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우리가 지금 서있는 위치

주관 없는 객관은 존재할 수 없다.




어릴 적 나라는 사람은 참 의존적이고 나약했다.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심하게 당할 때,

소위 말하는 '노는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던 때가 있었다.


그 친구들은 친구가 없던 나와 놀아주는 대신 자신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해야 한다며,

미션을 줬다.


처음 했던 행동은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훔치는 일이었다.

한 명은 바람잡이를 하고, 한 명은 훔치고, 한 명은 밖에서 망을 보고...

3명이 어쩜 그리 호흡이 척척 맞는지,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렇게 손쉽게 훔쳐 나온 아이스크림을 아주 맛있게 먹으며,

재미있는 게임을 하듯 자기들이 최고라며 윙크와 엄지 척을 날려대며 서로를 칭찬했다.

물론 난 그때 그들이 멋있어 보이지도 않았고, 그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난 친구가 필요했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슈퍼를 털었다.


첫 번째 500원짜리 범행을 저지르고 미션을 클리어하고 나니,

다음번에 그 친구들은 내게 더 큰 미션을 주었다.

이번엔 팬시 용품점을 터는 거였다.


그 매장은 주인이 가운데 앉아있고, ㄷ자 모양으로 상품이 전시가 되어있는 매장이었는데,

한 친구가 내게 작은 시계를 훔치라고 시키고 자기는 반대쪽에서 다른 상품을 만지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고개를 돌렸을 때, 난 주머니에 냉큼 시계를 집어넣었고, 후다닥 매장을 달려 나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었고, 손이 벌벌 떨리며, '이건 아니야'를 수백 번 되뇌며 내가 한 행동을 후회했다.


그런데 잠시 뒤 반대쪽에 있던 친구가 걸어 나오더니, "야! 너 걸렸어!"하면서 다가와 내가 가져간 시계를 내놓으라고 했다.

난 '이제 경찰서에 가는 건가...', '이대로 내 인생은 끝인가...' 하면서 주머니에 만지작 거리고 있던 시계를 친구에게 넘기고 멀찍이 있는 기둥 뒤에 숨어 친구를 지켜봤다.

친구는 아주머니에게 유유히 다가가 시계를 돌려드리며,

"아줌마 저 친구가 원래 나쁜 애가 아닌데, 너무 갖고 싶어서 실수를 했나 봐요. 제가 대신 돌려드릴게요. 죄송해요."하면서 고개를 숙여 깍듯이 사과하고 있었다.

훔치라고 시킨 건 그 아이였는데, 원망의 감정보다, 생명의 은인을 만난냥 고맙다고 몇 번을 읊조리며, 심장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심지어 상황을 수습하고 돌아와 내게 '야! 가자!'하고 앞장서 가는 친구의 모습은 엄청 든든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지옥을 다녀온 듯 황급히 매장을 빠져나온 뒤였다.

팬시점 주인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친구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한테 '야! 얘 표정 좀 봐' 하면서 배를 잡고 쓰러졌다.

어리둥절하게 상황 판단을 못하고 있는 나를 보며 세상에서 태어나 나 같이 웃긴 사람은 처음 봤다는 냥 웃어대던 친구가 한참을 웃음을 토해내고 난 뒤, 내게 바짝 다가와 어깨동무를 했다.

그리고 귓속말로 짠~하고 속삭이며, 자신의 속주머니에서 값비싸 보이는 크리스털 장식품을 자랑하듯 꺼내어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덕분에 고맙다~.'


상황인 양, 나를 미끼 삼아 더 큰 것을 노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성공했고, 그 쾌감에 미친 듯 웃어댔던 거였고...

그때 느낌 섬뜻함은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도 닭살이 파드득 돋을 만큼 내겐 충격적인 기억이었다.


'아, 이 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이런 친구들과 내가 계속 어울린다면 나중에 내 모습은 저렇게 변하겠구나...'

나는 무서워졌다.

그래서 그 사건 이후 그 친구들을 버렸고, 다시 외톨이가 되기를 선택했다.


그때 나는 정말 어린 나이었지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됐었다.

나라는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너무나 큰 영향을 받고 다른 사람의 말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만큼 자존감이 낮았으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 커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타인의 모방 행동을 일삼고, 주어진 환경에 맞춰 나도 모르게 조종당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비록 혼자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소신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느꼈다.

나쁜 짓을 하고 싶은 유혹이 생길 때, 아니란 걸 알면서도 하고 싶은 욕구가 넘쳐날 때,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엄마를 떠올리고,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할머니를 떠올렸다.

내가 비뚤어진다면 가장 슬퍼하고 아파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옳지 못한 내 행동을 제어할 수 있었다.

그렇게 길에서 살짝 벗어날 때면 다시 핸들을 돌려 잡아가며 지금껏 앞으로 달려왔다.

 

만약 내가 그 당시의 외로움 대신 그 친구들을 선택했다면,

그리고 그런 관계를 계속 유지해갔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아마도... 지금의 나 같은 사람이 되진 못했겠지...


우리는 대화 중 '객관적으로 말하면!'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하는데!

그 객관이라는 것은 내가 살아온 환경과

지금 내가 서있는 위치, 내가 속해있는 그룹의 주관이 모여 형성된다.


인생을 늘 불행하다 말하는 그룹에 속해있는 사람은 누구나 불행하다 생각할 수 있다.

나쁜 짓이 그게 뭐 어때라고 말하는 사람이 속해있는 그룹에서 웬만한 나쁜 짓은 애교로 보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가진 환경을

좀 더 바른 주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좀 더 성장을 바라는 사람들이 움직이고,

좀 더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 주관이 객관이라 주장할 때에는,

내 갇혀있는 객관에 의해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화되어 있는 대중적인 객관과의 균형을 통해 그것의 옳고 그름을 알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 관점에서 옳다고 믿는 것이 결코 옳은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는데서

우리는 세상을 넓게 보는 눈이 생기고 타인을 이해하는 정도가 더 깊어진다.

즉, 내가 품을 수 있는 인격의 그릇이 넓어지는 것이다.


지금 한 번 내 주변을 둘러보자.

내 주변엔 어떤 주관이 모여 객관이 되었는지...







친절한 세인씨의 세인생각 中









매거진의 이전글 이것 때문에 꿈 꾸지 못한다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