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10분. 평소보다 10분 일찍 일어났다. 얼마 전 생긴 회사 근처 스타벅스에 들렀다 가기 위해서. 엄마에게 굿모닝 인사를 하고 쪼르르 화장실로 가 수도꼭지를 온수 쪽으로 한껏 돌려 틀어놓고 물이 뎁혀지는 동안 양치를 한다. 마지막에 입안을 6번 헹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샤워기에 머리를 들이대고 벅벅벅 머리를 감는다. 샴푸끼가 남지 않도록 꼼꼼하게 헹군다. 머리에 수건을 돌돌 말고 화장실을 나와 방으로 가서 얼굴에 토너를 바르고, 크림을 덧바른다. 거실로 나와 엄마가 챙겨준 분말 유산균을 입속에 털어 넣고 물에 희석한 석류즙을 들이킨다. 이어서 병원에서 처방해준 항우울제를 삼킨다. 다시 화장실로 가 크림으로 끈덕해진 손을 비누로 싹싹 씻고 머리의 수건을 풀어 덜 마른 머리카락을 후드득 털며 말려준다. 곱게 머리를 빗고 나와 엄마와 허그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옷을 갈아입는다. “작년에 벗고 다닌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옷이 없지?” 아직 좀 쌀쌀하지만 산뜻한 기분을 내고 싶어 노랑색의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는다. 블라우스가 튀니까 바지는 검정색으로! 7시 50분, 평소보다 10분 일찍 집을 나선다.
주차장에 세워진 차의 뒷좌석에 점심 도시락과 가방이 쓰러지지 않게 잘 세워두고 시동을 건다. 라디오를 켜자 <조우종의 FM대행진>이 흘러나온다. 도로로 나왔는데 앞에서 커다란 레미콘 차가 느린 속도로 기어간다. 무의식 중에 “아 씨....” 하는 말이 흘러나왔지만 마침 라디오에서 시작된 티아라의 <Bo Peep Bo Peep> 때문에 흥이 나서 욕을 멈추고 노래를 따라불렀다. 신나는 노래 탓에 막힘 없이 20여분을 달려 모락산터널까지 진입해 신호대기를 했다. 차가 멈춘 사이 재빠르게 스타벅스 앱에 접속해 아이스 카페라떼 샷추가 그란데 사이즈 드라이브스루 픽업을 사이렌오더로 주문했다. 잠시 후 진행신호가 떨어지고 3분만에 스타벅스에 도착해 주문한 커피를 받고, 5분 거리 회사까지 좌회전 신호를 대기하는 동안 커피에 빨대를 꽂아 쭉쭉쭉 세 번 빨아 마셨다. 빈 속에 3샷의 고농도 카페인을 들이키면 살짝 속이 쓰린듯한 알싸한 느낌이 드는데 나는 하루 중 그 순간이 제일 행복하다.
자리에 짐을 올려두고 곧장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환기가 되는 사이 가습기에 물을 보충해 가동 시키고, 가방에서 외장하드와 입술보호제를 꺼내고 캐비넷으로 가 가방을 넣고 잠금장치를 잠근다. 이어서 출근한 동료들과 “아직 날이 쌀쌀하다”, “내일 쉬는 날이라 좋다” 라는 안부를 주고받고 창문을 닫고 8시 50분, 컴퓨터 앞에 앉는다. 커피를 쪽쪽 빨아 마시며 행정망에 접속해 지난 밤 동안 도착한 공문들을 살펴본다. 11건의 공문이 새로 도착했는데 내 것이 3건, 동료들 것이 8건이다. 재빠르게 담당자에게 배부해주고, 내 공문은 긴급하게 처리할 것들이 아니니 일단 제쳐둔다. 이메일도 특별히 수신된 것이 있는지 접속해 확인하지만 특별한 것은 없다. 다음날 쉰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붕 떴다. “이렇게 일하고 돈 받아도 돼나” 싶긴 했다.
