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섬과 익숙함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
어제는 제가 예비군엘 다녀오느라고 브런치를 걸렀습니다. 요새 자주 브런치를 걸러서 제 글 말고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보고 있다는 '바이오'님의 볼멘소리를 들었습니다. (미안합니다ㅠㅠ) 앞으론 빼먹지 않고 글을 열심히 쓸게요^^ 최근에 며칠 쉬면서 그간 다양한 경험들이 저를 찾아와 주었고, 그것들이 제 퇴사일기의 훌륭한 소재가 되었습니다. 그 소재들 역시 하나 하나 풀어낼 테니 기대 많이 해 주세요★
제가 지금 사는 곳은 용산구입니다. 원래는 대학교 졸업 전까지 계속 노원구에서만 살다가 전 회사에서 처음 배치된 부서가 평택에 있어서 1년여 정도를 오산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본사에 올라온 뒤, 용산으로 이사와서 후배와 살고 있었죠. 용산구에 사는 예비군들은 노고산 훈련장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노원에 있을 때는 당고개에 있는 훈련장에 가면 되는데,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보니 심리적 거리가 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고산은 달랐습니다.
지도만 보고 덜컥 겁이 났습니다. 제가 사는 용산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작년에 처음 훈련에 참가하라는 공지문을 봤을 때, 회사 핑계를 대면서 미루었습니다. 그렇게 두어 번 적당한 핑곗거리를 대며 훈련을 더 빠졌습니다. 더 이상 회사를 이유로 훈련을 빠지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퇴사까지 했으니 꼼짝없이 가야 했습니다. 전날 제 불안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되게 멀 텐데...
다행히 이번 훈련 당일에는 일찍 깼습니다. (사실 이전의 훈련 날, 늦잠을 자서 훈련에 빠진 적도 있었거든요) 마침 같이 사는 친구도 아침에 일정이 있어서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왠지 모르게 노고산의 위치는 제 머릿속에서 일산 부근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서울 사는 사람이 일산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을 리가 없는데 말이죠... 노고산이란 곳이 위치적으로 저에게 낯선 곳이다 보니 스스로 멀다고 단정지어 버렸습니다. 일산이라 하더라도 제 머릿 속 알고리즘이 지금 돌이켜 보면 전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사는 효창공원역에서 위쪽으로 출발해 연신내에서 갈아타면 되는데, 왜 약수역을 거쳐 환승하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해 왔는지... 안 그래도 멀다고 생각한 곳을 돌아 가려고만 생각하다 보니 노고산이 저에게 더~~~욱 멀리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주변의 한 마디입니다. 같이 사는 친구가 툭 내뱉은 말이 제 벽을 너무도 쉽게 허물어 뜨렸습니다.
형, 응암순환행 타면 되잖아.
지도를 켠 저는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엉뚱한 길로, 완전 돌아서 노고산을 가려고 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연신내역을 간 뒤, 택시까지 타니 1시간도 안 돼서 노고산에 당도할 수 있었습니다. 진짜 단순한 경험이었지만 저에게 이 경험이 준 깨달음은 어마무시했습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직장인들에게 '퇴사'란 것은 정말 무서운 단어일 지 모릅니다. 왜냐면 매달 받는 안정적 월급, 회사란 안정된 시스템 속에서 평안을 느끼던 저의 환경과 이별하고 나로서 오롯이 서 있어야 하고, 엄청난 경쟁에 자신을 내던져야 하구요. 예를 들면 보험료도 예전엔 직장에 속해서 직장 회계나 총무팀에서 다 내 주었는데, 그런 작은 행정 조치 하나하나 제 손으로 해내야 하구요. 분명 낯설고 무서운 괴물과도 같은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막상 퇴사해 보니 그렇게 무서운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회사에서 나온다 해도 삶은 언제나 계속되고, 그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저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었고, 그 속에서 소소하게 만들어지는 제 매출들이 저에게 힘을 주고 있었고요. 솔직히 즐겁다고 단언할 순 없습니다. 왜냐면 퇴사 이후의 삶이 언제나 꽃길만이었다고 말하긴 어렵기 때문이죠. 어느 때는 매출이 나오지 않아 고민되었고, 정기적 매출이 아니기 때문에 불안하구요. 그러나 이 불안감은 예상해 왔던 불안감이에요.
퇴사 전에는 와 닿지 않던 이 불안감이 괴물처럼 느껴졌을 뿐입니다. 머릿속에서 상상만 하지 말고 괴물을 도화지에 그려 본다면 생각보다 무섭지 않은 괴물이 내 눈앞에 보일 겁니다. 막연한 불안감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제가 같이 사는 동생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이미 퇴사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두려워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