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비파 레몬>을 읽고
어제부터 아름다운 책방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나에게 주어진 매주 화요일 4시간 동안 앞으로 책 1권씩 읽으리라 다짐했다. 폰을 안 보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고, 나를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만큼 천천히 연습이 필요하다. 모바일 카카오톡도 그런 의미에서 없앴고, 이동 중에 그러면서 책을 탐독할 짬이 났다. 1주일에 1권씩 의무적으로 읽고 싶고, 책과 친해진다면 좀 바뀌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감에 서점을 둘러보다가 집어든 책이 하나 있었다. 일단 이 곳이 좋은 이유는, 책이 싸서다. 여러 틈바구니 속에서 보석 같은 책을 찾는 기분은 말로 표현이 안 된다. 첫 시작이 좋았다. 왜냐하면 장미 비파 레몬이란 책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까 더 아팠다. 그 안에서 내가 했던 것은 세련되지 못한 방식이었음을 절절히 확인했다. 좋아하는 카페 사장님이 해 준 말이 더욱 와 닿았다. "연애는 문학이다." 1주일 전에 한 얘기였는데 그 때에는 에이 이랬다. 거의 처음으로 집어든 이 연애 소설은 나에게 꽤나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연애를 떠나 그간 내가 살아 왔던 삶의 방식에 돌을 던지는 표현들이 유독 내 눈에 띄었고, 그것들이 나의 폐부를 찔렀다.
간결하고 솔직했다. 그냥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 가지 말라면 가지 말아라. 책에서 사랑에 빠진 이들이 서로에게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이 얘기 이후에 어떤 거품이나 사족도 안 붙인다. 나는 아녔다. 되게 솔직한 척 하고 있었지만 알고 보면 거품이 잔뜩 낀 카푸치노 같은 표현들을 남발했다. 그러면 되게 솔직한 줄 알았지만, 아녔다. 나는 그 거품으로 진짜 전달해야 할 본심을 감추고 있었다. 그 거품들이 본심의 진위마저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내용들이 보이면 뼈저리게 아팠다. 진짜 아팠다. 사실, 지금도 가슴 한켠이 묵직하다.
그리움의 유통기한이 내 기준보다 훨씬 더 길었다. 그 책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에리가 츠치야의 동의 없이 그의 아기를 가진다. 그런 연유로 그는 그녀에게 이별을 선언한다. 내가 눈을 떼지 못했던 것은 그녀가 아픔을 느꼈던 시기다. 두 달 뒤다. 난 너무 급했다. 아니, 지금도 조급증은 버리지 못했다. 내 삶을 지배하는 방식이다. 사실 이 조급증이 이런 아픔 속에서도 내가 생산 활동을 하게 만드는 힘이기는 하지만, 조급증 진짜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도 크다. 단 1분도 못 기다리는 나란 사람에게 갖는 모멸감이 생각보다 너무 크다. 그런데 그 조급증이 집착이 아닌데, 꼭 이 얘기는 해 주고 싶었다. 뭔가 마지막 말이 당신이지 않기를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기다리는 건 내가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있잖아, 불현듯 생각해 보니 그것조차 나의 전적인 주관이었다. 내 주관이 관계를 얼마나 어그러뜨리는지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았다. 그러니까 또 아파 온다.
내 생각과 겹치는 사랑도 있었다. 우리 곤조 아저씨. 정말 정열적이고 불같이 찾아온 사랑에 대해 성큼성큼 다가가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좋아하는 카페 사장님이 묻는다. "어찌 할 거냐?" 내 답은 명료했다. "걸어야죠." 나를 걸고, 걸어가 본다면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 내가 자초한 상황에 따른 후회는 작은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이 진통을 거치고 내가 조금 바뀐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 찾아오게 될 더 큰 후회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랑과 연애란 녀석을 가만히 살펴 보다 보니 결국 삶과 같았다. 요새 듣는 성시경의 영원히란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사랑엔 수천 가지의 감정이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랑을 쉽사리 설명할 수 없다. 레이코가 츠치야와 이혼하고 혼자가 된다는 것으로 이 책은 마무리된다(주요 인물에 대해서는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줄거리나 주요 인물에 대한 구구절절한 소개는 내 몫이 아닌 듯 하다. 나는 지금 이 책을 읽고 피어오른 뭉클한 감정을 전달하면 그만이다). 기대, 실망, 좌절, 분노, 슬픔, 뭉클함, 설렘 등 사랑이란 단어 안에 모두 들어가 있는 단어들이고 그래서 그 사랑이란 단어를 함부로 입에 못 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자기 삶을 제대로 살고 있다고 확신하지 못하듯이 말이다. 이런 개인사를 거치기 전까지 나는 퇴사 후 내 삶에 대해서 누구보다 확신 있었다. 그런데 그 확신이 살짝 불어 온 바람에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사장님은 나에게 또 이런 말을 해 주었다.
확신을 왜 가져야 해요?
그래. 확신이란 녀석은 백해무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확신 대신 불확신에 어떨 지 모를 미래를 걸어 보는 것도 인생 살면서 가끔씩 찾아오는 선물 같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오늘도 난 느림과 빠름, 현실과 이상, 안정과 불안정 사이에서 애매하게 발을 걸쳐 있다. 통장 잔고에서 매달 빠져 나가는 150여 만원이 나가서 잔고가 내 기준보다 적어지면 덜컥 겁부터 낸다. 어차피 다 벌 것이고, 다시 채워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나인데도 지금 이 순간에 공허해지면 불안해한다. 그 불안도 결국 다 내가 선택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웃기지 않은가? 좋아하는 사장님은 나에게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던 선생님도 너는 잘 할 수 있으니 불안해 하지 말라 한다. 불안을 불안해하지 않는 것이 진실된 관계 형성의 첫 단추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진짜로 쉽지는 않고, 몇 달 걸릴 거 같은데 이 책을 읽고 나서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확실해졌다. 내 사고관이 완전히 바뀌고 나면, 그 때쯤이면 다시 의연하게 그 사람 앞에 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