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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잔잔 Jul 09. 2020

다섯 번째 인터뷰 : 거북이

거북이와 나의 이야기

한 번 신으면 영원히 춤을 춰야 하는 빨간 구두 이야기를 알고 있니? 만약 그 잔혹 동화 속 빨간 구두를 신고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가끔 뭐가 부러운지도 모르고 너를 부러워했는지도.


Q1.

이곳에서 불리고 싶은 이름과 그 이유를 말해주세요(본명도 물론 가능합니다.)      

거북이 

본명이 맘에 들어서 평소엔 이름이 들어가는 별명 혹은 넬 노래 제목이 들어간 별명을 쓰지만 오늘은 새롭게 ㅎ.ㅎ

 

Q2.

현재 인터뷰를 응하고 계신 장소와 시간이 궁금합니다(장소 자체를 묘사해주셔도 좋고 혹은 이 장소에서 인터뷰를 하게 된 연유나장소가 지니는 의미가 있다면 덧붙여주셔도 좋아요.)     

저의 작지만 아늑한 자취방입니다. 아마도 네 평 남짓? 당신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돌아와서 마음이 충만한 밤이에요. 3년차 자취 인생 중 두 번째 집인 이곳은 제게 의미가 깊습니다. 기숙사에서 벌점으로 쫓겨나고 급한 마음에 부모님 몰래 구했던 생애 첫 자취방은 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밥을 해먹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 행위가 어색하다 못해 고통스럽기까지 했죠. 집은 엉망으로 두고 “나는 집안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구나.” 하며 살았습니다. “난 바깥일만 해야겠다.” 하면서요. 그런데 주변이 정돈되어있지 않으니, 나란 사람도 흐트러지고 일도 잘 풀리지 않았어요. 방학동안 언니 집에서 두 달을 지내며 내 공간의 소중함을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잘 먹고, 내 몸과 주변을 깨끗이 하는 것도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도요. 이 곳으로 집을 옮기면서, 집안일에 적성이란 건 없겠다고, 스스로 단단히 살아가기 위해서 누구나 길러야할 능력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요즘은 냉장고도 가득 채워놓고 식물도 기르며 평안하게 지내고 있어요.          


Q3.

고개를 돌려 잠시 하늘을 봐볼까요오늘의 날씨는 어떤지 자세히 묘사해주세요.     

오늘은 비가 오네요. 하늘은 옅은 회색이고 바람이 꽤나 불어요. 요즘 항상 날씨가 흐렸어요. 듣기로는 7월 말까지 장마라는데 앞으로도 비가 오늘 정도만 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비온 뒤에 먼지들이 씻겨서 세상의 색이 선명해 지는 걸 좋아합니다! 특히 나무들이 더 파랗고 촉촉해져서 좋아요. 창문 밖으로 보이는 놀이터의 색깔이 진해져서 예쁘네요. 아이들은 없는 데 쨍한 놀이터가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Q4.

요즘의 기분을 날씨에 빗대 표현해본다면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맑은 하늘에 먹구름 송송. 

요즘 자잘하게 자꾸 아팠어요. 손을 베이고, 피어싱 한 곳이 붓고, 목이 아프고, 코도 막히고, 인공눈물을 잘 못 사서 눈도 간지럽고, 귀에 중이염이 온 것 같고, 심지어 무섭게 열도 살짝! 전 조금이라도 아프면 불행함을 느껴요.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죠. 그런데, 이것들이 흘러가면 아주 높고 푸른 하늘이 나올 것 같아요.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 하늘.      


Q5.

오늘 했던 생각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생각을 찾아 이곳에 풀어본다면?     

