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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은서른아홉부터 Aug 09. 2024

내 어항의 완전 자본잠식 사건

조개물벼룩 퇴치작전


나에겐 조그만 어항 두 개가 있다. 거창한 것을 키우는 건 아니고 색깔이 예쁜 애완새우 두 종류를 키우면서 시간 오며 가며 새우 늘리는 재미에 8개월 가까이 운영 중이다.


10마리로 시작해 100여 마리로 불어나는 기염을 토해내고 역시 나는 똥손이 아니었다며 기뻐했던 시절도 잠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었나? 휑해 보이는 어항이 너무 싫어서 여기저기서 수초를 사서 꽂아 놓고 불어나는 새우의 수와 그리고 건강하게 자라는 수초를 보면서 기뻐하던 시간도 잠시.


2mm 정도 깨알만 한 정체불명의 무언가 + 잡초 수준으로 엄청나게 늘어나서 이게 어항인지 풀통인지 모르게 어항을 잠식해 버린 수초 +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 의문일 뿐인 해캄이 어항의 지분을 늘려가 시작하고, 새우의 수가 점점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대 호황일 때는 100마리가 넘었던 게 금방 10마리도 남지 않은 상황이 돼버리고 말았다. 이걸 회계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자본잠식인 상황이다. 


정체불명의 무언가 도대체 이게 무엇인가. 인터넷을 보며 찾아낸 결론은 이 녀석들은 조개물벼룩-씨앗새우 라고 하는데, 이 녀석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새우 밥 먹으라고 던져 넣어준걸 자기들이 버글버글 모여 앉아 새우는 오지도 못하게 하고 새우는 매번 1~2주마다 한 번씩 성장하기 위해 탈피를 하는데, 탈피하는 그 순간 약해진 새우를 우르르 몰려들어 산채로 뜯어먹는 걸로 사냥하고 있는 것이다.


어항을 리셋하고 끓는 물에 삶아 다시 세팅하기엔 작게는 1~2미리 정도의 새우까지 잡아 내는 일이 너무 고통인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방치하고 다 죽인 다음에 다시 시작하기엔 양심에 찔렸다. 사실 두 번째 방법을  쓰려고 했는데 문득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포란해서 돌아다니는 엄마새우를 보며 그날 나는 각성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희들의 보금자리를 돌려주겠노라고. 어떻게든 회생해서 자본잠식인 이 더러운 상황을 벗어 나고야 말리라고.




나는 이 녀석들을 퇴치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먼저 뜰채로 건지는 방법을 쓰기엔 이 녀석들의 움직임이 너무 잽싸고 새우를 다치게 할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뜰채로 건지고자 한다면 수십 번을 어항을 휘젓어야 하고 그렇게 딸려 나온 이 원수덩어리들은 몇 마리나 될 것이며, 어항을 휘적거리느라 주변에 물이 튀거나 넘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변에 콘센트들은 어떻게 하고? 그래서 뜰채신공 기획안은 리젝.


두 번째, 몇 날 며칠이 걸리든 새우를 한 마리씩 구출해 내고 잡아 내어 다시 어항을 세팅하기엔 커봤자 2~3cm 막 태어난 새우들의 크기는 2mm~3mm 정도밖에 안 되는데 이걸 어느 세월에 건져내고 또 건져낸 이것들을 어디다가 두겠느냐고. 그래서 이사작전도 리젝.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서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해야 하나? 거의 두 번째 선택 안을 해야 하거나 그냥 다 갖다 버리고 어항을 새로 세팅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이 날 구원하셨다.


조개물벼룩을 스펀지 여과기와 자작 부화통으로 건져 내는 아주 간단하고 깔끔한 방법


진즉에 내가 이 영상을 알아봤더라면, 그렇게 고통에 몸부림치지 않았을 텐데. 왜 이제야 이 알고리즘을 나에게 내놓는 건가 유튜브를 원망할 시간도 없다. 나는 당장 실행에 옮겼다. 먼저 거대한 풀통이 되어버린 내 어항에 수초를 90%가량 뜯어 냈다. 수초 뜯어 놓은 거만 해도 10L 쓰레기봉투에 가득 버리는데 새삼 새우들에게 미안한 맘뿐이다.


수초가 막고 있던 수류를 해결하고, 나는 집에서 놀고 있던 스펀지 여과기에 두 개를 갖다 꽂고 물이 나오는 출수구 부분에 전날 쿠팡에서 미리 사놓은 자작부화통을 갖다 댔다. 부글부글부글 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 원수덩어리 박멸작전이 시작되었다.


30분 만에 생포된 나의 원수덩어리들


이리저리 휘휘 날아다니다 여과기 대롱으로 쏙! 하고 빨려 들어가는 모습은 묘한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질 정도로 통쾌했다. 30분마다 한 번씩 부화통 빼내 화장실로 가서 변기에 내리고 깨끗하게 물로 헹궈서 갖다 받치길 몇 번. 그렇게 몇 차례를 반복하자 눈에 보일 정도로 원수덩어리들의 양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것은 누구의 탓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데, 우리나라에서 속칭 '물생활'을 하는 사람을 상대로 직업을 가지고 먹고사는 사람들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한다.


정직하게 영업하고 정직한 생물로 정직하게 고객을 대하는 그런 업체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단가'로 고객의 혼을 빼놓고 막상 고객에게 보내는 생물은 병에 걸려 있거나 혹은 기생충이나 저런 불청객들이 딸려 들어있는 그런 불량품을 파는 업장도, 정직한 업체만큼이나 많다.


애초에 나는 자신의 어항에 문제가 생기면 어항은 더 이상 상품으로 취급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완전 박멸 혹은 치유 후에 고객에게 보내거나, 아니면 그냥 애초에 자기가 평생 품에 끌어안고 살던가. 저 불청객이 딸려온 업체가 딱 집히는데, 차마 말은 못 하지만. 진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애초에 내 어항에 있었을 리는 만무했고(왜냐면 내 새우는 내가 직접 가서 골라 업어온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자연발생이라고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수돗물에 저런 벌레의 알들이 염소소독에도 버텨서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박멸작전은 70% 정도 성공의 갈림길에 놓여있다. 알의 상태로 어항에 남아있는 개체를 생각하고자 한다면 앞으로 한 2~3주 정도는 상황을 지켜보며 여과기 두 개 말고 하나로 줄이든 해서 완전박멸을 노려볼까 생각 중이다.


회생절차 밟고 있으니 조만간 건강하게 봅시다. 오늘도 힘내라 새우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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