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기억의 미로 — 스쳐간 시간의 결(3)
도착한 강릉은 늦은 오후였다.
벚꽃은 이미 떨어져 날리기 시작하고, 붉은 벽돌 골목에 햇살이 길게 드리웠고, 먼바다 냄새가 바람을 타고 스며들었다. 그들은 손을 잡고 오래된 골목길을 걸었다. 손끝이 닿는 순간, 공기가 진동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이 두 겹으로 갈라졌다.
강릉의 거리 위로 또 하나의 강릉이 겹쳐졌다.
흑백의 빛, 공중을 달리는 열차, 낯선 언어의 간판들.
그들은 3025년의 강릉 위에 서 있었다. 단 몇 초의 일탈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 프롤은 확실히 보았다.
에필의 얼굴 뒤편으로 흐르는 미래의 기억.
그녀는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만남이 반복된다는 것을.
시간이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에필은 숨을 고르며 속삭였다.
“봤죠?”
프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당신도 알겠죠.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지 않아요.
당신은 ‘지금’에 있고, 나는 ‘기억된 미래’에 있어요.”
그의 이성이 그 말을 부정했지만, 그의 감각은 이미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의 존재는 시간의 뒤편에서 오는 파동이었다.
그날 밤, 호텔 방에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몸은 현실의 온도를 나누었지만, 그 온도 속에는 서로 다른 시간의 진동이 겹쳐 있었다.
사랑은, 물리적 만남이 아니라 시간의 공명이었다.
프롤은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그럼 우리 사랑은 결국 불가능하겠네요.”
에필은 조용히 웃었다.
“사랑은 언제나 불가능한 것 위에 서 있어요. 그 불가능함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죠.”
그녀의 말은 니체의 영원회귀를 떠올리게 했다.
모든 것은 반복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매번 새로운 예스를 외친다.
비극을 긍정하는 것, 그 자체로 삶을 사랑하는 일.
“우리가 다시 만나도, 또 헤어진다 해도, 그건 실패가 아니라 완전이에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창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오고, 부서지고, 다시 태어났다.
같은 파도이지만, 결코 같은 물결은 아니었다.
프롤은 그 바다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그래요. 다시 만나죠. 다음 생에도, 다른 시간에도.”
에필은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처음 카페에서 만났던 그날의 것과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3025년의 기억 속에서 본 그녀의 미소이기도 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다가, 서로의 눈 속에서 자신을 보았다.
두 시선이 교차하는 그 지점, 그곳이 바로 시간의 균열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