제가 학창시절에 좋아하지 않았던 친구들에 대해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와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어요. 전 뼛속까지 이상주의자였고, 눈앞의 점수에 연연하거나 누군가와 경쟁하려는 친구들이 이질적으로 느껴졌어요. 그 당시엔 몇몇 친구들과의 미묘한 다름? 어긋남 같은 걸 느끼면 나와 안 맞는 친구로 재단하고 남몰래 내가 그 친구보다 잘난 사람이라는 착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 MBTI에 빠졌는데, 여러 유형으로 분류된 성격들에 서열이 없잖아요. 외향형이든 내향형이든(IvsE) 감각형이든 직관형이든(SvsN) 각각의 특성이 있을 뿐이죠. 이런저런 분석을 해보며 가깝게는 애인부터, 연락 없이 지내고 있는 그 시절 친구들까지 이해를 해봅니다. 그저 성향이 달랐던 거예요. 미워할 필요도 없었던 거구요. 사실 몇몇은 같은 학교에 다닙니다. 먼저 인사 정도는 건네 볼까 봐요.          


Q6.

세상에는 셀 수 없을 만큼 저마다 다른 사랑()의 모습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가족형제친구연인처럼 대상도 제각각이고 애증정렬헌신 등 담고 있는 감정도 달라요인생에서 당신이 꼭 경험해보고 싶은 사랑의 모습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잠시 생각해보고 그 이유와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해주세요.     

상대의 단점에 절망하고 주는 만큼 돌아오지 않음에 사랑을 숨기다 이별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 함께하는 사람과 - 서로가 서로를 존경하며 서로에게서 영감을 얻는 사랑을 하고 싶고요, 상대가 나를 사랑해줄 것이 보장되어 있지 않아도, 그럼에도 내 사랑을 아끼지 않는 마음을 갖고 싶어요. 마법처럼 완벽한 사람이 있다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보고 싶지만 서로 노력하는 사랑도 할만합니다.          


Q7.

내 인생의 전체나 한 부분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장르로 만들고 싶나요왜 그런지꼭 넣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지 말해주세요.     

하이틴 장르 / 인터뷰 형식

인간관계에 나름의 선이 확실해서 그동안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반응을 세세히 신경 쓰지 않으며 살았어요. 그들의 생각에 별로 관심이 없는 거죠. 필터링해서 좋은 것만 듣거나, 괜히 상처 받을 까봐 모른 척 한 것도 있고요. 다행히도 성격상 그게 가능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웬만해선 갈등이 없었던 것 같네요. 영화를 만든 다면 제가 귀 기울이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혹시 나의 무심함으로 인해 상처받은 적은 없는지, 내가 싫었다면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     


Q8.

특별하게 여기는 물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물건에 담긴 이야기도 함께 해주세요.     

다이어리입니다. 항상 가지고 다녀요. 매일의 생각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기고 힘들 땐 텅텅 비어버리는ㅋㅋ 굉장히 솔직한 물건이에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물건이죠.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모아온 메모노트와 다이어리가 15권쯤 돼요. 죽기 전까지 매년 2권의 노트를 꾸준히 채우고 싶어요. 60살까지 살아내어 100권의 노트를 모으는 게 꿈이에요.           


Q9.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중 가장 예민한 곳을 순서대로 꼽자면?

(ex. 시각 후각 … )     

후각 > 미각 > 청각 > 시각 > 촉각 (맛과 냄새를 잘 기억하는 것 같아요.)     

학창시절에 깊게 마음을 나눈 친구의 냄새가 그립네요. 며칠 전 우연히 연락이 됐는데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여전해서 기뻤어요.          


Q10.

어린 시절의 가장 강렬한 기억은?     

중학생 때 학생회장이었는데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많이 시달렸어요. 말도 안 되게 원칙주의 적이셨거든요. 여름방학을 앞두고 방학식 행사를 준비하던 어느 날 선생님께 “독단적이시다.”라고 했다가, 학생부장일을 그만 둔다며 교무실에서 짐을 빼시고, 우리 반 담임선생님과 싸우시고, 결국 선생님들끼리 파가 나뉘어 저도 손가락질 받고, 교장선생님과 면담까지 했던 기억이, 아직도 끔찍하네요.      

