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림 Sep 20. 2020

꿈은 내 가슴에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선생님은 첫 질문으로 “장래희망이 뭐예요?” 물으셨다. “선생님이요!“. 어린 나에게 선생님이란 감히 거역하면 안 될 전지전능함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나는 간호사!”, “나는 과학자!”, “나는 경찰관이 될거야”. 친구들도 저마다 품고 있는 장래희망이 있었다. 어린이라면 장래희망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듯, 나에게 제일 궁금한 것은 장래희망이라는 듯, 몇 해 동안 줄기차게 장래희망을 물어대더니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어느 대학 갈거니?”를 물어왔다. 사람들은 더 이상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꿈꾸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어디 소재의 어떤 이름을 가진 대학을 가느냐가 중요했다. 한때는 ”나는 그것이 되고 싶어요!” 라고 말하면 “우와 멋지다! 훌륭한데?” 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니가? 그 성적으로? 좋은 대학부터 가고 말해” 로 받아쳤다. 점점 내 꿈을 이야기하는 게 부끄러워졌다. 꿈을 마음껏 말할 수도 없는 세상이라는 것이 서글펐다. 눈치 보지 않고 꿈을 이야기하고, 그 자체만으로 존중받던 어린 시절이 그리웠다.


대학 졸업 후엔 어디 소재의 어떤 이름을 가진 회사에 입사하는지가 중요했다. 남은 일생을 부대껴야 할 회사를 정하는 기준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남이 보기에 어떻게 보일지, 월급 액수는 얼마인지, 밥벌이가 되는 곳인지만 생각했다. 적당해 보이는 회사에 입사하고, 적당히 업무를 배우고, 동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회사 생활을 이어갔다. “카드 빚만 없어도 당장 때려쳤다” 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읊어대면서 삶을 때려치지 못해 그냥 적당히 살아갔다. 가슴 속 꿈의 자리는 비워진지 오래되어 뽀얗게 먼지가 쌓였고,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다시 자리를 채울 열정은 좀처럼 불태울 수 없었다. “나의 꿈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꿈이라는게 있기나 했던 걸까? 단 한 번이라도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해보기나 했을까?”


어릴 적 꿈꾸는 인생을 펼치라고 배웠지만 꿈과 삶은 서로 눈치를 봤다. 꿈을 쫓으니 삶이 걸리고, 삶을 쫓으니 꿈이 사라졌다. 글을 쓰겠다고 하면 “글은 써서 뭐하게? 책이라도 한 권 내려고? 책은 아무나 내니?”, 노래를 배우겠다고 하면 “가수 될거야?”, 세계 여행을 떠나겠다고 하면 “역마살 꼈니? 회사는 어쩌고?”. 전문 작가도, 가수도 될 수 없으니까, 회사에 출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으니까 번번이 꿈을 놓았다. 꿈을 품어도 ‘무언가’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내 꿈은 피우지도 못하고 시들었다.


여덟 살 꼬마에게도, 서른 줄의 나에게도, 노년에 접어든 우리 엄마 아빠도 꿈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슬프게도 삶의 편에 서느라 꿈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 채 흘려버리곤 한다. 그 수 많은 꿈들 중에 특별히 선택되어 내 가슴에 들어온 ‘나의 꿈’이 그대로 흘러간다니 안타깝고 아깝다.


꿈이라는 것이 꼭 돈이 되고, 결과물이 나와야만 쓸모 있는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여느 때보다 활기차고 생기있다. 내 안에 들어와 내 꿈으로 피어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꿈은 이미 귀중한 가치가 있다. 나는 내게 꿈이 있다는 것, 글을 쓰는 동안 가슴 뜨끈한 열정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언제나 삶만이 우선으로 살고 싶진 않다. 마음에 꿈을 품고 지금처럼 한 발씩 걸어가다 보면 내 꿈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하게 될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불안을 안지 않고 사는 이는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