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거대한 축복: 첫 직장의 멘토들

<권고사직받은 억대 연봉자의 사업 도전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by 투워즈

3년 3개월, 첫 직장에서 보낸 시간이다.

참 좋았던 동료들, 고마운 선임들도 많이 계셨지만 특별히 두 분의 멘토에 대해 회고한다.


내가 속한 곳은 지멘스 헬스케어 사업부의 의료기기 신제품 개발 업무를 담당했던 PLM 부서, PM(Project Management) 팀이었다. 이사님 이하, 약 20명 정도의 부서원들로 구성된 조직이었는데, 역 피라미드로 된 직급 구성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직급 구성으로 보면 과장급이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차장 > 대리 > 사원 > 부장 순서로 많았다. 아마도 연구부서의 특성상 석사, 박사급 엔지니어분들이 많아서 이런 구조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신입사원이었던 나의 직속상사분 역시 책임연구원님(차장)이셨는데, 이 분이 첫 번째로 소개할 나의 멘토다. 영어 이름은 라울(Raul). 회사 안팎에서 에이스로 인정받았던 분이시고 실력뿐 아니라 인성, 그리고 팀과 부서에 대한 헌신이 남다른 분이셨다. 승진도 빠른 분이셨다 보니 호칭이 계속 바뀌었는데, 첫 면접 때는 선임님(과장)으로 불렀고, 함께 근무할 때는 책임님(차장), 퇴사 후 사석에서 뵐 때는 수석님(부장)으로 불렸다.
(편의상 이번 글에서는 나에게 가장 익숙한 "책임님"으로 호칭한다.)


Raul 책임님과의 첫 만남은 특별했다. 서류 합격 이후 첫 면접일자가 잡히고, 나는 면접장소를 먼저 둘러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다짜고짜 회사 건물로 찾아갔다. 건물 앞에 서보니 한 번 사무실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건물 층별 안내도에 따라, PLM 부서가 위치한 3층 보안 게이트 앞까지 갔다. 마침 청소아주머니가 계시기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여쭤보니, 보안 때문에 어렵다며 거절하셨다. 그때 내 옆에서 문을 통과하시는 분이 계셔 그분에게 목례를 했는데, 그분은 나를 협력사 직원으로 아셨는지 문을 열어주셨다. 그렇게 3층 PLM 사무실 앞까지 도착했다. 마침 사무실에서 나오는 분이 계시기에 "제가 곧 면접을 볼 예정인데 혹시 사무실을 둘러볼 수 있을까요?"라고 여쭈었더니 어떤 팀 면접인지 물으시고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직원 한 분을 불러주셨다. 아까 보안 게이트를 열어주셨던 그분이었다. "아, 면접 전에 오신 거예요? 그것도 모르고 문 열어드렸네요." 멋쩍게 웃으며 친절하게 인사해 주셨다. 나는 그 분과 다소 뻘쭘하게 복도에 서서 회사 및 부서에 관한 설명을 5분가량 들었고, 1층 건물 출입구까지 배웅해 주시면서 5분~10분 정도 더 얘기를 나누었다.

면접 당일, 회사 미팅룸에 도착하여 면접을 준비했다. 몇 분 뒤, 바로 며칠 전 뵈었던 그분이 부서장님과 함께 면접관으로 들어오시는 게 아닌가. 그때까지만 해도 지원한 팀의 직원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분이 PM 팀장님이라는 사실을 면접장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채용 마지막 단계까지, 나를 포함한 총 두 명이 접전이었는데 최종 결정에서 "이 친구가 더 성실할 것 같다"는 PM 팀장님의 추천 덕에 내가 최종 합격되었다고 들었다.) 이렇게 첫 멘토, Raul 책임님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


Raul 책임님께 정말 감사한 것이 있다. 책임님은 크고 작은 업무미팅, 세미나, 타운홀 등의 다양한 일정들이 마칠 때마다 항상 나에게 이렇게 질문하셨다.


