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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마녀 Sep 14. 2023

악질이었어

나의 그리운 아빠는


나에겐 심파 픽션이지만, 엄마에게는 악질 논픽션이었다.


9월이 막 시작된 일요일 오후. 강여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이번 추석 차례상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을 올리자는 얘기가 나왔다.


아빠는 뭘 좋아했어?


막걸리 좋아했지.  소주는 머리가 아프다고 막걸리 잘 마셨어.


맞다. 나도 기억나. 아빠 심부름으로 노란 주전자 들고 막걸리 받으러 심부름 갔던 거 기억나


그래, 그랬어. 그게 기억나?


응.  또?


그 있잖아, 샤브레 과자 좋아했어.  그래서 가끔씩 너희 잘 때 샤브레 과자 사다가 머리맡에 놓아두곤 했지. 꼭 제과점에 가서 샤브레 사다가... 아, 쿠키도 잘 사다가 너희 먹이곤 했어.  


아니, 우리 잘 사다 주신 거 말고, 아빠가 잘 드신 거 말이야?


그래, 아빠도 좋아했어.  네 아빠는 단거 좋아해서 주머니 속에 눈깔사탕을 넣고 다니면서 먹곤 했어.


그러셨구나. 그럼 이번 추석 때는 차례상에 올리는 전통 과자 말고 아빠 잘 드셨던 샤브레랑 눈깔사탕 사다가 올리자 엄마, 어때?


그래, 그것도 좋을 것 같네.

너희 아빠는 샤브레 과자를 꼭 제과점에 가서 샀어.  너희 먹이는 과자는 그냥 일반 가게 안 가고 꼭 제과점에 가서 사다 주곤 했었어. 지금이야 가게에 가면 다 있는 과자지만...


가끔 오늘처럼 아빠 얘기를 자연스럽게 할 때가 있는데, 그날은 웬일인지 초반 강여사의 말이 부드러웠다.


니 아빠가 너희한테 그렇게 했어...


그래, 그럼 우리도 제과점에 가서 샤브레랑 쿠키 있나 보고 사서, 이번 추석 차례상에 올리자.


아, 우리 아빠... 그러셨구나... 힝... 아빠 보고 싶다... 마음이 몽글하려던 순간,


그랬는데, 이리로 오면서 그런 것도 다 끊고 못 먹였지.


이 말은 곧 아빠에 대한 나쁜 얘기로 이어질 거란 신호다.  엄마와 나누는 아빠의 얘기에는 언제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그리워하는 아빠의 삶은 이렇다.


어린 시절, 강원도에서의 우리 집은 나름 윤택했다(고 기억하는데, 강여사의 말을 들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듯싶다. 아무튼 내 기억은 그렇다).  아빠는 제법 유명했던 회사에서 보일러 엔지니어로 일을 했지만, 남 밑에서는 일을 못한다며 잘 나가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독립하여 직접 보일러를 제작하는 전문점을 차리셨다.  


우리 집은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이었는데(그렇다고 대저택 같은 건 아니고, 가로로 긴 마당이 있는 슬래브 지붕 집이었다), 공작새도 키우고, 토끼도 키우고, 한 번은 밖에서 놀다 집에 와보니 돼지우리도 생겼다.(이때의 아버지의 직업 정체성은 뭐였는지 살짝 헷갈리긴 한다.)


어느 날은 외지에서 공작새를 보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또 어는 날은 돼지를 잡았다고 동네잔치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날에는 어린 꼬마의 마음에도 우쭐한 마음이 들어 일부러 새장에 들어가 알을 꺼내오며 으스대기도 하고, 공작새에게 날개를 펼쳐 보이라며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기억에는 내 말을 잘 들어 안 펼치던 날개도 촥촥 펼치고 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진실은 공작만 알겠지)


공작새 깃털이 빠지면 그걸 잘 모아두었다가 친구들에게 선물도 하고, 우리 공작새를 보러 온 외지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기도 했다.  아무튼 우리 집에는 공작 깃털 장식이 꽤나 있었다.  이렇게 내가 동화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엄마는 시들어 가고 있었다.


강여사와 아빠 얘기를 할 때면 늘 웃음으로 시작했다 원망으로 끝난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도 몇 해가 넘었는데 엄마는 아빠가 계속 미우냐며, 이제는 돌아가신 분 용서를 해드려도 되지 않냐고, 아빠와 좋았던 기억은 없냐고 물어도 엄마의 대답은 늘 들어 올리기 힘든 무거운 돌덩이 같다. 아직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감정 덩어리...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강여사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한테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어?


어떤 사람?
음...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지, 남한테는.  정말 잘했어.  다른 사람 안된 거 보면 다 도와주고 우리 집 때거리가 없어도 남의 집 때거리 없다고 하면 우리 집에 있는 거 다 갖다 퍼다 주고, 우리 집은 굶어 죽거나 말거나..


아... 하하하.... 단적으로 딱 말하면? 예를 들어, 아빠는 나쁜 사람이었다? 뭐... 이렇게..


그래, 나한테는 나쁜 사람이었지.


그렇구나.  근데 그건 내가 예를 든 표현이고, 엄마의 표현으로 하면?


내 표현으로 하면?


강여사는 아빠를 떠올리며 뭔가 말을 내뱉으려다,


아이 흐 정말...


잠깐 몸서리치듯 하다 순식간에 생각을 떨쳐내듯 말을 속으로 밀쳐내셨다. 아무래도 뭔가 마음에 걸리시는 듯했다.


