남들에게 서운한게 참 많았다

남들에게 서운한 게 참 많았다


내가 남들보다 좀 유난하다고 싶은 점이 하나 있다. 사소한 것까지 전부 기억하는 기억력이다. 한번 들은 내용들이나 사람에 대한 정보, 사소한 행동이 같이 겪은 에피소드 등 굳이 기억하려고 했던 것도 아닌데 대부분 정확하게 기억한다. (이 기억력이 공부할 때 쓰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공부할 때는 활용을 못 했다는….) 초등학교 때 친했던 단짝친구의 집 전화번호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는 걸 보면 정말 사소한 내용들까지 기억하는구나 싶다.


학창 시절에 이놈의 기억력 때문에 남들에게 서운함을 가득 안고 살았다. 친구가 했던 이야기를 나는 다 기억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은 순간들을 맞닥뜨릴 때 그 섭섭함이란…. 지금의 나였다면 훌훌 털어버렸을 법한 일들도 그때는 그렇게 마음속에 서운함으로 쌓여갔다.


© artkingunit, 출처 Unsplash

내가 생각하는 내 삶의 주체가 타인들로 가득했던 시기다. 자연스럽게 어떤 계기로 나는 스스로가 좀 더 행복하기 위한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때 들었던 생각 중에서 이 서운함을 해결하는 것이 꽤 중요한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나와 시간을 보내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일상에 집중하고 그들에 대한 것들을 기억하는 게 유난스러운 점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행복하기 위해 그것을 속상함이나 서운함이 아니라 내 강점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 생각의 끝에 내가 택한 방법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얻는 피드백이나 감정의 대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나는 H라는 친구를 좋아한다. 그 친구에게 내가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멋진 삶을 사는 사람이 누구냐고 질문을 받으면 주저 없이 그 친구를 꼽을 것이다. 중학교 때 처음 만난 이 친구는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사이지만 나는 그 친구의 생일, 집, 철없던 그 시절 그 친구가 좋아했던 선생님, 처음 대학교에 입학하고 20살이 되어 만났을 때 둘이 나눴던 이야기들 그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추억들을 곱씹고 그 친구가 문득 생각나는 어느 날 안부를 묻는다. 예전의 나였다면 내가 그 친구를 좋아하는 것만큼 그 친구가 나를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서운함이 가득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알고 모든 인간관계가 내 마음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남들에게 어떤 감정의 정량을 바라는 것은 내 감정의 주체가 타인이 되는 행동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에게 내 정성을 쏟고 어떤 사람들에게 마음을 나누는 일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물론 그 정성과 마음 쓰임에 보답 받는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할지라도 내 정성과 감정이 쓸모없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나의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내 자신을 위로하고 칭찬해주면 된다. 타인에게 서운함이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면 스스로 한번 질문을 던져보자. 지금 저 사람에게 집중하는 나는 행복한가? 내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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