여유 시간이 나서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펴들었다. 자극적인 소설이라 “정서 안정을 위해 읽지 말까?” 고민했었지만 뒤이어 출판된 <진이, 지니>라는 책이 따뜻한 소설이라고 하기에 한 작가가 다른 장르를 어떻게 풀어가는지 비교해보고 싶어서 <종의 기원>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피와 살인이 등장하는 사이코적인 소재이지만 작가 특유의 시원시원한 문체와 빠른 전개에 뒷이야기가 궁금해 자꾸 읽게 된다. 동료가 읽고 있는 책 재미있냐고 물으며 자신은 요즘 넷플릭스를 자주 보는데 <부부의 세계>가 넷플릭스엔 없어서 아쉽다고 한다. 나는 원체 TV를 잘 보지 않지만 좋아하는 배우인 박정민 배우가 출연한 영화 <사냥의 시간>이 넷플릭스에서만 개봉을 한데다 공유느님이 곧 넷플릭스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얘기가 있어서 넷플릭스 가입을 오조 오백 번 고민 중이다.
점심은 동료 2명과 함께 ‘짜왕’을 끓여 먹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리고 커피포트기에 미리 끓인 뜨거운 물을 붓고 면과 후레이크를 넣고 끓이다가 물을 덜어내고 짜장 분말을 털어 넣고 볶았다. 느끼할 수 있으니 매운 고추를 쫑쫑 썰어 넣자고해서 동료 한 명이 매운 고추 2개를 챙겨왔다. 3명이 짜왕 3개를 해치우고 남은 양념에 밥 2공기를 넣고 볶아 먹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속이 쓰려왔지만 나아지겠지 하면서 연신 물을 들이켰다.
점심을 다 먹은 후 오후 업무 중에도 당장 해야 하는 일 아니면 딱히 손대지 않고 미뤘다. 바람 살랑살랑 날씨도 좋고, 든든하게 배도 부르니 슬슬 졸음이 밀려왔다. 왠지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기 싫어서 동료들도 최대한 여유를 즐기고 싶어 보였다. 4시가 넘어서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속이 계속 쓰리고 배도 너무 아팠다. 화장실로 해결 될 배가 아닌 것 같았다. 칼퇴를 하고 집 주차장에 차를 대고 5분 거리의 동네에 있는 가정의학과 병원에 갔다. 마스크 안끼면 들어오지 말라는 큼지막한 문구에 마스크 꼈나 다시 한번 확인하고, 들어서자마자 손소독제를 바르고 접수를 마쳤다. 대기 환자가 없어 가자마자 진료를 받았는데 늘 앉던 의사 맞은편 의자 말고 정직하게 2m 떨어진 듯한 따로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진료를 받았다. 과도한 커피와 매운 음식 때문에 위염이 발생했을 수 있다고 한다. 3일치 약을 먹어보고 차도가 없으면 위 내시경을 받아보라고 했다. 30대니까 받아보실 때도 됐다면서.... 아직은 약빨 잘 듣는 30대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집에 와서 위염 약을 먹었다. 소화도 안되는 것 같고 속이 편치 않아 밥 생각이 없었다. 저녁은 거르기로 했다. 아침처럼 뜨거운 물을 미리 틀어놓고 양치를 하고, 폼클렌징으로 세수를 하고, 바디워시 거품 퐁퐁 내서 샤워를 했다, 30대라 그런지 살짝 뜨겁다 싶은 물로 하는 목욕이 좋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저녁용 항우울 약을 먹었다. 아침보다 개수가 많아서 삼키기 힘들었다. 갑자기 몸이 노곤해지면서 피곤이 몰려왔다. 책을 좀 읽을까 하다가 그냥 이불에 드러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인스타그램도 보고, 블로그도 보다가 “맞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요금제를 찾아보고 “가입을 해? 말아?” 또 오조 오억 번 고민만 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