음... 아빠 욕해도 괜찮아 엄마, 엄마 솔직한 감정이나 생각을 말해주면 돼.
뭐, 예를 들어 죽일 인간? 하하하 (아빠 미안해)


엄마의 대답을 이끌어 내기 위해 좀 강한 표현을 써서 물었다.


아니, 죽일 인간은 뭐 그렇게까지는... 그리고 뭐 이미 죽었는데 죽이긴 뭘 죽여..


응. 그럼, 아빠는 엄마한테 어떤 남편이었어? 남편으로서?


남편으로서?


....... 몇 초를 망설이시더니....) 나한테는 악질이었지.


악질? 아빠가 엄마한테는 악질이셨구나...


굳게 결심이라도 하신 듯 속에 담은 응어리를 툭 내뱉으셨다.



너희 아빠는 다른 사람한테는 다 좋은 사람이었어도 나한테는 정말 악질이었어.



나쁜 말이 나올 거라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악질이란 말에는 내심 '어쿠야' 했다.  하지만 질문해 놓고 뭐 그런 말을 하시냐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엄마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해야 했기에 나는 엄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 젊었을 때 한 번은 너무 힘들어서 코피가 나고 빈혈이 왔어.  그걸 본 동네 이웃이 너무 병원 약만 먹으면 속 다칠 수도 있으니까 한약을 몇 재 먹어 보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한약이 비싸니까 약재만 받아다 집에서 다리고 있는데, 그걸 니 아빠가 집에 와서 보더니

'보약 지어먹는 년'이라면서 발로 약탕기를 차 버리는 거야.(엄마의 감정과 기억이 섞인 말이라... 진짜 년?이라고 하셨을까 싶기는 하지만, 일단 입 꾹 다물고 들었다)

어찌나 내가.... 그때 생각하면 정말 순~악질이었어 너네 아빠는 나한테.


강여사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엄마의 마음은 애증 덩어리가 되었으리라.

아빠 얘기를 나눌 때면 웃음으로 시작해 원망으로 끝나는 이유가 되었으리라.


악질(惡質)
1. 못된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사람.


진짜?


속으로 놀랐지만, 그리 놀란 척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악질이었던 아빠가 내게도 악질 아빠로 기억될 것 같아서.


우리 아빠 악질 맞으셨네.  엄마한테 어떻게 그렇게 하셨대. 엄마 내가 아빠 야단쳐 줄게.   


나는 불쑥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엄마의 눈물을 보지 않기 위해서. 더는 악질 아빠의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   거실 한편에 걸려 있는 아빠 사진 앞으로 후다닥 가서 강여사 들으라고 큰 소리로 아빠를 호통쳤다.


아빠, 진짜 그랬어? 약탕기 걷어차고 엄마한테 보약 지어먹는 년이라고 했어? 아빠 진짜 악질이셨네.  
왜 그랬어 엄마한테!

생전에는 엄마한테 그렇게 못되게 구시다 만회도 못하시고 돌아가셨으니까, 하늘에서는 엄마 잘 보살펴 줘.  엄마 100세까지 아니 넘도록 건강하게 잘 사시도록 아빠가 엄마 보호하고 지켜줘야 해.  

그래서 악질에서, 나쁜 사람에서 엄마 지켜주는 좋은 사람으로 아빠 거듭나셔야 해. 아셨지?
엄마 꼭 건강하게 지켜주셔야 해!

엄마, 내가 아빠 야단쳤어. 잘했지? 이제 아빠가 하늘에서라도 엄마한테 만회하시려고 엄마 지켜줄 거야.


하하하하하... 아이크 웃겨라. 알았어 알았어. 잘했어.



아빠에 대한 강여사의 애증은 유서 깊다.  


애증이라 함은 끝까지 아빠를 돌보고 아빠 곁을 지키고 아빠를 철저히 기리고 있는 건 강여사기 때문이다.


젊어서는 '친구 따라 강남 다니며' 온 가족을 이리저리로 끌고 다닌 것도 모자라 사람들을 쉽게 믿고 퍼다 주기 일쑤였으니 그걸 지켜보며 그 여파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젊은 아낙의 심정이란...


뭣도 모르고 이사 간다고 칭얼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천진난만하게 개구쟁이짓을 하고 다니는 어린 새끼들을 보며 서러웠을까 서글펐을까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이제는 좀 살만하다 싶으니 친구 꼬임에 넘어가 홀라당 전재산 털어 돌덩이 땅을 사고, 뒤통수친 친구 때문에 충격을 받아 쓰러진 남편을 봤을 때 무서웠을까 무너져 내렸을까


다시 멀쩡한 몸을 만들어 일하겠다며 매일 운동하러 나가 넘어지고 일어서려 발버둥 치기를 반복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그 썩어 문드러지는 마음속 어디쯤에서 헤매었을까


세월을 이기지 못해 쇠약해지면서도 불편해진 몸을 받아들이지 못해 날로 강짜가 심해지는 남편을 마주하면서는 또 얼마나 힘에 부쳤을까


어떻게 강여사의 심정을 내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감히.  아빠 같은 남편도, 나 같은 자식도 없어본 내가 어떻게.  눈부시게 찬란했을 청춘을 남편과 자식들에게 온전히 받친 이 여자의 고단했던 삶을 살아보지 않고서 어떻게 감히.


어쩔 수 없이,

유서(由緖)
[명사] 예로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까닭과 내력.

가 깊을 수밖에.


제과점 과자 아니면 우리 입에 넣어 주지도 않았던 아빠는 엄마에게는 왜 그렇게 못된 성질을 부리셨을까.

.

.

.

내가 그리워하고 애끓는 아빠와 엄마의 남편 사이에는 이렇게나 큰 간극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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