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로 부터...

수년만에 돌아온 아버지의 애장품

by Blue paper

2025.11.8

이번주, 여러 일정과 가족 초대를 마치고 이제 서울 집으로 퇴근한다.
며칠 전, 형에게서 아버지께서 생전에 소장하시던 서예 용품을 내가 이어받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와 설레는 마음으로 보자기를 하나둘씩 풀어본다. 형은 그동안 여러 사정으로 챙겨보지 못했고, 내가 관심을 보이자 이번 기회에 직접 써보고 배우면 좋겠다고 흔쾌히 양보해 주었다.


‘유품’이라 부르기엔 왠지 마음이 서늘하다.
그저 아버지가 평소 소중히 여기셨던 애장품을 내가 이어받는 일이라 부르고 싶다. 단어 하나에도 마음이 묘하게 흔들리기에, 굳이 ‘유품’이라 하지 하고 싶지가 않다.


보자기의 매듭을 조심스레 풀며 안의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본다. 설렘과 함께, 불현듯 밀려오는 울림을 애써 누르며 천천히 살펴본다. 보자기는 두 개였고, 그중 하나에는 거의 쓰지 않으신 듯한 서예붓과 인장 세트가 있었다. 작은 나무 상자 두 개 안에는 사용 흔적조차 없었다.
아마도 너무 아끼신 나머지 손도 대지 못하셨던 것이리라. 아니면 언젠가 형이나 나에게 물려주실 날을 생각하며 고이 간직하셨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옆에는 평소 사용하시던 대형 벼루 한 점과 소형 벼루 한 점, 그리고 ‘대덕성당 10주년 기념글’이라 적힌 작품이 있었다. 글씨는 ‘석천(石泉)’이라는 분의 필체였다.
또 하나의 보자기 속에는 ‘근봉(謹封)’이라 적힌 화선지로 곱게 접혀 있었고, 그 안에는 아버지께서 직접 만드신 작은 화선지 봉투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솔직히 내용의 이해가 어려워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하나하나 풀이해 보았다. 완전한 해석은 아니었지만, 내 나름의 추정을 해본다.
아마 ‘석천’이라는 분께서 대덕성당 10주년을 기념하며 아버지께 서예 작품을 선물하셨거나 어떤 이유로 보관하고 계셨던 것 같고 아버지는 그분의 조언을 받아 막내아들 ‘경재(京宰)’의 이름을 지으신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점점 풀어가면서 그 내용의 추정은 틀렸던 것 같으나 그냥 그렇게 믿고 싶어진다
그리고 ‘근봉’이라 적힌 화선지 속에는 그에 대한 감사의 뜻과 함께 무엇인가를 확정하고 봉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봉(謹封) 內 화선지 손봉투

그렇게 한 자 한 자 풀이를 해 가는 약 30~40분 동안, 마음은 어느새 긴장과 설렘으로 뒤섞였다. 처음엔 도무지 뜻을 알 수 없었지만, 아들의 작명과정이라고 유추를 하면서 온몸이 전율했다.
물론 내 해석이 완전히 다르다 할지언정 그 속에 담긴 아버지의 따뜻한 애정만큼은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한동안 잊고 지냈던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움이 밀려와 잠시 눈을 감았다.


막내아들 경재는 돌이 채 되기 전, 아내의 직장 문제로 대구 본가에서 자랐다.
우리는 일주일 혹은 격주마다 내려가 성장 과정을 지켜보곤 했다. 부모님께서 형님 댁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던 탓에, 경재는 나보다 큰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일까, 어릴 적 나를 보면 “작은아빠!” 하며 달려오곤 했다.
이제는 스물다섯을 훌쩍 넘긴 청년이 되었고, 육군병장으로 재대를 하고 지금은 어느덧 취업 준비 중이지만,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꺼내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아마 결혼을 하고 나서도 ‘작은아빠’라는 말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어머니께 “부리부리 박사!” 노래를 불렀던 이야기를 여전히 지금도 듣고 있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지금 군위의 카톨릭묘원에 모셔져 있다.
멀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지만, 이번에 아버지의 애장품을 직접 물려받으며 새삼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세월을 넘어 “이제 네 차례다” 하고 붓과 벼루를 물려 주시면서 조용히 말씀하시는 듯했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아버지의 기다림 속으로 깊이 잠겨들었다.


#아버지의기다림 #서예이야기 #가족의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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