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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태양

알고보니 죽고 싶었던 게 아니라 살려달란 거였어.


ㅣ핏빛 태양.  


매일이 죽고 싶은 하루였다.

거울을 보면 눈물이 흘렀다.

하루 22시간을 송장처럼 깨어 있었다.

간혹가다 기절해 있다 깨어난 나를 볼 때면 

'아직도 살아있어?' 하고 아쉬워했다.

내 얼굴과 입술은 핏기없이 창백하게 매말랐고,

웃는 법 조차 잃어 버렸다.

내가 사라지는 것이 모두에게 상처주지 않고 

지금의 상황을 해결하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수면제를 먹기로 결정했다.

약국에 가서 잠이 안 온다며 수면제를 달라 했다.

약사는 처방전 없인 한 번에 약을 많이 줄 수 없다 했고,

받을 수 있는 최대를 받아 들고,

다음 약국으로 향했다.

그렇게 약을 한 알 한 알 모았다.


혹여나 혼자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펜과 종이를 꺼내 들었다.

온갓 원망과 미움과 억울함이 담긴 편지를 썼다. 

내가 죽고 나면 전해지길 바라면서...

그렇게 매일의 시간이 더디게만 흘러갔다. 

살아도 죽어있는 것처럼...


그러던 어느날 

다시 아침이 찾아 왔고 눈을 떴다.

그리고 다시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다.

그리고 깜짝 놀라 눈을 부비고 

다시 또렷히 떴다.


핏빛 태양이 창살을 가르고 내 코 앞까지 다가왔다.

'아... 드디어 죽었구나.' 

천국은 아닌 것 같았다.

하늘이 저주 받은 듯한 핏빛이었다.

문을 박차고 맨발로 문 앞을 나섰다.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안개가 눈 앞을 막아서고,

시야를 가려 양 손을 휘져으며 맨발로 집 앞 정원을 걸어나갔다.

잠시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이 세상에 온전히 나만 존재하는 것 처럼...

그렇게 한 참을 서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사람의 소리가 들려왔다.


'지독한 황사라고 합니다.'


그제서야 소리가 나는 방향을 돌아보니 어렴풋이 사람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 살아 있구나...'


핏빛 태양이 비치는 안개 속을 헤매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난 잠시 세상에 떠나 있었다.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고, 오로지 고요한 안개 속에서 혼자가 되어보았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나는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있었다.

그토록 죽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죽는 것이 아니라,

살려달라고 몸부림 치는 거였다고...


진짜 죽고자 했으면 언제고 죽을 수 있었을텐데,

나 이렇게 힘들어.

나 이렇게 죽겠어.

나 이렇게 아파.라고 온 몸으로 표정으로 눈빛으로 애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내 스스로 살고자 맘 먹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내가 나를 가둔 감옥에서 탈출했다.

모든 것을 다 버려둔 채.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얼마나 나쁜 건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살고자 했으니까


아마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난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다.


어떤 말을 덧붙이더라도...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중요하다.'


살고자 한다면 뒤돌아보지말고, 

온전히 나를 위한 결정을 해야한다.

내가 살아야 모두가 산다.

그리고 결국 내가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하다.

이기적인 것 따윈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잊혀진다.

좋은 사람이기 이전에 생생히 살아 숨쉬는 사람이 되자.



- 친절한 세인씨의 세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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