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의 약속인 형제간의 우애 지키기...
2025년 11월 8일, 대부도의 가을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약속이었다.
드디어 어제, 두 분 형님을 대부도로 초대했다.
아버지의 붓글씨 세트로 생겼던 작은 오해도 웃으며 풀었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언제나 그랬듯, 두 형님은 나에게 든든한 존재였다.
현철이 형은 여전히 부러운 사람이다.
공무원 1급으로 퇴직한 뒤에도 4.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자문연구원으로 다시 선발되어,
지금은 주 2회 세종에서 근무를 이어간다.
60세의 나이에 새로운 기회를 얻은 그의 모습은 그저 존경스러웠다.
우창이 형 역시 변함없이 자기 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순간 ‘나만 이렇게 멈춰 있는 건가’ 싶다가도 곧 웃음이 났다.
‘그래, 지금의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꿈꾸는 자유로운 사람이지.’
그렇게 나 자신을 다독였다.
집 앞 식자재마트에서 만나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우창이 형과 10분 남짓 이야기를 나누다,
괜히 계산을 미루는 모양새가 될까 싶어 미리 계산을 했다.
김치, 소시지, 맥주, 소주, 고기 두 팩.
그리고 집에 있는 새우와 어묵이면 충분했다.
고기가 많아 보였지만, 결국엔 모자랐다.
잠시 뒤 도착한 현철이 형은
“내일 아침은 내가 살게.”
웃으며 형다운 제안을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집으로 향했다.
도착하자 형님들은 텃밭부터 둘러보셨다.
피아노가 있는 음악관, 자전거가 놓인 스포츠관,
책과 서재가 있는 거실을 보고는 “역시 너답다”고 웃으셨다.
나는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아끼는 화이트보드를 자랑했다.
그게 내 요즘 ‘생각의 놀이터’니까.
마트에서 우유팩 네 개를 사서 야구를 하자고 하니,
형님들은 “그걸로 뭘 하려고?” 하며 웃었다.
결국 다음 날 아침,
둘이서 잠시 초등 시절로 돌아간 듯 공놀이를 했다.
겨우 십 분 남짓이었지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몸은 금세 지쳤지만, 마음만은 소년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해 질 무렵, 바닷가로 향했다.
마침 만조 시간과 맞물려 운이 좋았다.
날씨는 맑다가 점점 흐려지더니,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형님들은 그 풍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이미 여러 번 본 장면이었지만,
형님들의 감탄 속에서 오히려 새삼 그 아름다움을 느꼈다.
벤치에 앉아 “이곳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입니다.”
그렇게 말하니 형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저녁은 소박하지만 풍성했다.
고기, 새우, 어묵탕.
정종 한 잔씩 기울이며 옛날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고양이 치즈가 어슬렁 나타나
손님 맞이에 한몫했다.
자신만의 품격으로 거실을 거닐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사라졌다.
식사가 끝나고 라면으로 마무리를 하려는데,
새우 세 마리를 빼놓고 끓인 걸 그만 잊고 말았다.
순간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퍼진 라면을 끓였다고 형과 누나가 안 먹겠다던 그날.
혼자 먹던 나를 보고 엄마가 형들을 혼내셨던 장면이 스쳤다.
어제의 라면은 새우가 빠졌지만,
고추를 더 넣은 내 방식 덕에 여전히 맛있었다.
잠자리를 준비하며 작은방에 전기장판을 깔아드렸다.
두 형님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조차 정겹게 들렸다.
아침 8시쯤 함께 일어나 주변을 정리하고
함께 ‘풍경’ 식당으로 향했다.
얼큰칼국수로 속을 달랜 뒤,
현철이 형이 말했다.
“봄이 오면 세종으로 한 번 초대할게.”
귀가 전, 아내가 챙겨준 호박 설은 것과
형님이 좋아하던 땅콩을 드리니 참 좋아하셨다.
그 모습에 괜히 뿌듯했다.
짧지만 따뜻한 하루였다.
형님들은 여전히 나의 길잡이이고,
나는 여전히 그들의 막내였다.
삶의 속도는 다르지만,
서로의 온기를 확인할 수 있었던
그 하루가 참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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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런 소박한 하루가 삶의 진짜 의미를 알려준다.
젊은 날엔 앞만 보느라 형들의 걸음을 보지 못했고,
지금은 뒤돌아보니 나도 어느새 그 길 위에 서 있었다.
바다의 석양처럼,
우리의 인생도 저물어가지만 그 빛만큼은 여전히 따뜻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록한다 —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순간들을,
‘살아 있음’의 증거로 남기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