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여사의 개그코드
더워도 너무 덥다.
이런 날씨에 짜증은 기본 태도로 장착이 되기 일쑤다.
비교적 더위에 강한 나도 이런데, 우리 강여사 더위에 쩔쩔매는 중이다.
휴가는 5월에 벌써 신나게 다녀온 터라, 달리 여름휴가 계획이 없다.
그런 통에 요즘은 매일 더위를 어찌 사냥하나 고심 중이다.
시원한 냉면으로 하루, 시원한 영화로 하루, 시원한 샤워로 하루, 하루...
선풍기를 사랑하는 강여사도 이번 여름은 버틸 재간이 없나 보다.
에어컨 틀자. 틀어야지 안 되겠다
에어컨 틀자, 소리를 먼저 하는 강여사를 처음 본다.
기념비적인 더위에 기념비적인 여름이다.
매일 이벤트를 하다시피 더위를 날릴 궁리에 창의력을 소환 중이지만,
어디 시원한 계곡이라도 가고, 바다로 가고, 산으로 가지 않는 한
반짝하는 창의력은 잠시뿐이다. 이젠 그마저도 고갈...
시원한 냉국으로 아침 겸 점심으로 잠시 더위와 대치해 보지만
강렬한 열기를 내뿜는 2시를 향한 시침과 분침에 슬슬 전의를 상실하고야 만다.
- 엄마, 피서 가자
- 피서? 어디로?
강여사 눈이 반짝거린다.
- 카페!
- 카페? 어디 카페?
어디 경치 좋은 카페라도 가나 싶어 강여사의 얼굴이 환해진다.
딸들과 놀러 가는 걸 즐기는 강여사의 얼굴에 호기심과 기대에 찬 빛이 역력하다.
- 요기 집 앞 카페
- 아, 집 앞 그 카페
- 시원하게 카페 가서 차 한잔하고 오자. 책도 좀 읽고 그러다 보면 시원해질 거야.
살짝 실망한 티를 엿봤지만, 모르쇠로 외면하고 내 할 말만 한다.
- 그게 피서지 뭐. 선풍기도 너무 틀어서 더운 바람 나오네. TV열기도 뜨겁고. 나가자, 엄마~
그럴까? 하시더니,
- 나 안 갈래. 옷 갈아입기도 귀찮고, 더워서 나가기 싫어졌어.
- 그럼 옷 갈아입지 말고 그냥 나가면 되잖아. 코앞 카페인데 뭘 갈아입어.
정~ 뭐 하면 그냥 위에 티셔츠만 갈아입으시던지. 귀찮아도 막상 가서 시원한 차 한잔 하면
'나오길 잘했다' 하실걸. 어서 나가자. 나간다고 했으니까 빨리 나가요.
조른다. 아니 반강제다.
- 나가 보셔. 막상 가면 시원하고 좋다, 잘 나왔다 하실걸.
- 아~니~ 그렇게 생각해도 속으로만 생각하지. 너한테 입 밖으로 말 안 할 거야.
- 아, 놔~ 참~
민소매 티셔츠에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청반바지로 마지못해 옷을 갈아입고 나온 강여사.
- 옷 시원해 보이고 예쁘네. 근데 옷 안 갈아입으면 어때. 집 앞인데 그냥 나오시면 되지.
다른 사람들도 그냥 다 편하게 입고 나와, 누가 집 앞에 나오면서 옷을 갈아입어.
- 너 갈아입었잖아.
- 내가 뭘 갈아입어.
- 반바지에 티셔츠면 갈아입은 거지.
- 나는 잠옷 입고 있었으니까 갈아입은 거고. 엄마는 가만 보면 남들 신경 너무 써.
내가 편한 게 중요하지. 집에서 입던 옷 입고 나오는 게 뭐 어때서.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지. 딸하고 같이 나오면서 깔끔하게 하고 나와야지.
딸은 깔끔하게 입고 나왔는데, 엄마가 옷을 저렇게 입고 나왔네,
하고 사람들이 뭐라 하지.
- 나도 대충 하고 나왔는데 뭘.
- 너는 젊으니까 대충 입어도 괜찮지만, 나이 든 사람이 추레하게 입고 나오면 사람들이 뭐라 하지.
딸은 깔끔하게 안 입어도 엄마가 깔끔하게 입고 나와야 딸들이 좋아.
- 그런 게 어딨어. 다들 신경도 안 써. 요즘 누가 그런 걸 신경 써.
안 그래. 딸들은 깔끔하게 입고 나왔는데 엄마가 저렇게 입고 나왔네, 하고 다들 안 듣는 곳에서 흉봐. 나이 들수록 깔끔하게 옷차림도 해야 나이 든 사람도 좋고,
딸 흉도 안 잡히고 좋아.
음, 뭐랄까. 강여사는 가끔 종종 아니, 자주 예상 밖의 일들에서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드신다.
분위기를 바꿔볼까?
- 집에서는 아무렇게나 막 입으면서 뭐 나올 때만 그래.
- 집은 집이니까, 아무도 안 보니까 편하게 나 좋을 대로 입는 거고. 나올 때는 신경을 써야지.
- 그런 게 어딨어. 사람이 안에서나 밖에서나 한결같아야지.
야야, 나같이 한결같은 사람이 어딨다고. 나 한결같은 사람이야.
부드러운 ◎◎(엄마 이름)
- 뭐라고, 엄마? 뭐 하시다고?
- 부ㆍ드ㆍ러ㆍ운 ◎ㆍ◎
- 부드럽다고?
오늘도 귀여운 강여사. 웃다 보니 카페에 도착.
나는 지금 이렇게 강여사와의 담소를 글로 남기는 중이고,
강여사는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들의 신나는 노래 경연을 시청하며 웃음이 픽픽 새어 나오고,
(카페라... 이어폰을 끼는 게 익숙하지 않으신데도 귀에 잘 꽂고 시청 중이시다)
이게 피서지 뭐. 이게 행복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