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부디 소유욕을 사랑으로 착각하지 않기를
"사랑을 소유욕과 착각하지 마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당신은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 소유욕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생텍쥐페리
제가 좋아하는 어플, '씀'에 나온 오늘의 단어, '소유욕'을 보고 잠깐 멍했습니다. 사실 소유욕과 사랑을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항상 느꼈고, 저 역시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스스로 경계를 많이 했지만, 결론적으로 그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소유란 건 참으로 독점적이면서 이기적 단어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갖지 못하는 나만의 것, 그것을 갈구하는 나의 모습, 생각해 보니 참 추해 보이더라구요. 문제는 그 추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왜냐구요? 소유하고 싶은 대상이 제 머릿속에 가득하기 때문이죠. 사람이 그렇잖아요. 뭔가에 맹목적으로 빠지게 되면, 자기가 얼마나 그릇된 길로 가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죠.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내 세계 속에서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그 사랑을 내 손에 꼭 쥐었을 때의 기대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상대방의 의사는 전혀 궁금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
소유욕이 갑자기 치솟아 오르는 경우가 살다 보면 가끔 있죠? 저 같은 경우에는 이전의 연애에서 채워지지 못했던 아쉬운 지점을 강점으로 갖고 있는 상대를 보는 순간, 소유욕이란 악마가 저에게 말을 겁니다. 하나 고백하자면, 저는 이상형이란 게 과연 존재할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뭐라고 함부로 이런 사람이 나에게 와야 한다고 규정을 합니까? 그리고 그 틀을 정해 놓고, 혼자 이 틀에 맞는 사람만 만나려고 하면, 정말 나와 인연일 수 있는 사람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소위 말해 마음이 시키는 연애를 합니다. 연애하다 보면 그 사람의 아쉬운 점을 발견하게 돼요. 이 지점을 고치는 건 예의가 아니지만, 은연중에 이 부분을 개선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어디 한번에 바뀌나요? 결국, 그 아쉬운 점이 발목을 잡아 연애가 끝납니다. 그런데 그 직전에 마주했던 아쉬움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너무 기쁜 나머지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결국, 그 오류는 어떻게 깨달을까요? 엄청난 위기를 겪거나 그 위기로 인해 파국을 맞이하면 번쩍 정신이 듭니다. 상대와 나는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알기 전 시간이 알고 나서의 시간보다 훨씬 길잖아요. 드라마나 운명 같은 사랑이 나오지, 사랑은 그렇게 그 사람의 세계를 단번에 뒤흔들 정도의 파급력을 몰고 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이란 감정은 그런 파급력을 갖고 오는 게 맞는데, 그 사랑이 단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이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말로만 하는 배려여서는 안 됩니다. 정말 그 사람에 빙의라도 해서 그 사람과 눈높이를 맞춰야 합니다. 특히 내가 더 좋아하는 입장이라면, 이 자세는 더욱 필수적으로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배려는 일시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이란 건, 시간이 지날수록 은은하게 빛이 난다고 생각하거든요. 점점 더 선명해지는 빛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려면 지구력이 필요합니다. 상대가 내 예상과는 달리 반응한다고 해서 쉽게 지치지 맙시다! 또 상대가 어느 정도 내 품에 왔다고 해서 쉽사리 만족하고, 거만해지지 맙시다! 사랑이란 언제든지 깨뜨릴 수 있는 유리 같다고 봐요. 그 유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방탄유리가 됩니다. 그런데 이 방탄유리는 재밌는 게 추억이 쌓이면, 더 단단해집니다. 하지만, 언제라도 와장창 깨질 수도 있어요. 믿음과 배려가 남녀 간에 필요한 이유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