방학식 당일, 부장 선생님 없이 행사를 진행할 수는 없어 사과드리러 찾아갔더니 상담선생님과 울면서 이야기 중이신 거예요. 중3인 나도 말할 곳 없이 책임감으로 견뎌내고 있는데, 솔직히 어른이 학생한테 상처를 받았다며 학교를 뒤집어 놓고 심리 상담을 받는 게 정말 억울했어요. 강당 계단에 앉아 하염없이 울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단상에 올라가 웃으며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방학 내내 불면증과 우울감에 시달렸어요. 이 이후로 부당한 일을 겪으면 이상하게 거북이는 더더욱 참지 않긔....          


Q11.

'우리의 힘은 우리의 약점에서 자라난다그래서 위대한 사람은 언제나 자진해서 낮은 자리에 서려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이 쓴 <자기 신뢰>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있는데요스스로 생각하는 약점이 있다면?     

아빠와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아요. 저보단 남동생을 귀하게 여겼죠. 그는 내가 가장 닮기 싫은 어른이었어요. 아빠가 돌아오면 인사를 피했고, 혼이 나면 대들었어요. 고등학생이 되니 그는 내게 매를 들거나 윽박지르는 것을 멈췄고 동시에 나도 그와의 관계를 포기했어요. 난 이 사실이 들킬까봐 항상 겁났던 것 같아요. 엄마가 누군가에게 이야기할까 봐요. 학교에서 아무리 날고 기어도 마음 한편이 조금 힘들었어요. 또 밖에서 인정을 받아도, 부모님에게 마음 놓고 자랑하기가 괜히 눈치가 보였고요. 어차피 난 완벽한 딸이 될 수 없으니까.     

나이로는 어른이 되고, 난 아버지를 싫어해. 그만한 이유도 있어. 라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프죠. 혹시 내가 결혼을 한다면 그의 손을 잡고 입장 하게 될까. 그가 돌아가시면 난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평생 그를 이해할 수 없을까봐 무서워요.          


Q12.

오랫동안 이어져 온 버릇이 있나요?     

어떤 행동을 제 버릇이라고 여겨본 적이 없네요. 버릇에 대해 처음 생각해보는 것 같아요. 말할 때 표정 변화가 매우 다양한 것? 가끔 제가 말하는 모습이 찍힌 영상을 보면 눈썹과 눈이 현란하게 움직여서 웃기더라구요. 친구들도 자주 이야기하고요. 또 청소만 시작하면 집중을 못해서 한나절이 걸립니다. 제가 방 정리를 했다고 하면 칭찬해주세요.     


Q13.

현재 어떤 디자인과 색깔의 옷을 입고 있는지 궁금해요평소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차림이 있나요?     

사실 이 질문에 가장 먼저 답하고 있어요. 내 옷이 아닌 것을 주워 입고 있어서 괜히 소개하고 싶네. 옷차림을 보려고 후레쉬를 켜고 다리를 봤는데 너무 웃겨요! 바지는 냉장고 바지.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핏. 까만 바탕에 큼직한 흰색 파란색 꽃이 초록 줄기와 함께 그려져 있구요. 위에는 흰색과 까만색 줄무늬 긴팔 티. 시원한 재질. 이건 밖에서 입어도 될 것 같은데 친언니가 잠옷으로 줬네요. (결국 그대로 입고와 당신과 만날 때도 입음)

편하지만 독특한 스타일이 좋아요. 통 큰 청바지, 긴청치마, 멜빵바지에 모자를 얹어 쓰는 걸 즐겨요. 사실 옷에 많은 돈을 쓰거나 싫어해요. 옷을 고르고 사는 과정도 스트레스에요. 예쁜 옷은 많은 데 마음에 드는 옷은 없고, 원하는 걸 전부 살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구제샵에 자주 갑니다. 성치 않은 옷들 사이로 눈에 띄는 옷 한 두 개가 딱 보이거든요. 그렇게 산 옷은 길들이는 시간 없이 바로 제 옷이 돼요.     


