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랑의 물리학: 프롤과 에필〉

제2부. 카페, 향기 (4)

by 원성진 화가

[2부의 마지막 몽환적 장면]


카페의 조명이 완전히 꺼지기 직전.

프롤은 문득, 에필이 앉아 있던 자리 위로 시선을 올렸다.

그 자리에 그녀의 머플러가 남겨져 있었다. 아이보리와 회색의 중간, 겨울과 봄 사이의 색. 손끝으로 만지는 순간, 향기가 피어올랐다. 라벤더, 종이, 그리고 비의 냄새.


그러나 그 향기 속에는 낯선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가 아는 이 세계의 공기가 아니었다.

프롤은 천천히 머플러를 접었다.

그러자 천 위에 희미한 글자가 떠올랐다. 빛으로 새겨진 문장처럼, 읽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문장’.

“우리가 다시 만나는 시간은, 네가 나를 잊을 때.”

그 순간, 카페의 창문이 스스로 열렸다.

아무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커피잔 위의 김이 거꾸로 흘렀다.


밖의 하늘은 어둠이 아닌, 거대한 시계의 눈동자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 중심에서, 한 여자의 실루엣이 아주 천천히 돌아섰다.

에필이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무언가를 쓰려했지만, 손끝에서 흩어진 건 글이 아니라 시간의 빛이었다. 그 빛은 프롤의 얼굴을 스치며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손목 위에서 멈춰 있던 시계가 한 박자 늦게 ‘틱’ 하고 움직였다.

아주 짧은 순간, 그는 깨달았다.

그녀가 남긴 건 ‘시간의 열쇠’였다는 것을.

창밖의 유리에는, 에필의 마지막 문장이 희미하게 새겨졌다.

“내일, 이 자리에 내가 없다면. 그건 네가 나를 찾아야 할 시간이란 뜻이야.”


빛이 꺼졌다.

카페 ‘OHOOO’의 간판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그 자리에 남은 건 향기의 흔적과, 한 남자가 붙잡지 못한 시간의 조각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도시의 한쪽에서 또 다른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엔 단 한 문장.

“기억이 시작되었습니다. 3025년, 101일.”

프롤은 숨을 멈췄다.

세상은 다시, 조용히 되감기기 시작했다.



향기의 문장


카페의 불빛이 숨을 고를 때,

시간은 멈춘 듯 흐르고 있었다.

라벤더 냄새 속에서
향기는 그 문을 여는 비밀의 열쇠였다.


사랑은 기억의 반복인가, 망각의 연습인가.

“우리가 다시 만나는 시간은, 네가 나를 잊을 때.”

잊는 일은 사라짐이 아니라
다시 새겨 넣는 일.

빛이 역류하고, 시계는 ‘틱’ 하고 다시 숨을 쉰다.
그제야 그는 안다
사랑은 향기의 수학,
시간을 다시 조립하는 실험.


유리 위에 남은 문장 하나.
“내일, 내가 없다면, 그건 네가 나를 찾아야 할 시간.”

세상은 거꾸로 흐르고,
향기만이 앞으로 걸어간다.


<제3부에서 계속>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단편 소설] 초코파이 한입, 소주 한 모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