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서비스가 지향해야 할 설계의 방법
오랫동안 서울에 살다가 부산에 내려와서 처음 겪었던 불편은
지하철 의자 간격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딱 다섯 명이 앉으면 될 자리를 여섯 명이 앉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한 자리가 남았다고 꾸역꾸역 앉게 되면 옆 사람들이 불편하게 되고
그 불편은 서로 간의 감정 대립으로 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다툼은 흔히 시민의 예의 부족이나 개인적 성향 문제로 치부된다.
그러나 조금만 구조적으로 들여다보면 그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많은 갈등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이미 누군가가 정해 놓은 제도와 시스템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일부 슈퍼마켓에서는 계산원이 손님의 물건을 직접 봉투에 담아주는 것이
기본 서비스로 설계되어 있다. 이는 서비스 품질을 높여 고객 만족도를 확보하려는
운영자의 의도에서 출발한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는 동시에 새로운 갈등을 낳을 수 있었다.
손님은 각자 물건을 담는 방식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계산원은 제한된 시간과 매뉴얼 속에서 이를 모두 충족시키기 어렵다.
그 결과 “왜 이렇게 담느냐”, “이건 같이 넣으면 안 된다”는 식의 불편한 대화가 오가고,
때로는 감정적 대립으로까지 번진다.
이 장면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갈등은 계산원과 손님 사이의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갈등의 출발점은 ‘누가 담을 것인가’라는 선택권을 손님에게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계산원에게 부여한 운영 방식이다.
다시 말해, 사람을 충돌하게 만든 것은 개인의 태도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인 것이다.
이와 유사한 구조는 교통, 복지, 행정 서비스 전반에서 반복된다.
앞서 말한 좌석 수를 늘리기 위해 신체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대중교통 설계, 형평성을 고려하지 못한 복지 기준선,
이용자 간 조정을 전제로 한 모호한 운영 지침 등은
모두 시민에게 ‘현장 조정 비용’을 떠넘기는 방식이다.
그런 시스템과 제도를 만들어 놓고 방치하면 시민 간의 눈치와 감정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가
설계 문제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이 문제가 반복될수록 사회적 신뢰가 훼손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시민들은 서로를 불편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고,
공공서비스는 ‘불친절하다’, ‘각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정작 그 불신의 원인을 제공한 제도 설계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갈등은 개인 간 예의나 태도 문제로만 남게 된다.
따라서 정책과 서비스 설계에서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많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가 아니다.
핵심은 “이 제도가 시민들로 하여금 서로를 직접 조정하게 만드는 구조인가,
아니면 갈등을 흡수하도록 설계되어 있는가”이다.
좋은 제도란 친절한 제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싸우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제도다.
결국 애꿎은 국민들끼리의 다툼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시민 교육이나 예절 캠페인이 아니다.
처음부터 사람을 부딪히게 만드는 구조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불편이 반복된다면, 그 책임은 이용자에게 묻기 전에 설계자에게 먼저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제도와 행정이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