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의 기대
건강이라는 말의 향기는, 늘 병원 냄새를 뒤로 두고 있다.
하얀 벽, 청진기의 차가운 감촉, 무채색의 복도.
그래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건강을 ‘아프지 않음’으로만 말한다.
그 정의가 어딘가 모르게 공허하다.
몸이 멀쩡해도 마음이 흐릿하다면, 그것은 온전한 건강이 아니다.
한밤중, 캔버스 앞에서 그림을 그리던 날을 기억한다.
새벽빛이 천천히 스며들고, 뜨거운 커피가 완전히 식은 그 시간.
몸은 분명 피곤했지만, 이상하게도 살아 있다는 감각이 또렷했다.
그때.
건강이란 기력도 있지만,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몸의 상태라는 것.
몸은 삶의 집이다.
벽이 조금 낡아도, 그 안에 불이 켜져 있다면 괜찮다.
삶이란 결국 완전함 보다는, 지속되는 예술이니까.
그 마음이 남아 있다면, 아직은 괜찮다.
행운에 대해서도 나는 오래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하늘이 내리는 우연이라 말하지만,
나는 행운을 그렇게 믿지 않는다.
행운은 준비된 평온이 기회를 만났을 때 피어나는 조용한 순간이다.
삶의 흐름 속에서 스치듯 마주치는 사람,
우연히 들어간 길모퉁이의 한 장면,
그 모든 것에는 나의 작고 보이지 않는 선택들이 스며 있다.
한 번은, 마포의 좁은 골목길을 걷다
비를 맞으며 우산 없이 들어간 국밥집을 기억한다.
김이 피어오르는 그릇 앞에서 한 숟갈 뜨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행운이구나.”
그날의 비, 그 시간의 우연, 그 한 그릇의 온기.
삶이 나에게 건넨 작고 정확한 위로였다.
이제 나는 내 사전에 이렇게 쓴다.
세상이 주는 정의는 언제나 크고, 불투명하고, 남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사전을 조금씩 고친다.
사랑, 성공, 부자, 멋짐, 건강, 그리고 행운.
이 단어들을 다시 쓰며 나는 점점 나 자신에 가까워진다.
살아간다는 건 그런 일이다.
남이 만들어둔 언어를 빌려 쓰지 않고,
조금씩, 조용히, 나만의 언어로 세상을 번역하는 일.
그 언어의 온도는 언제나 내 체온과 같다.
따뜻하고, 다정하며, 아주 느리게 살아 있는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