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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은서른아홉부터 Jun 22. 2024

퇴사를 준비하며 (5)

우울증 그리고 당신의 장모상

어느 정도 내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건 있었지만, 그래도 아니겠지 모른 척 냄새나고 벌레 끓는 냄비를 대충 행주 정도로 덮어 놓은 채 지내왔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건, 매일 밤마다 나는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약국에서 파는 수면유도제를 먹고 잠자리에 눕게 되면, 새벽에 갑자기 일어나 앉은 채로 몽롱한 정신으로 앉아 누군가와 열심히 대화를 나누다 다시 앉은 채로 잠에 든다던지, 폭언이나 욕설을 실컷 퍼붓고 다시 자리에 눕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다시 또 냄새나고 벌레 끓는 항아리를 품에다 앉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과 아무렇지 않은 느낌으로 회사를 출근했다.


5월 말일까지 그리고 6월 말일까지 그리고 7월 말일까지, 지금까지도 계속 내 퇴사일정은 미뤄지고 있고 이 상태로 버티다간 회사에서도 어떤 돌발행동이 일어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나는 마음먹었다, 분명히 나는 7월 말일부로 설사 후임이 정해지지 않았더라도 분명히 나는 퇴사하고야 말 것이라고.


내 우울증은 5월 1일 진단받았다. 무기력해지기 시작하니 제일 먼저 변하는 건 세탁기와 싱크대와 내 집이었다. 세탁물은 점점 쌓여만 가고, 먹다 남은 배달음식과 쓰레기는 싱크대에게 가득 쌓이고, 집은 계속 쓰레기 하치장의 전초단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매일 남자친구는 집에 들러 집을 청소해 주다 도저히 안 되겠다며 거의 반포기를 한 상황까지 치닫고 말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어느 날 새벽 꿈자리가 너무 사나웠는데 내 앞까지 다가온 미지의 물체를 도저히 못 견디겠기에 소리를 지르며 그걸 주먹으로 갖다 쳐 버리며 잠에서 깼다. 옆에서 잘 자고 있던 강아지는 봉창에 날아온 홍두깨 같은 내 주먹에 맞고 혀만 날름 거리며 나를 원망스럽게 보고 있고 나 조차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정말 강아지 보다 내가 먼저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5월 1일 노동절날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병원으로 직행했다. 병원으로 가게 된 것도 중간에 회사와 낀 사연이 있었지만, 이는 나중에 퇴사를 무사히 마치고 나면 풀어낼 생각이다. 의사 선생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봇물 터지듯 터졌고, 간단한 검사로 나는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일주일치 약을 처방받았다.


약을 먹고 나면 느껴지는 웅.... 한 느낌과 마치 수면아래 내가 있고 사람들은 수면바깥에서 날 향해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는 거처럼 느껴졌다. 의사소통이나 반응이 예전에 비해 한 70% 정도 둔화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고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약을 먹는 건 중단해 놓은 상태이다. 회사의 위치가 마을버스 한 대가 1시간마다 한 대씩 있고 연차나 월차는 명시만 되어있지 치료 한번 받을라 치면 온갖 눈치와 억압은 다 받아야 하는 탓에 상담이든 투약이든 모든 일정은 내가 무사히 회사를 퇴사한 이후로 미뤄두고 있다.


내가 정말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사장아들의 장모님이 돌아가셨다. 명확히 이야기하자면 사장 아들의 예비장모님. 


너무나도 아까운 나이에 일찍 돌아가시게 된 건 너무나도 안타깝고 애달프게 생각은 한다. 나도 삼일 내내 맘이 무겁고 안타까웠으니 말이다. 무사히 상을 치르고 돌아온 이후, 근조나 부조를 해주신 거래처에 대한 감사인사를 나에게 대신 써 올려보라니^^...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게 말인가 똥인가 싶어서 한숨부터 터져 나왔다. 공은 공 사는 사 공사 따지기는 엄청 좋아하더니 이런 건 공사구별이 안되시는지, 이걸 어디서부터 짚어야 하나 싶어서 아침부터 울화가 치밀어 눈물까지 울컥 나려고 했다.


그리 살다 그리 죽으라고 나 뒤에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겠고, 설사 온다 할지라도 그 후임은 어디까지 해주려나 모르겠지만 그냥 여기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고, 이 회사는 이제 더 이상 안 되겠구나. 더 있다간 내가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다시 한 번 더 다짐한다. 나는 7월 말일부로 관둘 것이다. 이 늪지대 같은 곳에서 탈출하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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