윤수 씨는 (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당신의 생각을 나누기 전 매번 나의 생각을 물어보신 책임님. 나의 생각을 궁금해하시고, 나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충분히 경청하신 후에 동의를 하시거나 당신의 다른 의견을 들려주신 직속상사. 이 외에도 감사한 것들이 많지만 나는 책임님의 "질문"이 참 좋고 감사했다. 까마득한 신입사원이자, 직속 부하직원이었던 나를 질문과 경청을 통해 존중해 주신 그분의 모습이 참 멋졌다. 아니, 지금 와 생각해 보니 단순히 멋진 것을 넘어 신기하기까지 하다. 책임님은 어떻게 그러셨을까?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내가 차장인데, 신입사원이 들어왔다면 나는 하나라도 더 주입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가 무슨 얘기를 하든, 현실과 협업에서 동떨어진 얘기일 가능성이 많을 텐데, 후임과의 대화가 아니라도 위, 아래로 무수히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꽉 찬 일과와, 그로 인해 거의 매일 야근할 수밖에 없던 그 터프한 일상 속에서, 나는 과연 그 까마득한 후임의 의견을 매번 먼저 묻고 그렇게 경청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 앞에 명확한 두 가지의 사실이 밝혀진다. 하나는, 나는 그렇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10년 여의 직장 생활 중에서 후임을 받았던 적이 네 번 정도 있었는데, 나는 전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다른 하나의 명확한 사실은, 그런 책임님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금의 나"는 어떤 나인가.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10년 여의 직장 생활 속에서도 '나의 무언가'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나, 그리고 세상에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늘 믿고 살아가는 나, 그렇기에 누군가와 의견이 맞지 않아도 상사로부터 눌림을 받아도 주눅 들지 않고 나 다움을 올곧게 지켜갈 수 있는 나, 내가 사랑하는 이런 나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나의 첫 멘토이자 첫 상사 Raul 책임님이 계셨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가끔씩 투정을 부렸다. "책임님, 이렇게 하면 우리가 얻는 게 뭐예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그분은 항상 같은 대답을 했다. "사람을 얻잖아. 이렇게 해서 윤수 씨를 얻었잖아."


나는 그 의미를 잘 몰랐다. 어쩌면 아직도 그 의미를 다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나에게는 아직도 '사람'보다 '성과'가, '사람'보다는 불합리함을 바로잡고 싶은 일종의 '정의감'이, 그리고 '효율'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존경하는 나의 멘토, Raul 책임님과의 수많은 추억들을 뒤로한 채, 첫 멘토 이야기를 마친다.




두 번째 멘토는 전무님이다. 영어 이름도 한글 이름과 동일하게 사용하셨는데, 영문 이메일에서 만큼은 "JK JMN"으로 불리던 분. (참고로 JMN은 전무님(Jeon Mu Nim)의 이니셜이다. 이 JMN이라는 단어를 외국인들과의 이메일 소통에서 늘 사용했던 사실은 그때도, 지금도 재밌게 생각된다.)

JK 전무님(JMN)과의 업무 상 접점은 거의 없었다. Raul 책임님과 비교해 보자면 거의 100분의 1 정도도 못 뵙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종종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그분의 리더십, 소통 방식은 참 닮고 싶었다. 또 중요한 모임 때마다 입으셨던 베이지색 밝은 정장의 그 세련된 모습, 그리고 법인차량으로 지급된 흰색 G80에 타고 내리시던 그 멋진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렇게 전무님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는 나였지만, 또 전무님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업무적인 가르침을 주거나 하신 적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JK전무님을 첫 직장에서의 중요한 멘토로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다음의 일화 때문이다.


JK전무님은 나의 '퇴사'에 큰 기여를 해주신 멘토였다. 그분은 나의 다음 꿈과 다음 계획에 대하여 가장 투명하게 이해해 주셨고, 또 가장 솔직한 조언을 해주셨다. 나는 여러 번 밝힌 것처럼, 첫 직장 지멘스를 다니며 세계를 향한 꿈을 꾸었다. 동시에 나는 늘 40대에는 사업을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해외로 취업하는 방향과 해외 MBA를 가려는 방향, 크게 두 가지의 방향으로 고민했고, 이 고민에 관해 당시 신뢰하는 여러 분들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같은 부서에 계셨던 몇몇 상사와 동료들은 비슷비슷한 결로 조언해 주었다. 조언인 즉 "네가 속한 곳에 최선을 다하면 기회가 온다"는 말씀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JK전무님을 찾아가 조언을 받기로 결심했다. 전무님의 비서셨던 K 차장님께 일련의 고민을 말씀드리고, 이러한 사유로 전무님과 일대일 미팅을 주선해 주십사 부탁드렸다. 차장님은 나를 귀엽게(?) 봐주시며 전무님께 한 번 여쭤보겠다고 하셨다. 감사하게도 전무님과의 미팅 일정이 잡혔고, 며칠 후 나는 전무님의 사무실에 찾아뵈었다.

