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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잔잔 May 26. 2020

첫 번째 인터뷰 : 감각

감각과 나의 이야기

감각의 바다는 변화무쌍하다.
뜨거운 용암이 솟구쳤다가 시퍼런 파도가 넘실거리고 우박이 우수수 떨어진다. 한 없이 깊은 바다의 끝까지 들어가보면 황금빛 사막이 펼쳐져있다. 그곳에 외로운 사람이 혼자 산다.  


Q1.

이곳에서 불리고 싶은 이름과 그 이유를 말해주세요. (본명도 물론 가능합니다.)      

감각입니다. 저는 예민하고 기민하죠. 그래서 스스로 괴롭지만 둔한 사람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감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만의 감각을 저는 사랑하고요. 다르게 표현하자면 원초적인 사람이라는 말도 가끔 듣습니다.     

     

Q2.

현재 인터뷰를 응하고 계신 장소와 시간이 궁금합니다. (장소 자체를 묘사해주셔도 좋고 혹은 이 장소에서 인터뷰를 하게 된 연유나, 장소가 지니는 의미가 있다면 덧붙여주셔도 좋아요.)     

지금 일요일 저녁7시. 조금 센치합니다. 제 거실 책상에서 창문을 열어 놓고 느긋하게 인터뷰에 응하고 있어요. 일태기가 심각하게 온 지금 내일의 출근에 앞서 이런 흥미로운 작업을 하게 되어서 특별한 일요일 저녁이 되었습니다.          


Q3.

고개를 돌려 잠시 하늘을 봐볼까요? 오늘의 날씨는 어떤지 자세히 묘사해주세요.     

비가 올 거라는 말에 어제 기어이 나가 카페에 가서 책도 조금 읽고 밤공기를 쐬었는데 아침에 폭우가 오고 날이 좋네요. 하늘은 맑아요. 해가 지는지 반대편 건물에 노란빛이 도네요. 밤이 오고 있습니다.          


Q4.

요즘의 기분을 날씨에 빗대 표현해본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5월의 우박이 내리는 날 같습니다. 아니면 3월의 온 세상이 노랗게 변해버리는 황사가 심한 날. 저는 오늘 올해를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할까 생각했거든요. 뜨끈한 온탕에서, 때를 밀리면서 그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요즘의 저는 그렇습니다.          


Q5.

오늘 했던 생각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생각을 찾아 이곳에 풀어본다면?     

생을 마감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안 남았네요. 7개월간 퇴직하고 있는 돈을 다 털어서 제가 그동안 해보지 않은 것들을 신나게 해보려 생각중이에요. 어느 정도 해볼 건 다 해본 것 같고 지금까지 못 이룬 건 평생 이루기 힘들겠다 판단했어요. 그래도 적어도 죽기 전에 제가 내향적인 성격이라 저지르지 못한 것, 주로 관계에 있어서죠. 그런 것들을 주로 해보고 싶고 코로나와 상관없이 어디로든 홍길동처럼 돌아다니고 싶네요. 어쩌면 동네 누렁이 같이요.          


Q6.

세상에는 셀 수 없을 만큼 저마다 다른 사랑(愛)의 모습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가족, 형제, 친구, 연인처럼 대상도 제각각이고 애증, 정렬, 헌신등 담고 있는 감정도 달라요. 인생에서 당신이 꼭 경험해보고 싶은 사랑의 모습이 있다면 어떤걸까요? 잠시 생각해보고 그 이유와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해주세요.     

저를 아주 잘 아는 사람을 만나서 제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거리감, 공간감을 이해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과 알콩 달콩 최소 1년, 길게는 5년 이상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싸워도 그게 상식적인 대화가 되는 사람과요. 그치만 저는 이걸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좌절감이 옵니다. 지금 다시 꼽자면 저를 아주 닮은 여자아이를 낳아서 저와는 다르게 사랑을 듬뿍 주고 뭐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아이로, 감정 결의 섬세함을 알아주고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면도 더 맘껏 펼치게 응원해주는 사랑을 주고 싶습니다.          


Q7.

내 인생의 전체나 한 부분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제목과 장르로 만들고 싶나요? 왜 그런지, 꼭 넣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지 말해주세요.     

