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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하리 Jan 10. 2019

문항에서 읽히는 기업의 성격

기업에게 을이 될 필요는 없다

요새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느낍니다. 동아리를 만들 당시 저와 의기투합했던 신입생들이 나이가 들어 취업할 때가 됐습니다. 제 룸메이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칼럼은 이 친구와의 대화에서 영감을 받아 썼습니다. 이 친구는 자기 신념이 뚜렷합니다. 제가 항상 어디서든 말하지만 자기소개서를 잘 쓰고, 취업도 턱턱 잘 되는 애들의 유형이 어떤가 묻는다면 자기의 내면을 깊이 고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이 친구가 잘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고민을 깊이 한다는 것은 자신만의 타협할 수 없는 기준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과 많이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요새 기업들이 물어보는 문항 중에 '자신이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이란 것도 있습니다. 거기다가는 쉽게 쓰지 않지만, 마음 속에 다들 '돈'을 회사 선택 기준의 제1요소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죠.


뭐, 자신은 특별한 이유로 술을 절대 안 먹는데 아직까지도 술 먹기를 강요하는 회사들도 있잖습니까? 물론 그것 역시 회사에서 당신이 만나는 팀장을 비롯한 선배들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릅니다. 술과 관련된 것은 조금 미시적인 것이니 거시적 주제로 시선을 돌려 보죠. 음... 예를 들면 회사의 분위기? 많은 경력자들이 전에 다니던 회사를 옮기는 이유를 들어 보면 연봉 못지않게 회사나 주어진 업무의 성격이 자기 성향과 맞지 않아 힘들어 한다는 반응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분위기를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완벽히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채용 과정에서 그 기업의 성격을 유추해 볼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 기업의 자소서 문항을 소개해 드릴텐데 보시면 제가 하는 말을 이해할 거라 생각합니다.


3. 나눔, 협력, 리더십 발휘 등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낸 경험을 기술하여 주십시오. (예: 팀 프로젝트, 봉사활동, 동아리, 군 복무, 교회/선교 단체 활동 등) [300자 이상 1000자 이내]


마감까지 3일 남은 회사, 아모텍의 자기소개서 문항 중 일부입니다. 사실 기업의 존재 목적은, 비용을 줄이고 매출을 늘려 수익을 내는 것입니다. 나눔 활동(좀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기업의 CSR도 돈 쓰는 활동이죠)은 사실상 돈을 쓰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눔을 굳이 기업 채용의 첫 단계인 서류전형에서부터 묻는다는 것은 기업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시 이 회사의 설립자가 나눔을 강조하지 않았을까 싶은 거죠. 뭐 그것이 종교적 이유든 아니면 개인적 이유든 말입니다. 두 번째로 소개할 기업의 문항에서는 좀 더 노골적 의사를 드러냅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선한 가치관"의 정의와 이러한 선한 가치관을 실제 행동으로 옮겼던 사례에 대하여 기술해 주십시오. (최소 100자)


10월에 마감했던 본푸드서비스 문항 중 하나입니다. 문제에서 시선을 강탈하는 단어 하나가 보이시죠? 선한 가치관입니다. 위 아모텍 문항에 있는 나눔도, 협력도, 리더십도 모두 선한 가치관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선(善)을 직접적으로 문항에 띄웠다는 것에서 이 역시 오너의 의지가 읽혀집니다. 실제로 본그룹 같은 경우는 기독교 색채가 짙은 기업이라고 하네요?


삶을 통해 이루고 싶은 인생의 비전 또는 목표 3가지를 우선순위 순으로 적어 주십시오. (각 문항당 120byte)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독특한 성격의 기업 중 대표주자, 이랜드의 1번 문항입니다. 저 문항만 보면 크게 느껴지는 것은 없지만 이랜드를 지원한다는 생각을 하고 저 문항을 바라보면 어떻게 써야할지 대충 감이 잡히지 않으세요? 여기서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제가 계속 칼럼을 쓰면서 여러분들에게 초지일관 말했던 것은, 자기 색깔을 잃지 마라입니다. 예를 들면 개인주의적으로 사고해 왔던 친구가 기독교가 뿌리인 이랜드를 쓴다고 해서 개인보다 우리를 생각하고, 어려운 이들을 배려하는 것이 맞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죠. 그런 질문을 하는 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접점을 찾으라는 것뿐이라 미안합니다. 그 기업의 월급을 받겠다고 지원하는 이들이 자기 고집만 들이밀어서는 안 됩니다. 어느 정도 타협이란 게 필요해 보입니다. 왜 주요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정신을 직원들에게 심는 행위를 하겠어요. 설사 내 본성은 그렇지 않더라도 최면을 거시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나는 이 기업이 원하는 인재다, 나는 이 기업의 성격과 더없이 맞다....




제가 소개해 드린 문항들에서 읽히는 뉘앙스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기업에 몸담는다면 갖고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성격(도전, 전략 등)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 기업들이 이 문항을 왜 내세우는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우리가 기업에 뽑히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기업을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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