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책일기
오오,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하던 <셋, 책일기>가 이렇게 다시 이어지다니! 가을이 오고, 시선이 나아가고, 생각이 쌓여가고, 제가 글쓰기를 돌아보는 때마침 “쓰자, 쓰자, 다시 쓰자” 해 준 친구들 덕분에 저는 이렇게 또 글을 써요. 이끌어준 두 친구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요.
제목도 표지도 너무 귀여운 이 책은 모리사와 아키오 작가의 <무지개 곶의 찻집> 이예요. 이 책이 제 곁으로 온건 한창 자극적인 소설을 읽어대던 때였어요. 살인, 추적, 복수, 다시 살인. 죽고 죽이는, 원한과 복수로 가득한 소설들만 읽던 때요. 마치 ‘나는 잔잔하고 포근한 소설이야’ 얘기하는 듯한 매력에 이끌렸나 봐요.
저는 아무리 재미나게 읽은 책도 시간이 지나면 잘 기억나지 않는 때가 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누가 책 얘기를 했을 때 ‘어? 그거! 아 그거 뭐지. 나 읽었는데. 제목이 뭐더라. 암튼 그거!!’ 이렇게 되는 책이요. 그런데 <무지개 곶의 찻집>은 읽던 순간의 감각이 생생해요. 책을 비추던 조명, 살에 닿던 온도, 마음에 일렁이던 감동까지.
각기 다른 이유로 길을 가던 사람들이 길을 잃어서 찻집 <곶>으로 흘러들어요. 소설 문장 중에도 ‘길을 잃어서, 길을 헤매다가’ 하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곶>은 도대체 어떻게 길을 잃고 헤매야 이런 곳까지 흘러가는 것일까 싶은 그런 곳에 있어요. 가파른 오르막, 차 한 대도 겨우 지나갈 것 같은 좁고 외진 길, 한쪽 면은 산이고 한쪽 면은 바다라서 산에 있다고 해야 할지 바다에 있다고 해야 할지 잠시 생각해야 할, 그런 곳에 있어요. 아아! 그래서 찻집 이름이 <곶> 인가 봐요. 곶은 육지에서 바다로 돌출된 땅을 말한다고 하네요? 곶에 있는 <곶>.
찻집 <곶>으로 흘러든 사람들은 저마다 소중한 것을 잃었어요. 사랑하는 아내이자 엄마를 잃고, 삶에 치여 꿈을 잃고, 생활고에 양심을 잃고.... 책의 제목과 표지에서 엿볼 수 있듯이, 처음부터 포근하고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 이 책을 집어 들었듯이, 희망과 감동을 주는 소설의 표징답게 <무지개 곶의 찻집>을 다녀간 이들은 따뜻한 커피로 배를 채우고, 따뜻한 말로 마음을 채워요. 너무나 당연한 공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이들을 지켜보게 돼요. 결말이 뻔히 보이는 소설임에도 반전이 뛰어난 소설보다 오랜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찻집의 주인 에쓰코도 젊은 시절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아픔이 있어요. 에쓰코는 매일 <무지개 곶의 찻집>을 감쌀 오렌지빛 놀과 하늘과 바다와 무지개를 기다리며 살아요. 생전에 남편이 그림으로 그렸던 풍경을 에쓰코도 실제로 마주하게 되리라는 기대로, 그렇게 남편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을 품고. 찻집 <곶>으로 흘러든 사람들 못지않게 에쓰코도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과 다르게 에쓰코가 몇십 년이라는 긴 시간을 좌절하지 않고 기대하며 기다리고 사는 것. 그것은 희망이에요.
커피 한 잔을 타는 동안 내내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이렇게 속으로 염원해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커피가 맛있어진답니다. p71
에쓰코는 커피 한 잔을 내릴 때도 마음을 담아요.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염원하면 정말 커피가 맛있어진대요. 오늘이 아니면 내일, 내일이 아니면 모레, 남편이 보고 그렸던 풍경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매일 같은 시간을 기다리며 ‘볼 수 있다, 볼 수 있다’ 꼭 보게 될 거라고 희망해요. 에쓰코는 우리의 삶도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즐거워져라, 행복해져라, 평화로워져라’ 자꾸 염원하면 정말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요.
문득 제가 친구들에게 소개할 책을 고르면서 <무지개 곶의 찻집>이 떠오른 것은 어쩌면 ‘쓰자, 쓰자, 쓰는 삶을 살자’ 자꾸 되뇌면 정말 이렇게 쓰게 될 것이라는 에쓰코의 주문 같아요 :)
유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