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주
#1
첫 릴레이를 시작하고, 그 떨림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어렸던 것일까? 다만 사진 한장이 내 품에 있다. 계주를 하며 엄마가 기막히게 찍은 사진 한 장. 내가 상대방을 역전하는 장면을 찍었다. 필름카메라 특성상 발이 너무 빨라 흐리게 보였다. 그 장면을 보면 잠시나마 그 때로 돌아간 것 같아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운동회를 하며 기억이 남는 계주는 2번이 있다.
#2
하나는, 초등학교 2학년. 이미 같은 학년에서는 가장 빠르다는 이미지가 되었다. 그래서 조별 달리기 결과를 하지 않고도 계주 대표가 되었고, 똑같이 계주를 맞이했다. 그런데 운동회 날 아침부터 심상치 않았다. 체육복 바지가 너무 커서 계속 흘러내렸다. 운동회 내내 잡고 다녔다. 반에서 하는 달리기 정도는 1등을 했지만, 뭔가 계속 불편했다. 문제는 계주에서 발생했다. 마지막 주자로써 조금 더 긴 구간을 달려야 했는데, 이미 앞 주자들이 꼴등으로 달리고 있었고, 무조건 역전을 해야 꼴등은 면했다. 그나마 내 앞 주자가 한명을 제친 상황에서 3등으로 오고 있었다. 바지가 내려갈까봐 여전히 바톤을 받는 자세를 취하면서 바지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바톤이 넘겨졌다. 특유의 빠른 자세로 달리고 있는데 바지가 내려갈 것 같아 바톤잡지 않은 손으로 바지를 꽉 잡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완주를 했다. 다행히 꼴등은 면했지만, 역전을 하지 못해 속상했다. 그런데 운동회를 보는 사람들은 너무 재밌었나보다. 집에와서 엄마가 하는 말이 "바지잡고도 엄청 잘 달리더라, 사람들이 웃었어~" 하면서 현장에서는 재밌었다고 하더라. 그렇다. 난 잘 달리는데 바지때문에 그러지 못해 속상했다. 담임선생님도 경기가 끝나자마자 잘했다고 해주셨는데, 그날 밤 일기에 같은 내용을 적었다. 다음 날, 선생님이 일기에 코멘트를 달아주시고 별 도장을 찍어주셨다. '많이 속상했겠구나, 그래도 끝까지 달리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어. 다음 계주때는 더 잘할거라고 생각해' 그래도 날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기뻤다.
#3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전학 후 초등학교 5학년때다. 아무도 나를 모를 때, 계주를 뽑기 시작했다. 서로의 스펙을 알지 못하니, 다시 겨루게 되었고 당당히 1등을 하여 계주가 되었다. 당시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같이 지냈던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이방인이었고,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난 이방인이었다. 그렇게 계주로 뽑혀 다시 마지막 주자가 되었다. 5학년이라 그때의 긴장감은 확실히 느껴진다. 기존의 달리기를 나름 잘했다던 친구를 제치고 계주로 뽑혔기에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4개 팀 중 우리팀이 3등으로 달리고 있었고 하지만 격차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고, 역전을 한다면 운동회 우승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역전을 해야해서 확실히 쫄깃쫄깃했다. 신고있던 운동화를 벗고, 바지를 체크하고 다시 바톤을 받을 준비를 했다.
#4
바톤을 받고 달리기 시작하는데, 어릴 때 들리지 않던 함성이 들렸다. 코너부분에서 2등을 제친 순간이었다. 1등까지는 힘들 것 같았는데, 2등을 제치니 욕심이 나더라. 마지막 직진코스에서 1등으로 달리고 있는 팀과 동등하게 만들었다. 1등인 주자가 긴장했는지, 뒤를 힐끔힐끔 보며 달렸다. 그때 엄청나게 따라잡았다. 그리고 피니쉬라인은 내가 먼저 닿았다. 대역전이었다. 너무 빨리 달리니 피니쉬라인을 닿고 나서도 조금 더 앞으로 달리다가 뒤를 돌아보니 같은팀 친구들이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 날 계주를 끝내고 들었던 가장 좋았던 말은 '개교 이래로 항상 그팀이 이긴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이긴거다' 였다.
#5
달리기로 그러면 진로를 결정하지 않았냐고? 안그래도 육상부는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계주의 그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장비까지 갖췄지만, 공허한 곳에서 계속 달리기만 하는 것은 너무 지루했다. 그래도 운동회만 되면 눈이 아침에 저절로 떠지고, 맑은 하늘을 보면서 기분이 너무 좋던 기억은 나에게 어릴적 좋은 추억으로 자리잡았다. 누구에게나 행복한 순간은 있다. 그 시점이 다를 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