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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마녀 Oct 24. 2023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ㅣ 허블

#시작  


이런 반전의 책 제목이라니.  에세이인줄...


올초 북스타그램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즈음

여러 책 계정의 피드에서 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제목이 너무 신선하고 표지도 예뻐서 에세이인가

하고 책 소개 내용을 봤는데

앗?! SF소설?!


당시까지만 해도 소설은 멀리해 온 터인데

하물며 국내 SF소설이라니...

내 독서 취향과 거리가 먼 책일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북스타그램 친구들의 극찬 위에 극찬이 쌓여

시선이 머물렀다.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라는 북스타그램 친구들과

읽게 되면 공유하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그러다 기억에서 멀어질 때 즈음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낯익은 커버의

책과 조우했다.  시간 여유가 있어

한 장 한 장 넘겼는데 놀라움의 연속


책 커버를 넘기는 순간 들어온

93년생 김초엽 작가

출생 연도에 놀라고, SF적 작가 이름에 놀라고


그렇게 책의 첫 단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순식간에 눈과 손끝을 빨아들였다.


놀라움의 여파는 이후 이어진 저녁 모임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93년생 국내 SF소설에 대하여


며칠 지나지 않아 지인과 최인아 책방에서

만났는데, 책을 선물하겠다고 하여

고민 없이 이 책을 선택했다.


하지만 바로 빨려 들어가지는 못했다.

손을 대면 뗄 수 없을 것 같아

제대로 빠질 수 있는 때를 찾았다.


지금,

반전의 제목이 이끄는 이 책에 매료될 시간

다시 마주한 순례자들이 왜 돌아오지 않는지 알게 되는 순간


그녀는 얼굴에 흉측한 얼룩을 가지고 태어나도, 질병이 있어도,
팔 하나가 없어도 불행하지 않은  세계를 찾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중에서


그런 세상을 우리는 지구에서 꿈꾼다.

다른 지구가 아닌, 지지고 볶아도

이 지구에서 함께 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에

씁쓸하고 쓰리다.  

순례자들이 돌아오지 않아서 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2 중에


제법 그럴법한 이야기 아닌가.  

멀지 않은 미래에 아니 이미 와 있는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관내 분실'


아빠가 그러니까 나의 그리운 아빠가

하늘나라로 소풍을 떠나신 지 몇 해째인가

아직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기만 하다.


눈물이 멈출 때쯤 힘겹게 버티고 있던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늙어버린 작은 여자


엄마에 대한 집착은 그때부터였다.

건강을 핑계로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엄마는 늘 귀찮아한다.


그래도 엄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너무 작은 여자, 너무 사랑스러운 여자

나의 엄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엄마와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다.

오래오래 이 세상에서 이어가고 싶다.

엄마는 우리를 세상과 연결해 준 우주니까.


하나의 우주를 잃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겹고 그립다.

또 하나의 우주는 오래오래 품고 싶다.


엄마가 우리와 연결되었음을

알게 해 드리고 싶다.

그래서 엄마가 몹시도 궁금하다.


엄마의 청춘은 어땠을지


엄마의 10대는 어땠을까.  

20대에는 뭐에 설레었을까.  

30대엔 어떤 꿈을 품었을까.


엄마에게도 눈부신 청춘이 있었을 텐데.


@관내분실



스무 살의 엄마, 세계 한가운데에 있었을 엄마,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이었을 엄마.
인덱스를 가진 엄마.
쏟아지는 조명 속에서 춤을 추고,
선과 선 사이에 존재하는 이름과 목소리와
형상을 가진 엄마.

- <관내분실> 중에서



'관내분실'은 세상과 단절되었던 엄마

가족에게서도 이해받지 못했던 엄마

죽은 후에도 잊힌 엄마의 이야기다.


도서관에 삶의 기억과 기록이 존재하는데 찾을 수 없는 엄마

영원히 이 세상에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던 엄마

그 엄마를 찾는 여정에서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게 된 딸의 이야기이다.


아, 맞다.  SF 지.  

읽는 내내 잊고 말았다.

그리고 몹시도 흔들렸다. 유독.


아빠가 잘 계시나,

엄마는 지금 괜찮나

컴퓨터 위로 고개를 빼꼼 들어 엄마를 본다.




#마침


후루룩 맛있는 국수를 면치기 하며 한 번에 빨아들이듯  

소설 한 편 한편을 빨아들였다.

아니, 정확히는 빨려 들어갔다.  


올해 '아버지의 해방일지' 이후로 흡인력이 좋은

두 번째 책을 만나 여간 흥미진진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7편의

소설로 구성된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이다.

그중 한 작품의 제목이 소설집 전체의 제목으로

자리 잡았다.  



<책의 차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007
스펙트럼 .057
공생 가설 .097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45
감정의 물성 .189
관내분실 .219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273



한 편 한 편 다 다르지만 각 소설들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

인간(의 본성), 사랑, 이해.


끝없이 상상의 나래를 편 전 우주적인 미래 과학 소설이라기보다는

시대를 관통하는 모순과 불합리, 아픔과 슬픔, 초인류적인 사랑과

이해가 있는 에세이 같다.


너무 멀리 있지 않은, 어쩌면 이미 와 있는데 놓치고 있는지 모를

그럴법한 시대의 삶


AI와 로봇 같은 최첨단 과학이 선사하는 편안함과 안락함 속에서도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시대적 삶


그런 삶 속에서 인간이란 그렇지,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고 있는 쟁점들을 생생하게 끌어내면서도

인간다운, 인간만이 느끼고 가질 수 있는 감정과

온기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젊은 작가의 힘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굉장히 지적인 상상력과 현실감을 맛보았다고나 할까.


이 책이 그리 멀리 느껴지지 않는 비결이 아닌가 싶기도 한 지점이다.


@우리기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거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중에서



우리가 이 지구에서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지켜낼 수 없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는

우주가 있은들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요즘같이 보이지 않는 총성,

보이는 총성까지 난무하는 시대에

더 그 의미가 뼈아프게 느껴지는 걸

어찌할 도리가 없다.

.

.

.

당신은 빛의 속도로 가고 싶은 곳이 있나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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