제목 : 꼴리는 대로 살다 죽다.

장르 : 드라마

올해 생을 마감하기 전 7개월을 넣고 싶네요.           


Q8.

특별하게 여기는 물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물건에 담긴 이야기도 함께 해주세요.     

물건이라기보다는 샤샤의 유골함입니다. 아마 평생 저와 함께 하길 바라겠지요. 샤샤는 처음부터 현재도 여전히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완벽한 존재입니다. 보고싶네요.          


Q9.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중 가장 예민한 곳을 순서대로 꼽자면?

(ex. 시각 > 후각 > … )     

촉각, 청각, 후각, 미각, 시각          


Q10.

어린 시절의 가장 강렬한 기억은?     

봄날 밤이었던 것 같아요. 2층 마당에서 가족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옆집 언니도 자기 2층 마당에 있었구요. 가족들은 집으로 들어갔지만 저는 그 언니랑 계속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억에 저는 5살 정도였고 언니는 고등학생이었어요. 언니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고 피아노치기를 좋아했습니다. 건물사이로 뻗은 언니 손은 너무나 하얗고 길었습니다. 나는 그 손을 더 오래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부모님이 불러서 결국 집으로 들어가야 했어요. 언니는 아쉬워하는 날 보며 매우 귀엽단 듯이 수줍게 웃었는데 천사 같았습니다.          


Q11.

'우리의 힘은 우리의 약점에서 자라난다. 그래서 위대한 사람은 언제나 자진해서 낮은 자리에 서려 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이 쓴 <자기 신뢰>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있는데요. 스스로 생각하는 약점이 있다면?     

외로움입니다. 그게 제 아킬레스건이죠. 그런데 그것이 저를 성장하게 하는 것은 이미 끝난 것 같습니다.

         

Q12.

오랫동안 이어져 온 버릇이 있나요?     

없습니다.          


Q13.

현재 어떤 디자인과 색깔의 옷을 입고 있는지 궁금해요. 평소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차림이 있나요?     

지금은 피부와 같은 수면잠옷 차림입니다. 평소에는 심플하고 캐쥬얼한 옷을 좋아해요. 구제샵에서 심플하지만 포인트를 살짝 준 옷을 구매하기도 하구요. 기본은 심플입니다.          


Q14.

이루어지지 않을 지라도, 대통령에 출마한다면 가장 먼저 내세우고 싶은 공약은?     

국회의원들의 연금을 없애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Q15.

내 인생의 BGM을 한 곡만 꼽자면? 그 이유와 주로 어떤 때 그 노래를 듣는 지 궁금해요.     

지금은 잘 듣지 않는데 빌리조엘의 honest입니다. 공무원 공부하던 시절 자주 들었어요. 저에게 아주 중요한 삶의 철학? 기준이었어요. 그러나 저는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 듣지 않아요. 들으면 슬퍼집니다. 공부하던 시절의 고통이 떠올라서, 그리고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요.     

               

Q16. 특별 질문

삶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혹은 가장 크게 겪어온 결핍은 어떤 것인가요?     

11번 질문의 답과 같은 건데 저는 늘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제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아마 오늘 생각한 죽음도 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저에게는 제 1의 목표였거든요.          


Q17.

마지막은 반대로 인터뷰어에게 보내는 질문입니다. 제게 묻고 싶은 질문 하나를 작성해주세요. 이번엔 제가 정성껏 답해볼게요.     

q.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r. 오랜 외출 끝에 돌아온 집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게 사랑은 익숙한 냄새와 물건들이 날 기다리는, 어느새 스르륵 잠들어도 놀랍지 않은 편안한 분위기로 가득한 공간같아요. 가끔은 매일 부대껴야하는 설거지와 빨랫감에 한숨이 나오다가도 열심히 쓸고 닦고 빛내주면 다시 사랑스러워지는 것도 묘하게 닮았어요.

 

⟪ 인터뷰를 끝낸 시각 : 2020.05.24. 19;30 ⟫


보고싶다. 조곤조곤 빛나던 예민한 감각의 바다가 , 이제 지쳤다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할까. 태평양이 되어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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