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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녀책빵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ㅣ 홍한별 옮김

by 친절한 마녀

#시작


"이제 펄롱은 과거에 머물지 않기로 했다."


소란스럽던 오전 시간을 지나

한숨 돌리고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니

언제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시침이

오후 2시쯤에 와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삐 시간을

재촉하다 고개를 들어보면 언제나

그 시간이다. 시간이 날 데리고

온 건가, 내가 시간을 끌고 온 건가


잠시 멈춰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삶은 다른 방향으로 흐를까, 아니면

마찬가지일까. 삶에 쉼표를 생각해

보지만, 유속이 빠른 시간에 떠밀려가곤 한다.



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 -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
.
내일이 저물 때도 생각이 비슷하게 흘러가면서 또다시 다음 날 일에 골몰하리란 걸 펄롱은 알았다.



단호하게 과거를 흘려보내고

앞을 향해 달려온 펄롱은

소란한 시간을 지나 재깍재깍

발자국을 떼며 오후 2시쯤에 다다른 듯하다.


흘러간 시간을 지나 오후 2시쯤에 이른

펄롱의 삶을 따라 흘러오자니

마음이 헛헛하고 무료하다.

딱히 고생한 흔적이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그러하다.



#읽는 중에


삶이 고달프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침대 속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러나 펄롱은 꾸역꾸역 몸을 움직여 길 건너 불 켜진 이웃집으로 갔다.


종종 아니 거의 매일 삶이 고달퍼

이불속에 파묻혀 있곤 한다.

꾸역꾸역 몸을 움직이는 건

대단한 근성이다.


시곗바늘처럼 돌아가는 삶에

회의가 들고 무료하고 때론 지쳐도

그 삶을 지켜나가는 힘은

온전히 근성에서 나온다.


펄롱은 그런 근성을 지녔다.

꾸역꾸역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그의 근성이 아내와 아이들,

자신의 일을 지켜내고 있다.


불우했던 출생과 성장기에도

펄롱은 앞을 향해 나아갔고

어엿한 가장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이 평온한 삶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펄롱이지만

문득문득 이 평온을 가로지르는

의문에 휩싸이곤 한다.



이 위는 이렇게 고요한데 왜 평화로운 느낌이 들지 않는 걸까?
아직 동이 트기 전이었고 펄롱은 검게 반짝이는 강을 내려다보았다. 강 표면에 불 켜진 마을이 똑같은 모습으로 반사되었다.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보면 훨씬 좋아 보이는 게 참 많았다. 펄롱은 마을의 모습과 물에 비친 그림자 중에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지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다.



펄롱은 뒤도 옆도 보지 않은 채

달리고 있는 자신의 삶에 뭔가

불편함을 느낀다. 깨고 싶지는 않은데

아늑한 삶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 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 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가끔씩 이런다.

아니 어쩌면 늘 이런 식일지도.

생각과 마음이 따로 논다.

마음과 행동 사이에 큰 간극을 이뤄 위선자처럼


어린 조카에게 "용기를 가져"

"꼭 파란 신호에 길을 건너야 해"

그래놓곤 용기가 없어 포기하거나

빨간 신호에 후다닥 길을 건너기도 한다.


"우리 딸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잖아?"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펄롱의 아내 아이린의 말처럼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사소한 것들을

어쩌면 큰 무엇인가를 모른 척하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마침


좋은 사람들이 있지, 펄롱은 차를 몰고 시내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임을 알았고 왜 어떤 집에서 받은 사탕 따위 선물을 다른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렇듯 크리스마스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 면 둘 다를 끌어냈다.


펄롱은 어렵지 않게 아이를 데리고 진입로를 따라 나와 언덕을 내려가 부잣집들을 지나 다리를 향해 갔다. .
배로강이 자기가 갈 길을 안다는 것, 너무나 쉽게 자기 고집대로 흘러 드넓은 바다로 자유롭게 간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했다. 외투가 없어서 추위가 더 선뜩했다. 펄롱은 자기 보호 본능과 용기가 서로 싸우는 걸 느꼈고 다시 한번 아이를 사제관으로 데려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까? 펄롱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그걸 뭐라고 부르든- 거기 무슨 이름이 있나?- 밖으로 마구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 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살면서 옳은 뜻을 세우고

올바르게 살고 싶다.

누구나처럼


착하게 살고 싶고

바르고 곧게 행하고 싶다만

정작 선뜻 나서지 못한다.


불이익이 생기면 어쩌나

잠깐 눈만 감으면 되는데

망설이다 눈을 잠깐 감고 말기도 한다.


가끔 위선자라고 느껴질 때

옳은 뜻을 다시금 상기하고

두려움에 앞서 용기를 놓아 보지만 쉽지 않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이

다다른 안온함과 지리함 사이에서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다른 의로운 삶을

향해 용기있게 나아가는 이야기다.


펄롱의 인생 시계가

소란한 시간을 지나 나른한

오후 2시에 와 있는 듯하다.


하품도 나오고 슬쩍슬쩍

졸음이 파고드는 시간이다.

기지개를 켜자니 번거롭다.


포근한 안락함을 품은 채

의자에 기대어 앉아

이 평온을 깨고 싶지 않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는가.

이 평온을 깨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뀌어야 할 것 같은 운명을 느낀다면

평온함이 깨지더라도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옳은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펄롱처럼.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나는 펄롱과 같이 느끼지만

펄롱처럼 행동할 수 있을지?

그 의문을 해결하지 못한 채

쿡 찌르는 떨림만 남긴 채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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