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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의 나 vs. 본래의 나

2개의 자아가 충돌할 때, 당신의 선택은?

by 하리하리

제가 하리하리의 현직자방이란 오픈카톡방을 새로 운영하면서 그 곳의 친구들에게 받고 싶은 글이 있나 물어봤어요. 총 3개의 주제가 나왔습니다. 퇴사자의 연애, 무능 그리고 오늘은 마지막 주제인 자존감에 대한 글을 써 보고자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월요일 아침에 맞는 이 여유가 참 좋네요. 숨도 못 쉬게 바쁠 때가 있겠지만, 항상 말하듯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맞이하는 이런 불규칙적 바이오 리듬은 언제나 저를 설레게 합니다. 지금 이 글 하나를 쓰기 위한 시간조차도 설렙니다.

자존감.png 출처: SK하이닉스

이 주제로 글을 써 달라고 한 친구는 사실 저의 전 회사 동기 중 한 명이에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이고, 그 친구 덕분에 힘든 회사 생활을 버틸 수 있었어요. 월급과 저의 영혼을 바꾸는 악마의 거래를 2년여 넘는 기간 동안 지속시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이 친구의 존재 때문이었습니다. 평일이나 저녁이나 주말이나 전화하면 저와 재잘재잘 떠들 수 있던 그 친구. 회사 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누가 보기에도 그렇게 느껴지던 그 친구에게도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회사의 나와 본디 나의 차이

였습니다. 이 친구는 항상 사람들을 진실되게 대합니다. 자신이 진심으로 누군가와 소통하면, 그 사람도 자신에게 진심을 다해 화답해 줄 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아름다운 믿음이 조직에선 흔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 부분은 저도 느낀 건데요. 회사란 조직의 생리상 어쩔 수 없는 영역인 거 같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밟고 가야 내가 올라설 수 있는 적자 생존의 구조를 회사는 갖고 있어요. 그래서 모든 사원들은 회사의 목표인 성장을 같이 일구는 동지이면서도 서로의 공과를 비교당하는 경쟁자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원들에게 제 허점이 노출된 순간, 그들은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필연적으로 저를 평가 절하 시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의 특징일 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어제도 말했듯이 회사가 시스템에 근거해서 모든 비즈니스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개개인의 능력으로 회사에서 빛날 만한 여지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내험담.jpg 출처: MBC 자체발광 오피스 / 사내험담

저는 제가 회사에 애정도 크지 않고, 제가 성과를 내기보단 실수만 연발하는 사원이다 보니 사람들에게 문제아로 인식되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 동기는 달랐습니다. 누가 봐도 성실하고 회사에서 성과를 내고 싶어했고 열정도 넘쳤어요. 게다가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하는 친구인데 그런 친구를 회사의 생리가 그러하다는 이유로 헐뜯고 험담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회사란 특징 때문인지 몰라도 사람들끼리의 대화는 전면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뒤에서 그런 대화와 냉정한 평가가 일어나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이렇게 두 가지 자아가 함께 내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삶은 제 입장에선, 특히 퇴사를 해서 오롯이 저만으로 살아가는 상황에선 너무 괴로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뚱아리는 하나인데 어떤 곳에선 a란 가면을 써야 하고, 어떤 곳에서는 b란 가면을 쓴다는 것은 서글픕니다. 이렇게 두 가지 가면을 썼다 벗었다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것이 진짜 나의 얼굴인지도 헷갈릴 거 같아요. 진실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구별하지 못하고 바삐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나란 사람조차도 지워지지 않을까 합니다. 회사원에게 자존감이란 그런 존재 같아요.

가면.JPG

결론적으로 회사에서 저란 사람이 하루하루 시들어가고 있었고, 저에게 잠시나마 물을 주고 싶어서 척박한 토양(저에겐 그랬지만, 누군가에겐 비옥한 토양일지 모릅니다.)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그렇게 나온 회사 밖은 물론 단점도 있죠. 힘든 점도 있어요. 그러나 그 모든 시련은 제 선택이었습니다. 내가 한 선택이니 무조건 내가 책임져야 겠지요. 그래서 그 모든 어려움이 달아요. 어려움을 헤쳐 나갈 글이란 재산이 있고, 그 글을 읽어 줄 여러분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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