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인간은 예전의 과거를 그리워한다.
몇 년 전까지의 나는 누구보다도 사랑에 관한 글을 스스럼없이 쓰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있어 사랑은 나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날카로운 바람 같았다. 그 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나에게 무한한 아픔을 주기도 했지만, 나를 촉촉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나의 기록/흔적에 가상의 감정을 덧입혀서 연애일기 매거진을 쓰기도 했다.
몇 달 전, 구독자 5명 가량에게 연애일기를 다시 쓰지 않느냐는 얘기를 들었다. 별 거 아닌 메시지가 나를 되게 쓸쓸하게 만들었다. 문득 다시 촉촉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밀려왔다. 그런데 쉽사리 키보드가 눌려지지 않았다. 이전의 기억이 나에게는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 흐릿하게 남아있는 먼지쌓인 나의 일기장이라서다. 다소 오글거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까지 그런 몽글몽글한 감정을 쉽게 꺼내놨던 나였다.
왤까? 너무 나의 일상에 치여서라고 생각한다. 그 일상이 나를 벗어날 수 없는 쳇바퀴 위에 놓고는 떠나버렸다. 쳇바퀴는 계속 굴러가고, 그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내가 그 바퀴에서 내리려고 하는 순간, 크게 다칠 수밖에 없다. 사실 까짓것 다치면 그만인데 다치는 게 이제 무섭다. 다치고 나면 좀 쉬면 금세 회복된다. 근데 시간이 지나니 뭔가 회복하는 데 날이 갈수록 오래 걸리더라. 그러다 보니 내가 좀 더 편한 것, 익숙한 것에 더 마음을 쏟고 있었다. 머리로는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다치고 회복하는 과정 자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낭만을 쫓던 과거로의 회귀(심지어 그 회귀가 영원한 것도 아니고 잠시간의 일탈인데도 불구하고)를 막고 있었다.
얼마 전에 우연히 누군가의 정말 어린 시절, 푸르던 시절에 사랑이란 그 감정 하나에만 오롯이 몸을 던진 글을 봤다. 그 글을 봤는데, 그게 내 마음이란 우물에 던지는 돌멩이 같았다. 너무 잔잔한 호수에는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만 던져도 금세 파장이 인다. 사람은 원래 시련 속에서 성장한다. 경제학적으로 봐도 시장환경의 급변 속에서 기회가 찾아오고, 그 기회를 잡고 움켜쥐는 이가 성공하지 않는가? 나의 삶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만 외치는데, 그 변화로 다가갈 시도를 안 하던 나에게 그 글은 묘한 떨림을 주었다.
그래서 집구석에 있던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거의 매일 적어놓은 일기를 다시 꺼냈다. 삐뚤빼뚤 적어놓은 글씨였지만, 매일매일 나의 진심을 담으려고 애쓰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났다. 일기장 속 여러 내용 중 초등학교 선생님들께 편지를 쓰던 나의 모습, 크리스마스 때마다 반짝이풀로 메리크리스마스를 써 놓고 종이접기로 트리를 만들어 붙인 카드를 친구들에게 주던 내 모습이 보였다. 그 과거가 너무나 반짝였는데, 저 하늘 위에 닿지 않는 북두칠성 같아서 조금 슬펐다.
완전히 그 때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나의 과거를 조금씩 진지하게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열심히 하던 서예를 시도해봤다. 서예를 하니 예전에 호흡을 통제하면서 조심스레 한 자 한 자 써 내려 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 누군가 나에게 '옛날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으면 나는 단언코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나와 한때 거리가 멀던 아버지와도 화해했고, 5년 전에 무심코 도전했던 나의 일도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 영역 안에서 나름의 바운더리도 구축했다. 그래서일까? 요새 더더욱 과거가 그리워졌다. 상처를 쉽게 받고, 몸서리쳤던 아픔이 과거 안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거가 그리운 거 보면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내용이 아예 나쁜 말만은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