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작가님의 개인전을 다녀와서
김성수 작가님의 개인전, '바니타스: 욕망이 머문 자리'에 다녀왔다. 얼마 전부터(사실 꽤 오래 전부터) 밀린 숙제처럼 취향을 가져야지 취향을 가져야지 하다가 최근에 속하게 된 모임의 리더가 주선한 이 곳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작가, 작품, 현대미술 모두 친숙하지 않은 터라 고민을 했지만, 다행히 작가님께서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에 대해서 설명도 해 주시고, 작가님과 대화도 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돼 있어서 참여를 결정했다. 이 자리를 마친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이 곳에 가기를 너무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예상치못한 곳에서 급작스러운 위안을 받은 느낌?
작가님의 작품세계는 세월호를 거치며 상당 부분 변화(부침일 수도 있으려나)를 겪었다고 하셨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네온시티란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작가님 개인전을 하는 곳인 오래된 집에 가면 도록으로 네온시티를 만나볼 수 있다) 화려하지만, 공허해 보이는 도시를 표현했다. 그런 작가님께서 이번 개인전에서는 마띠에르기법을 활용해서 꽃에 콘크리트의 질감을 불어넣은 작품을 다수 선보이셨다. 겉으로만 보면 생기 넘치는 꽃, 그 이면에 감춰진 우중충함을 표현하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여러 작품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아래 작품이었다.
이 그림을 찍은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꽃의 이파리에 방울이 묘사되어 있다. 나는 이 방울이 물방울인지, 핏방울인지 규명을 짓기 어려웠다. 색깔도 그렇고, 바쁘게 굴러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거나 희생되는 어느 여린 생명의 절규가 느껴졌다. 이번에 SPC삼립 평택공장에서 운명을 달리 한 24살의 어린 소녀 노동자도 살짝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사실 이 사람뿐이랴? 우리 근처에는 이름 모를 한 떨기 꽃들이 피를 머금은 채 세상과 운명을 달리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김성수 작가님이 바치는 작은 헌사가 아닐까?
모든 작품을 다 보고 나서 했던 작가님과의 대화도 너무 좋았다. 특히, 새로운 화풍으로 발을 옮기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물었던 과정을 완벽히는 아니지만, 어렴풋하게 소개해 주셨는데, 그 자리가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랍시고 주변에다 말하지만, 당장의 생계가 급하기 때문에 정말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는 말을 못한다. 그냥 기술자다. 자기소개서란 특정한 장르의 결과물을 의뢰한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 주는 일을 한다. 이런 나이지만, 계속적으로 글이란 걸 만들다 보니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순수문학 등 자소서 이외의 글을 써 보고 싶은 욕망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두려워서 귀찮아서 등의 핑계를 스스로에게 대면서 기존에 써 오던 글에 시간을 쏟는 삶에 익숙해 있었다. 나도 한때는 자소서 외의 다양한 다른 글을 쓰면서 삶의 균형을 잡아왔지만, 어느 순간 자소서의 노예가 되어서 용기있는 선택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까먹게 되었다.
이런 내가 얼마 전, 내 프로그램을 이용했던 친구에게 '연애일기 안 쓰냐'고 했던 물음이 되게 인상적으로 다가왔었다. 다양한 글을 쓰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꼈던 내가 어느 순간 붕어빵 찍어내듯이 의뢰인의 자기소개서 완성에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다른 기업 자소서 예시를 먼저 쓰려고 했다가 용기를 내서 김성수 작가님의 개인전을 다녀온 소회부터 작업했다. 자소서 작업이 하나 둘 쌓여서 나를 그 분야의 전문가로 만들어 줬던 만큼 새로운 장르의 글도 다시금, 열심히 써 내려가다 보면 잊고 있던 나의 감성이 내게 다가와 내 손을 잡아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