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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혼 여성에게 직장이란...?

이 땅의 어머니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by 하리하리

오늘 글은 주제를 정하고도 몇 분이나 글을 쓰지 못하고 손톱만 깨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를 한 번은 다뤄야 하는 것이 퇴사 관련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의무라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키보드에 손을 댑니다. 어떤 피드백이든 대환영입니다. 제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수정하겠습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민감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도전합니다. 이쁘게 봐 주세요. (옆에 있던 우리 처제, 저에게 임신 체험 키트라도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합니다.) 오늘 글의 주제는 기혼 여성으로서 회사에 다닌다는 것입니다.

성차별 직장.png 출처: 지속 가능 저널

이 글의 영감은 친한 동생이 줬습니다. 그 친구가 만점을 받은 논문이라며 자랑하던 글의 소재는 자궁과 임신이었습니다. 그 글을 보면서 여성의 삶에 대해 꼭 다루고 싶었습니다. 특히 퇴사일기를 쓰는 사람이다 보니 여성으로서 회사를 다니는 의미를 좀 더 파고 들어가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제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그 분들, 기혼 여성들에게는 고민 투성이일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잠시 사귀던 여자친구의 이야기가 불현듯 머리를 스칩니다. 자신은 어머니를 존경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어머니처럼 될 자신이 없다고 합니다. 언니와 자신을 훌륭하게 키우면서도 직장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면서 고위직까지 올라간 어머니. 여자라고, 어머니라고 해서 회사에서 주어진 일이 덜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든 아버지든 같은 직위라면 회사에서 기대하는 성과는 같죠.

기혼여성.JPG 출처: 한겨레

이런 인식의 기원을 되짚어 가 보면 그 곳에는 신자유주의 사고관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머릿 속에 강하게 박힌 이 녀석이 이런 문제를 초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가 뭘까요?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은 정부라는 기류와 손 잡고 만들어진 녀석입니다. 정부 혹은 국가의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고 기업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는 신자유주의. 국경과 산업을 막론하고 전방위적으로 벌어지는 피튀기는 경쟁 무드 속에서 기업들은 효율적 경영을 지향합니다. 효율성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요소는 비용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비용입니다. 심지어 기업의 구성원인 직원들 역시 인적 자원이란 미명 하에 비용으로 환산해 바라보기도 하죠. 그러다 보니 애석하게도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기업이란 공장을 굴리는 하나의 부품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 반대.jpg 출처: 민중의 소리

다행히 사람을 부품 대우하지 말라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사회 전체가 귀를 기울이면서 이런 기조는 조금 줄어들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야 합니다. 사람도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습니다. 장애인이나 정신질환이 있는 친구, 유색 인종, 혼혈 등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과 특성이 다 다릅니다. 이를 모두 고려해야 우리는 진짜로 사람 취급을 받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여성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결혼 후, 출산한 분이라면 육아와 노동의 책무를 모두 이행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 보면 학부모 총회를 하면 어머니들만 오십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저희의 양육을 전담하셨습니다. 저조차도 아버지께서 그런 자리에 오는 게 그렇게 싫고 어색했습니다. 엄마가 왔으면 좋겠다고 철없던 소리를 한 적도 많았습니다. 못난 아들은 은행에서 열심히 일하는 어머니께 이중으로 부담을 드렸습니다. 이제 와 말하지만...


어머니 죄송해요ㅜ
교과서 다시보기.jpg

머리가 크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런 왜곡된 성 의식이 우리네 어머니들을 더욱 힘들게 만든 거죠. 그 의식은 누가 만들었냐? 잘잘못을 따지는 건 아니지만 교육 제도입니다. 백지와 같은 우리들에게 색칠을 한 학교 교육이 (굳이 책임 소재를 따지자면) 그 원인인 거죠! 게다가 1997년 IMF 이후로 그간 전통적 관념 하에서 잘 굴러가던 가정이 파괴되었습니다. 성 역할을 따지기 전에 누구든 일을 해서 생계를 꾸려 가야 했습니다. 확실히 그 때 이후로 집에서 살림하시던 어머님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사회 분위기는 빠르게 바뀌었지만, 우리의 개념은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확실히 20여 년 전보다는 그 간극이 좁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결혼한 여성들이 회사에 다니기 쉽냐? 라고 물어보면 우리는 자신 있게 그 답을 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어머니들, 아내들, 더 나아가 오늘도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저의 부스러기 같은 글이 그 분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 주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special thanks to 지금도 제 옆에서 열공하는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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