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예측02] ‘쓸모’에서 ‘질문’의 시대로

기계와의 공존의 시대 준비

by 구대은

인간은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에서, 사회 경제 시스템 유지를 위한 소비의 주체로 변하게 될 것이다. 기계가 생산하고 인간은 소비만 하는 세상. 얼핏 보면 유토피아 같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존재는 정체성을 잃기 쉽고, 결국 '사육되는 존재'로 전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지금까지의 교육과 사회화 과정은 인간을 '유능한 도구'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계산을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많이 암기하고, 정해진 매뉴얼을 잘 수행하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영역은 기계가 인간을 압도하게 됨으로써 '도구로서의 인간'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미래의 직업 지형도는 안개 속에 있다. 지금 유망하다는 코딩조차 AI가 스스로 작성하는 시대다. 특정 직업명을 목표로 삼는 것은 무의미하다. 대신 우리는 기계가 결코, 혹은 아주 오랫동안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고유성'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한때 예술이나 창작 쪽이 그런 인간 고유의 영역이 아니겠냐는 착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 분야도 오히려 AI가 우수한 시대가 되니 방향은 인간의 호기심과 따스함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첫째, '대답'하는 능력이 아니라 '질문'하는 능력이다. AI는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한 '대답 기계'다. 하지만 AI는 스스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질문은 결핍에서, 호기심에서, 그리고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나온다. 미래의 리더는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이것이 과연 옳은가?", "우리는 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라는 좋은 질문을 던져 AI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일 것이다. 질문의 수준이 곧 그 사람의 수준이 되는 시대다.


둘째, '효율성'이 아니라 '비효율성'의 가치, 즉 '공감'과 '돌봄'이다. 기계는 효율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효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아픈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온기, 복잡한 갈등 상황에서의 미묘한 중재, 타인의 슬픔에 공명하는 능력은 비효율적이지만 가장 인간적인 가치다. 사람과 직접 부대끼는 일, 감정을 다루는 일, 기계적 논리로는 해결되지 않는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적·사회적 영역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영어 단어 하나보다 친구의 표정을 읽는 법을 더 깊이 가르쳐야 할지 모른다.


셋째, '직업(Job)'을 넘어선 '소명(Calling)'의 발견이다. 생계를 위한 노동이 줄어든다면, 인간은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 단순히 쾌락을 소비하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디스토피아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지 아는 '자기 이해 지능'이 필수적이다. 예전에는 돈이 되지 않아 취미로 치부되던 예술, 창작, 지역 봉사, 철학적 탐구 등이 미래에는 가장 존경받는 '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커서 무엇이 될래?(What)"라고 묻는 대신,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니?(Why)",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살고 싶니?(How)"라고 물어야 한다.


기계가 '노동'을 대체한다면, 인간은 '활동'을 해야 한다. 소비만 하는 존재로 남지 않기 위해, 우리는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다운 것, 가장 비효율적인 것,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태도를 무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음 글에서는 그럼 어떤 구체적인 일들을 준비해야 할 것이고, 미래 직업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으니 정부나 지자체에서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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