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는 순간,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드는 불안감
퇴사를 하고 나서 생긴 버릇 중에 하나는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안암역 단골 혼술집에서 9시에 방송을 하는데 안암역보다 한 정거장 앞인 보문역에서 내려서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추적추적 오는 비를 맞으면서요. 비를 맞으면 제 안에 숨쉬고 있던 불안이 조금이라도 씻겨져 내려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더라구요. 아까 다른 친구의 자기소개서를 도와주면서는 불안이 퇴사하면서 없어졌다고 했지만, 사실 저는 불안한 거 같아요. 오늘은 저의 불안을 고백하고자 합니다.
제 재능을 믿는다고 하고, 절 따르는 친구들이 많다고 하고, 그 재능으로 처음보다는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고 하더라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인가 봅니다. 불안이란 말 그대로 안정감과의 결별입니다. 저에게 얼마 전까지 안정감을 주던 게 뭘까요? 역시 대기업 그리고 월급이었어요. LG란 안정된 대기업의 계열사 그리고 그 곳에서 매달 나오는 월급. 아닌 줄 알았는데, 월급 없는 첫 달을 지내 보니 그 불안감이 생각보다 저를 많이 옥죄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불안하다고 손톱만 뜯으면 보통의 구직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게 되겠지요. 불안을 생산적으로 해석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짐을 실천에 옮겼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저의 머릿속에 빡 떠오르는 것은 크게 3가지였습니다. 오늘은 누구에게 나의 글을 전달해 줄지, 오늘은 어떤 방송을 할지 그리고 오늘은 브런치에 어떤 나의 생각을 글에 옮겨 놓을지. 이 관념들을 먼저 정리한 뒤에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일단 좀 더 힘차게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은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을 뿐더러 잠을 푹 잘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저보다는 저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불안이 더욱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물론 저의 능력을 믿고, 저의 성공을 누구보다도 간절히 기도하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느끼시는 불안함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사촌 동생이 청와대 경비원 직급이 승진했다고 떡을 돌렸다고 말씀하시면서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이거 참 어찌 대응해야 할지 난감하더군요. 저 역시도 누구보다 성공을 지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공적 도약을 위해서 잠시간의 숨고르기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요. 그 기간으로 인해 만들어진 불안감을 피하려고 한다면, 제가 말한 큰 도약을 이루기 어려울 거에요. 어머니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빨리 해소시켜 드리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건 오늘도 글을 쓰는 겁니다.
하지만 제가 매일 겪는 불안, 내 주변 이들이 보는 불안을 뛰어넘는 더 큰 불안이 있습니다. 제 미래에 대한 불안 아닐까요? 결국 그 불안을 피하느냐 아니면 그 불안과 정면으로 부딪치느냐 두 가지의 선택권으로 수렴되는 것 같아요. 두 가지 선택 어느 것 하나 잘못되지 않았어요. 저는 불안과 부딪치는 선택을 했지만, 전자의 선택에 대해서 절대로 비판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조직 내에 있을 때 보지 못하던 미래를 조직 안에서 찾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에게는 그 미래가 오롯이 저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으면서도 불안했어요. 불안을 선택한 저의 농사가 큰 열매를 맺고, 그 열매의 맛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저처럼 좀 더 불안한 농사에 도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