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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림 May 14. 2021

빛나고 빛내는

셋, 책일기

친구들~ 지난 가을, 연남동에서 함께 갔던 서점 리스본 기억하시죠? 그때 제가 데려온 책 <프리즘>을 이제야 읽었어요. 두 계절이나 건너뛰고 읽는 이 느긋함을 어찌할까요?

  

<프리즘>은 손원평 작가님의 소설인데 이전 소설인 <아몬드>를 읽고 좋아서 작가님 이름 하나 보고 집어 든 책이예요. 저는 책이든 영화든 되도록 줄거리를 자세히 보지 않고 접하려고 해요. 완전히 하얀 바탕에 나만의 스케치를 하고 싶어서요. <프리즘>이 20대 남녀, 30대 남녀의 옛사랑, 짝사랑,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랑이 담긴 내용인 줄은 사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어요. 간질간질한 로맨스물은 잘 보지 않는 저는 살짝 당황했지만 작가님이라면 지극히 연애소설적인 소설만을 쓰진 않으셨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로 읽어보았답니다. 


친구들~ 프리즘과 사랑의 공통점을 아세요? 있는 그대로도 아름답지만 빛의 각도에 따라 알록달록한 색을 보여주는 프리즘처럼, 사랑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지만 상대라는 빛을 만나 얼마든지 다른 색을 보여줄 수 있는 경이로운 것이예요.

예진이 가장 좋아했던 건 피라미드 모양의 삼각프리즘이었다. (...) 이제 다 됐다고 생각한 순간, 악- 비명 소리가 먼저 터져나왔다. 잔혹한 타격감에 발이 얼얼했다. 이어서 뜨끈한 느낌이 났다. (...)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애정을 쏟았는데 돌아오는 건 도리어 상처와 아픔이라니. 그때 느낀 감정은 어른의 언어로는 배신감이었다. 너무 날카롭고 아름다운 건 결국 속성을 뒤바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걸까.  -p11-13  

그런데 세상 아름답던 프리즘이 뾰족한 모서리로 내 발등을 찍으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져요. 발등에 깊은 상처가 생기면서 프리즘이 꼴도 보기 싫어지듯이, 사랑도 프리즘을 빼닮아서 날카롭게 마음을 베이는 순간 종전의 달콤함을 잃고 증오와 원망만 남아요. 소설 속 주인공들도 함께 사랑을 나눌 땐 더없이 아름답지만 어느 한쪽이 상처를 받으면 처참하게 무너져요. 한때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행복함에 잠 못 이루는 날이 그렇게나 많았으면서,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사랑의 온도는 걷잡을 수 없이 뚝뚝 떨어져 날카로운 얼음결정이 되고 결국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의 가슴팍에 가 무참하게 박혀버려요.


호계는 사람 사이에 맺는 인연이라는 건 자기 자신이 확장되는 것임을 깨닫는 중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연결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단 하나, 언제고 끊어질 수 있는 관계를 수없이 맺으며 살아가게 될 거라는 점이다.  -p210  

저는 친구들의 사랑을 열렬히 응원하지만 정작 저는 지나간 사랑들이 남긴 유일한 교훈이라며 ‘사랑하지 않는 자유’를 품고 있어요. 사랑은 소모적이고 감정 낭비라는 생각... 그러니 사랑 따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


그럼에도 제가 글을 이어가는 이유는 주인공 호계가 생각한 것처럼 사람의 인연이란 언제고 이어질 수도, 끊어질 수도 있다는 문장 때문이예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인연이 맺어지고 끊어지는 것은 사실은 그리 대단치 않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유일한 혹독함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프리즘> 속 그들처럼 인연이란 맺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는 법인데 저는 끊어진 인연에만 연연해서 온 마음을 쓰고 있었어요. 사랑이란 눈으로 보여지는 게 아니잖아요. 오롯이 마음이 느끼고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데 세상의 아름답다하는 사랑을 죄다 보여줘도, 사랑이 제게 다가와도, 제 마음이 유연하지 못하면 저에게는 그 어떤 사랑도 무용한 것이 되어 버리잖아요. 인연이 다가오면 놓치지 말라는 <프리즘>의 조언을 마음에 새기며 친구들에게 일기를 쓰고 있답니다.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빛내주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p261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하기”. 팅팅님이 말씀하셨죠. 공감해요. 좋아하는 것이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일(행동) 일 수도 있죠.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실컷, 신나게 좋아하고 싶어요. 그렇게 반짝이는 나로하여금 누굴 만나든, 어디에 있든, 더불어 빛내주고 싶어요. 반짝반짝~!!

       

-리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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