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여행의 빛 — 유럽에서의 멜랑콜리한 사랑(4)
며칠 뒤, 그는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물 위의 도시는 거대한 기억의 거울이었다.
흐릿한 햇살 아래, 건물들은 마치 반쯤 잠든 생명처럼 흔들렸다.
그는 골목을 걸었다.
물 냄새, 벽의 이끼, 그리고 바람 속의 그녀의 향기.
그 모든 것이 시간의 무늬처럼 얽혀 있었다.
해 질 녘,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종탑에 올랐다. 세속과 신성의 경계를 허무는듯한 풍광이 펼쳐졌다. 불어오는 바람에 모든 걸 내려놓고, 시간을 즐기는데.
갑자기. 머리 바로 위에서 온몸이 전율하도록 종소리가 울렸다.
콰앙!~~~ 콰앙!~~~ 콰앙!~~~
프롤은 자신의 육체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다시 침묵의 시간이 찾아오면서, 바람이 불었다.
바람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억해요, 프롤.
사랑은 언제나 흐름이에요.
우린 지금도 같은 강을 건너고 있어요.”
그는 눈을 감았다.
“그래요, 에필.
당신은 나의 빛이었고, 나는 당신의 그림자였어요.”
그날 밤, 그는 베네치아의 낡은 여관의 방에서 혼자 잠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다시 베를린의 거리로, 프라하의 다리로, 파리의 에펠탑으로 돌아갔다.
모든 기억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의 꿈속에서, 그녀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빛으로, 향기로, 파도로.
그는 다음 날 일기장에 적었다.
“사랑은 물리학의 법칙을 초월한다.
그것은 에너지처럼 형태를 바꾸며 존재한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
사랑은 시간의 굴절이며,
그 굴절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잃고, 또 찾는다.”
그는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붉게 타오르고, 도시가 물 위에 반사되어 있었다.
그 순간, 거울 위로 희미한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기다릴게요.
당신이 기억하는 모든 시간 속에서.”
프롤은 눈을 감았다.
빛이 그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그건 분명, 에필의 미소였다.
카페의 초침은 멈춘 듯 돌고,
그들의 눈빛은 이미 찍힌 필름을 되감는다.
프롤의 시선은 파동을 따라 흘러,
에필의 눈동자 속에서 과거를 본다.
라벤더 향이 바람을 스치고,
스쳐간 어깨가 기억을 되살린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안쪽으로 접힌다.
기억은 직선이 아니라, 나선의 숨결이다.
그녀는 말했다. “나는 기억된 미래에 있어요.”
그는 대답했다. “그럼 사랑은 불가능하겠네요.”
하지만 불가능 속에서만 사랑은 존재했다.
그 불가능이, 그들을 다시 태어나게 했다.
바다는 부서지고 다시 태어나며,
그들의 사랑을 흉내 내듯 반복한다.
두 시선이 교차한 그 지점,
그곳이 바로 시간의 균열이었다.
“당신은 내 과거 속의 미래,
나는 당신의 미래 속의 과거.”
그 문장 속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영원히 반복되는 빛 속에서 — 또다시, 사랑했다.
<5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