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과 만남에 대해
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2018년, 내가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첫 시즌이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금요일이었다.
아시아나항공, 국민건강보험공단, 삼성전자 지금도 탑티어로 평가받는 세 곳을 세 명이 멋지게 최종합격했다.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기뻤다. 근데 몇 시간이 지나서 내 가슴 한켠에는 공허함이 밀려왔다.
골자는 이것이었다. 이렇게 멋진 친구들과 해피엔딩으로 끝났는데, 이런 멋진 친구들과 결과까지 좋은 경험을 또 할 수 있을까?였다. 그래서 한동안 자소서 작업을 못했다. 약간 번아웃 같기도 했었고... (물론 몇 달이 지나 새 시즌에 난 또 새로운 멋진 친구들과 멋진 결과를 만들었고,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면서 그런 번아웃 비슷한 건 다시 찾아오지 않게 됐다^^;;)
요새 어느 때보다 이별을 생각한다. 연인 사이의 이별만 이별이 아니다. 어느 집단에서 믿고 의지하는 누군가와의 이별도 이별이라면 이별이다. 올 초에 5년여 간 같이 살던 룸메이트 동생이 결혼을 하면서 아름다운 이별을 했고, 얼마 전에는 8년 가량을 알고 지낸 동생과 관계를 정리했다. 그 빈 틈을 새로운 무언가로 열심히 채우는 요즘이다.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의 시발점이다. 막말로 우리는 전세계 모든 사람들과 친할 수는 없다. 다른 것보다도 어느 누구에게나 24시간만큼은 동일하게 주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한정된 시간 안에서 우리는 각자 가장 효능감이 높은 선택을 한다. 누구를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가장 유익한 만남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상대적으로 그 만남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생길 수 있다. 점차 교류가 뜸해지면 자연스레 사이는 멀어진다. 나는 꼭 이별의 원인을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사람 사이의 일이란 게 어떻게 논리적으로 규명될 수 있으랴. 사람 싫어지는 데 이유 있나 싶다.
누군가와 이별한다고 해서 그 관계가 무조건 끝난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게 헤어진 누군가와 어떤 자리에서건 다시 만날 수 있다. 관계가 멀어지게 만들었던 그 이유가 무엇인지 까먹을 수도 있고, 멀어진 사이가 돼서 다시 생각해 본 그 사람이 이해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서로의 문제점이 해결될 수도 있고, 서로가 세상(혹은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에 큰 변화가 그 사이에 생겼을 수도 있다. 또, 더 발전된/나아진 모습으로 서로가 서로를 웃으며 마주할 수도 있다. 세상사란 건 참 알기 어렵다, 아니 정확히는 확실한 몇 마디로 정의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누군가와 이별한 것에 너무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100세 시대 아닌가? 그리고 그 사람은 분명 우리의 비슷한 생활반경 안에 머물러 있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된다. 고로, 재회하기 전까지 우린 우리의 눈앞에 놓인 것들을 멋지게 해 나가면 된다. 그 만남이 기적이라고 한다면, 기적은 언제든지 우리에게 찾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기적이 언젠가 내게 찾아올 거란 설렘을 안고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자, 그럼 된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는 소중한 존재들을 아껴주자. 그 존재들과도 언제, 어떤 순간에 이별할 지 모른다. 특히, 나의 변화를 수용해 주는 이라면, 그 사람은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