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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하리 Aug 24. 2018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있다

어떤 그릇에 주워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물, 나의 과거

여행자의 과거는 그가 지나온 여정에 따라 바꾸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하루가 덧붙여지는 가까운 과거가 아니라 아주 먼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매번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여행자는 그가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中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다'고들 한다. 말과 행동의 신중함을 논하는 속담이다. 이 말만 보면 과거는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말과 행동이 벌어진 순간, 그것은 수정 불가능한 과거라고 오해하기 쉽다. 내가 오해라는 말을 붙였다. 그렇다, 오해다. 이런 오해는 현상을 단편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현상만으로 절대 존재할 수 없다. 그 현상에 우리의 해석이 가미되어야 비로소 역사가 된다. 비단 여행만 그럴까? 일상 생활에서도 충분히 과거는 언제나 현재의 시각에서 재조명되어 새로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누군가는 이를 줏대 없다고 비판할 지 모르지만, 나에게 이런 역사관은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차원에서 딱딱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보다야 훨씬 마음에 든다.


친한 동생이 얼마 전 개봉했던 미션 임파서블을 보고 와서 감동적이었다는 말을 했다. "읭?"했다. 전형적인 액션 영화를 보고 감동에 젖었다니 이게 뭔 귀신 씨나락 까 먹는 소리인가 했다. 이 친구가 몇 년 전에 파리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었고, 최근에는 프랑스에 여행도 다녀왔다. 자기가 살던 집 앞이 영화에 나왔다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프알못'들이야 영화를 보며 박진감 넘치는 화면 전개에만 관심을 가질 게 뻔하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살아 봤던 그녀는 액션 영화를 보며 추억에 잠겼다. 이처럼 과거는 현재를 만나 새로운 옷을 입을 수 있다.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어제 여자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오빠는 왜 국문학과를 이중전공으로 했어?" 정말로 나는 영어가 싫었다. 특별히 알아보지 않고, 영어를 절대로 배울 리 없는 국어국문학을 이중전공으로 택한 거다. 원래 성격이 무슨 결정을 할 때, 뭔가를 깊이 있게 알아보고 정하는 타입이 아닌지라 (어찌 보면 황당할 수도 있는 이유로) 이런 결정을 한 거다. 내가 그걸 배울 때야 지금 내가 이런 일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지. 나는 지금 자기소개서를 도와 주는 일을 하고, 그것을 주제로 방송을 하고 있고,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나와 계약을 맺은 피앤티아카데미에서도 이력을 쓸 때, 국문학과를 앞에 둔다. 요즘 같은 때에 경영학보다 국문학을 전면에 내세울 만한 일을 구하는 게 어디 쉬운가? 문과면 다 경영학이라고만 생각하지. 당시만 해도 도피성 이유로 결정했던 나의 진로(지금 나에겐 과거)가 현재, 자기소개서 가이드란 옷을 입고 새로운 날개를 펼치고 있다.


이렇게 인지하고 있던 나의 생생한 과거만이 새로운 옷을 입을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가시나무에도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내 안에 잠들어 있는 나의 과거들을 억지로 깨울 필요는 없다. (깨운다고 일어나지도 않는다. 이건 흡사 개그맨에게 "웃겨 봐"라고 하며 억지로 웃음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왔던 무수한 과거의 순간들은 내 머리보단 내 말초 신경계 속에 감각으로 남아 있을 공산이 크다. 그 과거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는 시간 속에서 내 선택과 만나 잠자고 있던 눈을 번쩍 뜰 지 모른다. 고로 나는 말한다.


인생 모르는 거다.


글에 정답이 없듯이 인생에도 정답은 없다. 그래서 나도 언제나 겸손하게 나의 글을 가다듬는다. 이 글이 바꿔 줄 내 멋진 미래가 기대된다. 그런 의미로 다음 주 수요일 8시에 나는 디파지트에서 2회 글쓰기 클럽 강의를 한다. 많은 관심 바라며 궁금한 분들은 hori1017 카톡으로 문의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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