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받고 다음?
지금의 신랑과 나는 뜨겁게 연애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덕분에 속도위반으로 아이가 생겼다.
그 당시 나는 첫 책의 출간을 앞두고 있었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였고,
그간 똥 빠지게 고생해 2천만 원의 카드론 빚을 다 갚고 재정적인 악순환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목전을 앞둔 시기였다.
아이가 생긴 날은 스키장에 놀러갔다 분위기에 취해 크루즈 한 병에 취해 밤을 보냈고,(그 이후로 스키장을 가지 않고, 크루즈도 마시지 않는다...) 생리주기가 정확했던 난 배란일이란 것을 알자마자 실수를 직감하고 그날로 응급실로 달려가 사후 피임약을 먹었지만, 2주일이 지나도록 생리를 하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맘으로 약국에 가 임신테스트기를 사서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오갔다.
으악!!!!!!!!!!! 결과는 빨간 줄 두 줄...
신랑은 걱정 말라고 자기가 다 책임지겠노라 말했다.
하지만 창업 3년 째 수익 한 번 못내는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 신랑임을 알았기에 그가 가정을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믿음은 미안하지만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가 나를 사랑하다는 것은 사실이었고,
한 번도 엄마이길 상상조차 한적 없던 내가 내 뱃속에 진짜 내 아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놀랍게도 모성애가 생겨났다.
날 만나기 위해 그 독한 약을 먹었는데도 살아남은 콩알 같은 내 새끼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 아이를 책임지기로 결정했다.
결혼한다 했을 때 주변 모든 사람들은 책도 나오고 이제야 잘 되려는 때가 왔는데,
왜 니 인생을 니 스스로 망치냐며, 내게 아이를 지우길 강요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초음파를 통해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었고, 젤리곰 같이 동그란 두손, 두 발이 달린 아이의 모습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고, 내가 내린 결정을 뒤엎을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갑작스레 준비했던 결혼이었기에, 청첩장을 돌릴 여력도 없었고, 양가 부모님끼리 상견례도 없이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결혼 전날 12시가 되어 ‘저 내일 결혼합니다.’라고 말도 안 되는 결혼 통보를 했지만, 전국에서 친구들이 약속을 취소하고 식장에 달려와 주었고, 겉보기엔 아무 문제없이 행복해 보이는 신부처럼 결혼식을 마칠 수 있었다.
결혼 후 사람들은 내게 늘 경고하듯 이야기했다.
‘세인아 너 결혼하면 절대 지금처럼 살지 못할 거야.’
‘포기할 게 많아질 수밖에 없어.’
’결혼은 희생이야!’
‘여자로서의 인생은 결혼하면 끝이야.’
‘경력단절이란 말이 괜히 생긴 줄 아니?’
...
..
.
한 사람도 빠짐없이 결혼은 불행의 시작인 듯 겁을 줬다.
근데 그런 소릴 들을 때마다 이상하리만큼 오기가 생겼다.
왜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의 탄생이 인생의 장애물이라 생각해야하지? 그리고 그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면 뭘 하면 될까? 하고 말이다.
‘음...임산부 박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그러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임산부인 시기는 인생에 지금 한 번 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엄마가 되더라도 여전히 여자로서, 사업가로서의 내 인생 또한 중요하다 생각하는 나에게 둘째 계획은 아마도 없을 거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임산부 박세인’이라는 시절을 철저히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인생에 또 다시 한 번도 겪지 못할 생명을 품고 낳는 그 과정을 기록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애줌마의 성장일기’라는 임신출산 준비방송을 기획했다.
나처럼 엄마가 될 준비를 미처 하지 못하고 엄마가 된 애기 아줌마들에게 도움이 되는 엄마가 되는 과정을 함께 준비하는 방송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산후조리원 선택법부터, 임산부 패션, 임산부 마사지, 임산부 운동, 육아박람회 쇼핑 노하우, 출산 준비물 챙기기 등... 총 12편의 방송을 기획했고, 매 회마다 배가 불러 오는 모습이 생생히 담겨있는데, 마지막 방송에는 하연이가 태어나 내 품에 처음 안기는 장면까지 담아 두었다.
그 후 그 방송은 휴먼브랜드로서 ‘스스로의 삶을 콘텐츠화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거다’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되었고, 오히려 싱글일 때보다 결혼 후, 임신 후, 출산 후 싱글일 때는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었던 콘텐츠를 다룰 수 있는 확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례가 되었다.
환경이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 환경을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에 집중하자.
그리고 그 환경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자.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다음을 생각하는 습관을 지니면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고개 돌릴 필요 없다.
멀리에서 찾지 말고,
일상을 콘텐츠화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