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2_이런 난리 또 없었다.
평온한 8월 2일 아침이었다. 금요일 아침이었고 출근하지 않은지 만 하루째이다.
문득 그전 주말의 내가 생각났다. 당장이라도 뛰쳐나오고 싶어서 온몸이 배배 꼬이고 여기서 계속 머물다간 내가 정말 미쳐 버릴 거 같았다. 매일매일 소주 두병씩 술을 마시고 버텨보려고 했고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포기했던 순간도 있다.
나에겐 딸린 털 달린 동생(우리 강아지들)이 있었고 내가 일을 관두면 이 녀석들은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하나 싶어서 그래서 더더욱 그렇게 못했던 것도 있다.
아니? 애초에 이 회사가 가족회사인걸 알고 그때 애초에 발을 뺐었어야 했는데, 내 외모가 그렇게 잘나지 않아서 이 정도면 집 가깝고 괜찮지 어쩌고 저쩌고는 사실 핑계고 관두겠다고 말하면 내가 너무 없어 보일까 봐 당장 관두지 못하는 비겁함을 남 탓을 하면서 어영부영 시간만 흘려보냈다.
날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던 남자친구는, 내가 위태로워지기 시작하자 퇴사를 제안했고 한동안 고민을 하고 퇴사를 결심하자 누구보다도 멋지게 날 응원해 주었고, 퇴사 후 매일아침 연락해 내 안부를 묻고 있다. 퇴사 전후로 꾸준히 내 상황을 살펴주는 배려가 참 고맙다.
울화통이 터지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단순히 일이 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밝고 명랑하게 나는 내가 있는 내 자리에서 항상 최고의 선택과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왔다.
왜냐면, 과거에 나는 내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건 너무 쉬운데 남에 주머니에서 돈 나오게 하려면 나는 그 사람에게 간도 쓸개도 다 갖다 빼 줄 요량으로 발발발발 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나온 해괴망측한 생각인지.
1만큼의 일을 해주고 1만큼의 돈을 받아가는 것이 공정한 거래인데 나는 1만큼의 일을 해주고 받아가는 1이라는 돈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2~3 정도는 해 주고 1을 받아야지만 그것이 정당하다 생각했다. 셀프노예가 따로 없지.
그래서 나는 내 책상에선 나름대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이러다 보니 온갖 일들이 내 책상 위로 다 날아들었다.
나를 제외한 회사의 모든 직원들은 말하는 것만 쉬웠다. 자기들은 잘 모른다는 핑계로. 프로그램을 다룰줄 모른다는 핑계로. 항상 실행에 옮기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은 나였다. 처음엔 집에 와서까지 회사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온갖 시도와 고민들을 다 했다. 그리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면 그것이 당연한 일인 양 그들은 여겼다.
하다못해 초등학생도 가르쳐 주면 10분만에 만들어 낼 정도의 수준을 나에게 요구 하는것을 보며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다. 어느 순간 지겨워졌다. 도대체 내가 이 회사의 대표도 아닌데 왜 나만 이렇게 만능이 되어 똥구멍이 빠지도록 고생을 해야 하나 싶어서 그래서 신물증이 났다.
하다못해 내가 진행하려는 기획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오라고 날 쥐어 짤뿐. 나에 대한 인정은 한달에 한번 떨어지는 그 월급 뿐이었다.
얍실 얍실하고 달디단 고시히카리로 막 지은 쌀밥은 사라졌고, 찰기 없이 거칠고 휘휘 날리는 안남미로 지은 밥이 남았다. 몇일전 간단한 일을 도와달라며 연락이 왔는데 모른다고 하기도 그렇고 그냥 해줘버렸다. 이것도 어느순간 끊을날이 오겠지.
요즘 나는 너무 편하다. 그리고 불안하지도 않고.
공황이 찾아올 주기가 되었는데,
요즘은 아주 평온하다.
말그대로 편안 그 잡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