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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無)로 들어가 무(無)로 나오다

입사 1일차 신입이에게 바치는 글

by 하리하리

"하리하리의 현직자방"에서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자신의 애환을 얘기합니다. 업무부터 비업무까지 그 영역도 넓게 퍼져 있습니다. 오늘은 그 방에서 정말정말 병아리 친구의 신청 주제를 써 보고자 합니다. 이 친구는 제가 취준생부터 조금씩 도움을 줬고, 그 도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롯데이비카드 인사 직무 신입사원이 되었습니다.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우리 우주인(카톡방에서의 별명)에게 다시 한번 축하를 보내는 바입니다.

축하.jpg 출처: 카카오 유튜브

그 친구에게 어제 물어 봤습니다. 출근 첫 날이 어땠는지를. 너무 일찍 회사에 가서 30분 정도 사무실 앞 화장실에서 계속 옷매무새를 만졌다고 하더라구요. 그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킥 나왔습니다. 신입사원으로서 그 친구가 느꼈을 두려움과 설렘의 뒤섞인 감정이 너무도 공감되더라구요. 하루 종일 엄청나게 긴장한 채로 뻣뻣하게 회사에 있다가 저녁에 녹초가 된 채로 퇴근했다는 그 아이의 말을 들었습니다. 새로운 조직에 가면 누구든 겪는 약간의 어색함 그리고 그 속에서 오는 긴장감은 퇴사를 한 저 역시도 바로 어제의 기억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4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을 대학생이란 신분으로 살아 왔습니다. 매일 학교란 공간을 오가면서 얼마나 익숙해졌겠어요? 저도 입학 당시나 고려대 중앙광장의 푸른 잔디밭이 좋았지, 한 달 지나니까 그냥 지나가는 동네 놀이터와 같이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2년 이상을 다니면 우리를 선배라 부르는 후배들이 한 명, 두 명 쌓이고 의식은 안 하지만 듣는 호칭에서 느껴지는 우월감이라는 게 무의식 중에 잡히게 됩니다. 그런 말로 형언하기 힘든 자신의 권위?익숙함?을 모두 내려놓고 우리는 회사란 낯선 공간으로 떠나게 됩니다.


저는 이렇게 회사란 곳에 발을 들이는 신입사원들의 상태가 무(無)와 같다고 봅니다. 그런데 참 웃긴 건 방금 이 친구가 저에게 카톡이 왔어요. 뭐라 한 줄 아세요?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면서 하루 지났다고 금세 익숙해졌다고 하네요. 이렇게 이 친구는 회사라는 곳의 분위기에 적응하면 할수록 허물이 켜켜이 자신에게 쌓일 겁니다. 허물이라고 해서 나쁜 뜻은 절대 아니에요. 익숙함의 반증인 거죠.

익숙함2.jpg

익숙함이 스스로의 발전에 장애물이 될 정도로 커 버렸다고 느껴진 순간, 저는 회사를 나갔습니다. 퇴사를 하기 전에 저라고 어찌 고민이 없었겠습니까? LG란 대기업은 요즘같이 저성장이 만연한 대한민국 내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말 꼭 필요한 버팀목인 셈이죠. 하지만 그 익숙함 뒤에 숨어 더 큰 발전을 하려고 애쓰지 않는 스스로에게 미션을 주고 싶었습니다. 퇴사를 할 때에도 입사를 할 때처럼 무(無)의 상태로 떠납니다. 그간 회사에서 누렸던 월급, 법인카드, 노트북, 사원증, 복지포인트 등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제 손에서 사라졌습니다. 하루라도 멈춘 순간, 그로 인해 뛰어가는 다른 사람들과의 격차가 벌어지게 됩니다. 퇴사할 때의 무(無)는 불안감을 조장하지만, 그 불안감이 저의 끊임없는 생산 원동력이 됩니다.


이제 저는 저를 둘러싸고 있던 보호복을 벗고 오롯이 나로 차가운 세상과 정면으로 맞부딪혀야 합니다. 믿을 건 저밖에 없고, 제 역량을 극대화시켜야 이 경쟁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생명력을 유지시킬 수 있습니다. 다행히 제 신념을 믿고 조금씩 저와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 늘어 가고 있다는 점이 퇴사란 저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만드는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어제도 자기소개서를 도와준 친구가 선생님의 퇴사가 취준생에겐 빛이란 단순한 말이 너무도 감동이었습니다. 단순히 돈을 좇으며 살 수도 있지만 그런 작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무의 상태로 세상과 맞서는 저에게 큰 힘이죠.


감동.jpg 출처: KBS 1박2일

이제 막 입사를 한 친구들에게도, 입사를 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에게도, 퇴사를 고민하는 친구들에게도, 퇴사를 해 불안해하는 친구들에게도 해 주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이걸 마무리로 오늘의 글을 끝내겠습니다.

태초의 우리는 모두 무(無)의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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