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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윤 Feb 27. 2017

런던에 이르는 가장 빠른 방법

생각하는 늑대 타스케를 읽고.

삶의 어느 순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영국의 끝자락에서 런던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 무엇일까?"

오늘 그 질문을 다시 만났다. "생각하는 늑대 타스케"라는 책을 읽던 와중이었다. 처음 그 질문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책의 이야기가 궁금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언제나 이야기는 빠르게 읽어나가길 좋아하는 나는(어느정도냐면 한 문단을 처음부터 읽어 나가다가 갑자기 중간이나 끝을 읽다가 다시 흐름을 따라 읽기도 한다. 읽는 그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것일까?) 말 그대로 인지적 구두쇠의 상태였다. 한편 책을 읽어나가다보니, 무시했던 그 질문이 소제목이 되어 내 눈에 걸렸다. "런던에 이르는 가장 빠른 방법." 두서없는 내 읽기 습관으로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던 단어들이 그 소제목 주변의 배열에 정렬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 공백에서 '좋아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간다? 좋은 대답이다. 아, 아냐, 좋아한다고? 좋아하는 사람과 간다면, 좋아하는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이며, 더 빠르지 않을까. 맞아. 바로 그거야. 이제 기억이 나는구나.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어느 과거에 내가 이 질문을, 나답게도 슥슥 읽어 내려버리고 답이 주는 기발함만 골라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책을 읽어나가자 과연 내가 떠올려낸 그 대답이 나타났다.

책의 내용과는 달리 나는 이 문제를 내 통찰로 풀어낸 것이 아니다. 그저 정리되지 못한 생각의 조각 중 내 기억을 점화시켜줄 키가 하나 있었던 것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낸 편지에 적혀 있던 문제. 사랑? 좋아함? 기억은 언제나 그렇게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다만 뿌듯한 것이 하나 있다면 내 사고의 자취가 아주 선명히 드러나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항상 날카로운 사고에 대한 동경과 갈망이 있다보니 이런 식으로 내 사고의 흔적을 좇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나의 사고가 어떻게 동작하며, 거기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알게 되는 것. 어지간하게 통제된 상황이 아니면 이런 경험은 드물다. 항상 내 사고는 주변 요인과 그로 인한 잠재적 의식(무의식처럼 당장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주변 상황과 상호작용 하거나 몇 가지 생각의 찌꺼기들이 맞물려 나타나는)에 영향을 받아 항상 인과관계를 좇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전 애인과 헤어진 상황이고, 그로 인해 갈등하고 있다. 그 편지는 전 애인에게서 온 것이며, 그 질문은 전 애인이 질문 던진이다. 나는 거기서 동질감을 느꼈고, 전 애인을 떠올렸다. 아마 생각 조각 사이에 좋아함이라는 개념이 섞여 있었던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내 뇌속에서, 좋아함이라는 개념에 연결되어 있던 다른 개념들이 점화되며 과거의 그 기억이 살아났다. 그 점화 과정까지 일일이 좇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어느 정도라도 인과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흥미롭고도 흥미롭다.

이제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글을 쓴 이유는 책을 읽었으니 뭐라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니까.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그런 메세지를 던진다. 사람에게 뛰어 들라고. 맞는 말이다. 송충이가 되기 위해서는 솔잎을 먹어봐야 한다. 책에서 언급된, 사고의 양적 증대가 질적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말이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내가 누군가를 분석하며 산다면 나는 늘 하나의 잣대만으로, 망치를 들고 모든 문제를 못으로 보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항상 다른 이들에게 임하며 그들의 사고와 시각을 탐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늑대가 알고 싶으면, 늑대를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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