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부. 도시의 숨결, 골목길에서 나눈 말 없는 고백 (1)
서울의 가을은 유난히 차가웠다.
차가움은, 도시의 기억이 식어가는 방식이었다.
낮의 온기는 유리창에 스며 사라지고, 저녁의 바람은 콘크리트의 틈새를 스치며 낙엽의 부스러진 향을 흩뿌렸다. 하늘은 미세먼지와 구름의 경계가 흐려진 채로 뿌옇게 잠들어 있었고, 그 아래로 도시의 불빛들이 마치 인간의 의식처럼 깜박이며 서로를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프롤은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바람 속에는 젖은 낙엽의 단내, 오래된 도로의 아스팔트 냄새, 그리고 멀리서 풍겨오는 커피 향이 섞여 있었다. 마치 잊혔다가 되살아난 기억처럼, 과거의 시간들을 천천히 끌어올렸다.
그는 생각했다.
‘도시는 냄새로 기억된다. 냄새는 시간의 잔향이다.’
그는 천천히 골목 쪽으로 걸어갔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가을빛은 회색과 금빛의 중간 어딘가였다.
그 빛이 낡은 벽돌과 젖은 간판, 그리고 인파의 숨결을 스치며 흘러갔다.
그 순간, 프롤은 도시가 거대한 필름처럼 느껴졌다.
인간의 흔적과 시간의 그림자가 인화되는 한 장의 감광지.
서울의 오래된 거리들은 그렇게 그의 눈앞에서 다시 살아났다.
붉은 벽돌의 건물들, 전선줄의 미세한 진동, 네온사인의 깜박임,
그리고 그 모든 틈새를 채우는 사람들의 그림자들.
도시는 거대한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600년된 골목 끝에 에필이 서 있었다.
오래된 담벼락에 닿을 듯 서서, 고요히 하늘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흡사 도시의 호흡과 같은 리듬으로 존재했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었고, 그 가닥들이 빛을 흩뿌리며 얼굴을 스쳤다.
옆에는 작은 카페가 있었고, 그 창문 너머로는 노란 불빛이 새어 나왔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낮은 진동음과, 턴테이블 위를 도는 재즈의 숨소리가 섞였다.
모든 소리가 골목의 공기를 따뜻하게 데웠다.
프롤이 다가가자,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들은 서로의 눈빛을 통해 오래된 시간을 되살렸다.
사랑은 때때로 언어보다 조용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들의 침묵은 하나의 문장이었다.
“여기, 기억나?”
프롤이 물었다.
에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잊을 리 없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