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감정으로 맞이할 나의 봄날이 기대된다
떠나간 것들이 다시 오고
다시 온 그 무엇 때문에
못 견디게 외로울 때가 있다
권대웅 <이유도 없이 못 견디게 그리운 저녁> 中
어제 저녁, 정말 반가운 친구 녀석의 전화가 왔다. 과 동기로서 똑같이 느지막한 나이에 입학했고, 군대 간 시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제대하고 나서 몇 번의 크고 작은 일을 거친 인생 동반자 같은 녀석이다. 경영학과인데 프로그래밍 공부한다고 하고, 자신이 잘 하는 분야의 데이터들을 모아서 예측 사업을 진행했다. 나도 그랬고, 걔도 그랬고 공교롭게 작년이 독립 첫 해였다. 듣기론 매출도 꽤 나왔다고 했는데 갑자기 잠수를 타서 빚쟁이한테 쫓기나? 이런 생각까지 들던 찰나였다. 가벼운 새해 인사를 나누고, 나에게 잠수의 이유를 말해 주었다.
괴로워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신이 결과를 예측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거기에 대해 신뢰하고 값을 지불하는데 자꾸 결과가 틀리는 것에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이해가 되었다. 나도 갖고 있는 마음의 짐 같은 거였다. 대신 내가 가이드해 주는 자기소개서를 다른 기업에 지원할 때에도 쓸 수 있다는 식으로 둘러대지만, 신경써서 쓴 자소서를 믿고 기업에 넣은 친구들이 서류 탈락 결과를 받아들 때의 상실감은 나도 겪어 봐서 잘 안다. 그 감정은 어떤 위로로도 만회가 안 된다.
그리고 그 기간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나에게 환희와 슬픔의 감정을 동시에 안겨주는 기간. 이 일을 회사 다니며 시작할 당시만 해도 내가 갖고 있던 자소서에 대한 생각은 기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정도도 충분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콘텐츠의 질을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기술로 시작됐던 나의 콘텐츠에 감정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한 시즌이 끝나면 온 몸에 힘이 쫙 빠진다.
그런데 요샌 이런 외로움과 괴로움이란 감정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아주 조금은 생겼다. 어떤 계기가 있기는 했다. 그것을 마주한 나는 으레 그래왔듯 괴로움을 바깥으로 표출하기 바빴다. 그러다가 한 번 이런 생각을 해 봤다. "이걸 속으로 삭히고 뜻을 꽁꽁 감춰 보면 어떨까?" 일상과 생각을 꽤 직설적으로 보여 주는 편인 에세이 쓰기에만 익숙해진 나에게 이런 태도의 변화는 극적이다. 이 변화를 통해 내가 함축과 응축의 재미를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견뎌 봤다. 그 바람과 정면으로 마주하다 보니 고통은 더욱 또렷하게 나에게 찾아왔다. 누군가에게 그 괴로움을 토로하기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그 폭풍같은 시간을 흘러가게 놔뒀다. 다행히도 조금은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틀이 잡혔다. 물론 글 맨 앞에서 언급한 시의 제목처럼 '이유 없이' 나를 흔드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나름대로는 티내지 않고 그 흔들거림을 최소화했으니 이후에도 잘 견딜 거라 생각한다.
비시즌 동안 내가 거쳤던 마음 훈련을 통해 쓰게 될 나의 글이 기대된다.
그리고 다시금 마주할 나의 고통이 이제는 조금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