나의 생각을 하나씩 말씀드렸다. "저는 사업가가 되고 싶고, 해외로도 가고 싶습니다. MBA도 고민하고 있고 해외 근무도 꿈꾸고 있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들으신 전무님은 나에게, 이렇게 조언해 주셨다.


"윤수야, 너 사업가 되려면 여기 있으면 안 돼.
여기는 전문가 만드는 곳이지 사업가 키우는 곳 아니야.
사업가 되려면 중소기업 사장님 밑에서 일해야 돼."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지난 3년 여의 시간 또한 소중했고 아쉽거나 후회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정말 이제는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분의 조언은, 마치 지멘스라는 조직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투명하고 솔직한 조언이라고 느꼈다. 그렇게 나는 미국에 있는 중소기업으로 이직할 수 있었고, 그분의 말씀대로 중소기업 사장님 밑에서 일할 수 있었다.


전무님과의 1:1 미팅이 있고 나서 2~3년 후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첫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의 방향이 구체화될 즈음 전무님 생각이 났다. "차장님, 저 한국 와서 사업 시작했어요. 전무님과 한 번 더 미팅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전무님께서는 이번에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셨다. 작은 편지지를 사서 전무님께 감사의 편지를 적었다. 그리고 2~3년 전 바로 그 사무실, 나에게 첫 직장을 떠나 더 큰 세상으로 떠나갈 수 있도록 조언해 주신 바로 그 사무실에서, JK전무님을 다시 뵈었다. "전무님, 그때 너무 감사했어요. 그 덕분에 제가 아직도 너무 부족하지만 사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나는 짧은 인사와 함께 편지를 건넸다. 전무님은 편지를 바로 읽으시고는, 눈시울이 붉어지시고 눈가가 촉촉해지셨다. "윤수야, 고맙다. 근데 나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니야. (웃음)"


사업가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다시금 준비하는 지금, 나는 좋았던 JK전무님이 다시금 생각난다. 몇 년 전 부사장으로 승진하신 것까지는 전해 들었는데 현재 어떻게 지내시는지 잘 알지 못한다. 두 번째 사업을 어느 정도 구체화하고 나면 다시금 한 번 찾아뵙고 싶다.


첫 직장.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방황하는 사회로의 첫걸음. 나 역시 그러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두 분의 멘토분들, 이 거대한 축복 덕에 첫 직장에 너무도 감사히 입사하고 재직하였으며(Thanks to Raul 책임님!), 또 감사히 퇴사했다(Thanks to JK전무님). 그분들께서 마련해 주신 단단한 기반 위에서 그다음 걸음을 내딛으려 한다.




2025년 7월 10일(목), 7월 11일(금) 일과를 공유합니다.

- 지난 6월 12일, 첫 브런치 글을 적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지친다 싶었는데, 딱 한 달이 되었네요. 뻔한 꾸준함, 정직함, 눈앞의 단계에 몰두하자는 그때의 다짐을 다시금 새겨봅니다. "나는 괜찮다"는 말보다, 정말 "괜찮은 삶"을 살기로 다시금 다짐합니다. 인생의 때는, 정말 좋은 기회는 노력으로 붙잡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하늘이 정해주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때에 준비된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가, 그래서 그때를 마침내 잡아낼 수 있는가는 나에게 달린 것 같습니다.

조급해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때가 왔을 때, 그 '때'의 가치를 알아보고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그렇게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또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뤄가는 한 사람으로서 사용될 수 있도록, 뻔한 꾸준함을 유지해가려 합니다.

- 금요일 새벽 여느 때처럼 F45 운동을 하는데, 오른쪽 위쪽 가슴에 통증이 있어서 중도에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이후로도 조금씩 아픈데, 다행히 그냥 근육이 놀란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근육 운동은 한 주 정도 쉬고, 오는 한 주는 달리기만 꾸준히 해보려 합니다.

- 아침, 점심 식비가 조금씩 부담이 되는 듯하네요. 건강을 위해서라도 집에서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쿠팡에서 도시락을 샀고 이제 찌게든, 국이든, 여러 반찬이든 직접 요리해서 아침/점심을 챙겨 다니려 합니다. 다짐만큼 잘할지 모르겠지만 저의 건강과 지갑(?)을 위한 노력이 저뿐 아니라 가족의 건강에게 좋은 기여를 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P.S.) 이 사람은 왜 자기 일상을 나누고 영상까지 찍어서 올릴까 궁금하신 분들도 계실 것 같아, 그에 대해 기록한 브런치의 첫 글을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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