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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간다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by 하리하리

날이 덥습니다. 바야흐로 장마의 계절답게 끈적거림은 아침부터 저를 괴롭히고 있구요. 하늘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더라구요. 흐리단 말입니다. 그런 하늘을 뚫고 도시 한복판을 걷다 보면 오늘 하루도 왠지 잘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듭니다. 여담이지만 오늘 스타벅스에서 다음소프트 송길영 부사장님을 만나서 같이 사진도 찍었습니다. 퇴사를 하니 이런 우연한 만남과 인연들이 저를 언제나 설레게 만듭니다. 이 글이 만들어 갈 또 한 편의 작품을 상상합니다.




회사를 한창 다닐 때, 작년 쯤이었나요? 5월부터 7월까지 근 두어 달을 병원 신세를 졌던 적이 있습니다. 정도경영을 주제로 홍보 영상을 찍었습니다. 저는 허들을 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살도 많이 쪘던 상태에 원래부터 둔한 운동신경을 보유한 저이다 보니 허들을 넘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착지 실수로 허리 골절을 겪었습니다. 의사 말로는 요추 1번 압박 골절이라고 하더군요.. 그 주에 3대3 미팅도 있었던 차라 너무 아쉬웠습니다. 순간적으로 숨이 안 쉬어지기는 했지만 부러지기만 해서 금세 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진단 결과는 사뭇 충격적이었습니다. 전치 8주가 나온 것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저의 하루를 지배하고 있던 것은 회사였기 때문에 덜컥 회사 걱정부터 났습니다.


그리고 이런 간사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그간 맡았던 업무가 많았단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업무를 맡고 있었지만 제 부족한 업무 스킬 때문에 조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빠진 이후로 제가 맡던 고객사 업무를 룰렛을 돌려 나누었다고 하더라구요. 제 소중함을 팀원들이 알아 주고, 제가 돌아갔을 때 그만큼 저의 가치가 인정받기를 속으로 바랐습니다.


실제로 처음 몇 주 간은 제 업무 공백으로 인해 팀원들이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를 거쳐 들었습니다. 기분이 좋았죠. 그러나 몇 주가 지나니 그런 이야기는 쏙 들어갔습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답게 팀원들 모두 제 업무가 균등하게 배분된 업무 환경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각자의 생존 방식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 역시도 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면 똑같이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조기 복귀해서 업무를 다시 가져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갖고 있었죠...^^


그게 가능했던 이유를 떠올려 보면 저희 회사의 업태 그리고 제가 진행하던 일의 성격이 큰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B2B 물류 회사이고, 제가 하던 일은 영업이었습니다. 영업이라기 보다는 영업관리 였죠. 신규 혹은 기존 고객사 내부의 주문자들의 요청에 대응해 주는 것입니다. 이미 구축되어 있는 시스템 상에서 업무가 진행되다 보니 제 개성이나 창의성이 그리 많이 요구되지 않았습니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주어진 업무를 잘 쳐내는 사람이 회사에서 인정받는다고. 그렇기 때문에 저 하나 빠진다고 그래서 회사 업무에 큰 공백이 벌어지진 않았습니다. 게다가 개인 퍼포먼스에 의해 성과가 좌지우지되는 스타트업도 아니었고 LG라는 큰 기업에 속해 있는 계열사였으니 그 속에서 저만의 색깔을 낼 필요성도 없었습니다.




퇴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했을 당시 신입 사원이 막 들어왔습니다. 그 친구가 어떤 업무를 할지도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가 빠지면 제가 하던 업무를 그 친구가 대신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일사천리로 퇴사를 했고, 나온 지도 어언 두어 달이 넘어 갑니다. 그런데 오늘 이 글을 쓰며 굳이 내가 그렇게 회사의 입장을 생각하며 퇴사를 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인생 혼자 사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제가 몸담았던 조직을 배려하는 것도 맞지만 제가 빠지더라도 제 공백을 누군가 잘 메울 거고, 그 공백으로 인해 잠시간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결국 큰 무리 없이 회사는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만 하고, 그럴 수밖에 없고. 특히 우리나라 대기업처럼 완비된 시스템을 보유한 조직이라면 저 하나 빠진다고 해서 큰 이상 없습니다.




회사원들이 갖고 있는 가장 흔한 착각 중 하나가 나 없으면 이 회사 큰일나지라는 생각일 것입니다. 안 그런 분도 있겠지만 회사에서 내가 인정받고 업무 성과를 주변에서 칭송해 주고 승승장구하다보면 회사의 중심이 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는 흡사 지구를 중심으로 두고 우주가 돌아간다고 믿었던 천동설 신봉자들과 같은 마인드입니다. 그러나 천동설은 잘못된 이론이었음이 금방 드러났죠? 지구도 그냥 우주의 일부로서 역할을 할 뿐이고 그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그냥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천동설.jpg


제가 퇴사를 했던 것도 나만의 삶을 공고히 하기 위함이 컸죠. 내가 갖고 있는 재능과 장기만으로 우뚝 서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이정준이자 하리하리이고 싶었습니다. 회사에 있으면 지동설을 믿어야 했지만, 제 인생을 제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싶었기에 잠시 우주를 뒤흔들 변화에 도전합니다.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저앉지 않고 꾸준히 도전해 제가 우주가 되는 경지를 꼭 경험하고 싶습니다. 루이 14세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짐이 곧 태양이다


제 말 한마디에 힘을 실어 줄 정도로 성장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브런치 마무리합니다. 행복한 금요일 오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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