Q14.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대통령에 출마한다면 가장 먼저 내세우고 싶은 공약은?     

성인지 감수성 자격증을 개발해서 대입, 취업, 승진은 물론 결혼 시에도 일정 자격을 요구하고 싶네요. 일회성의 학교 성교육이나 연수로는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교재를 집필하고, 인강도 무료로 제공해주고요. 토익보다 성인지 점수에 매달리는 대한민국 어떤가요? 하핫          


Q15.

내 인생의 BGM을 한 곡만 꼽자면그 이유와 주로 어떤 때 그 노래를 듣는 지 궁금해요.     

사실 넬의 모든 곡이 저의 인생 비쥐엠이에요. 상황에 따라 어떤 앨범의 무슨 노래가 듣고 싶은지 떠올라요. 그래도 두 곡을 꼽아볼게요.     

넬 - 섬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단 생각해. 현실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너무 완벽해. 그래서 제발 내일 따윈 없었으면 좋겠단 생각하고. 이 가사 때문이에요. 행복한 순간, 시간을 멈추고 싶은 순간이면 이 노래가 생각나요. 보통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내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서 같이 들어요. 그런데 슬플 때 들어도 힘이 나는 노래에요.      

넬 - separation anxiety

나란 사람 참 힘들죠. 고장 나 버렸단 걸 알아요. 그래도 날 포기해버리진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고쳐질 수만 있다면 사실 난 아주 아름다울 테니. 그러니 부디 날 놓아버리지 말아요.

내 자신이 싫을 때 무한 반복하는 노래.      


Q16. 특별 질문

편한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당신의 모습이 궁금해요어떤 말과 행동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되나요그들의 증언(?)을 옮겨 써도 좋아요.

누구든 1:1로 만나는 자리가 있으면 그 사람의 결을 따르려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내가 느끼기에 편하거나 의지하고픈 사람 앞에서는 무장해제가 되어서, 모든 면에서 두 배가 되는 것 같아요. 발랄하고 긍정적인 것도 두 배, 자아나 호불호가 강하고 덜렁대는 것도 두 배. 제가 가장 편하다고 느끼는 제 애인은 저에게 두 배만큼 더 시달리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만두의 증언 - 애교가 넘치고 자기를 예뻐해주길 바라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치지 않는 장난도 많이 친답니다. 또 그 사람에게 잘해주려고 많이 노력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된답니다.     

너무 좋은 말만 써주었네요. 힘들 때도 많을 겁니다.          


Q17.

마지막은 반대로 인터뷰어에게 보내는 질문입니다제게 묻고 싶은 질문 하나를 작성해주세요이번엔 제가 정성껏 답해볼게요.     

지금 혹은 앞으로의 사랑에 대한 전망이나 기대가 있으신지.

지금의 사랑이 지금처럼만 충만하길 바랍니다. 저를 많이 웃게 만들고, 돌아갈 집이 항상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만들어줘서요. 물론 지금은 넉넉한 데이트 비용도, 결혼이라는 제도적 울타리도 없지만 이렇게 사소해 보이고 일상적인 감정들이 훗날 잃어버렸을 때 가장 가슴 아픈 거라 생각돼요. 그래서 어쩐지 더 바랄 것 없이 지금처럼 밤새 이야기 나누며 친구처럼 스승처럼 연인처럼 보내는 나날들이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싶어요.


⟪ 인터뷰를 끝낸 시각 : 2020년.  7월.  8일. 오전  1시.   7분. ⟫          


빨간 구두를 신은 솔직하고 상냥한 소녀가, 소년이, 아줌마가, 어린아이가 품 속에서 알밤처럼 하나씩 꺼내는 이야기. <주의> 생각보다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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