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국밥에 소주한병
아무리 앉아도 문장이 나오지 않고, 붓을 들어도 손끝이 허공만 더듬는다.
세상이 잠시 회색빛으로 바래진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재능이 사라진 게 아니다.
감각이 잠시 잠든 것뿐이다.
그럴 때는 억지로 무엇을 짜내려 하기보다,
다시 ‘느끼는 힘’을 깨워야 한다.
나는 그런 순간마다 시선의 높이를 바꾼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다가 바닥에 누워 천장을 본다.
낡은 천장 위로 빛이 번지고, 그 사이로 떠다니는 먼지가 은하처럼 반짝인다.
다른 날엔 산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본다.
멀리서 보면 건물들이 거대한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시선이 달라지는 순간,
세상의 구조가 바뀌고, 내 안의 감정도 함께 재정렬된다.
새로운 생각은 언제나 새로운 눈높이에서 싹튼다.
그리고 속도를 바꾼다.
빠르게 달리거나, 느리게 걸으며 몸의 리듬을 조율한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다 보면 머릿속의 막이 걷히고,
천천히 걷는 날엔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세상의 질감이 생생히 느껴진다.
빠름과 느림의 사이에서 문장은 다시 숨을 쉰다.
생각에도 호흡이 있다. 속도를 바꾸면, 그 호흡이 되살아난다.
마지막으로 감각을 바꾼다.
음악을 끄고, 내 숨소리와 발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물 끓는 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까지.
그렇게 세상의 미세한 결들을 듣다 보면,
내 안의 침묵이 깨어난다.
창작은 결국 머리로 하는 일이 아닌,
몸과 세계가 만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나는 내 안의 행복과 달콤함을 스스로 정의해 두었다.
행복이 필요할 때면, 공덕시장 돼지국밥집으로 간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국밥 한 그릇과 소주 한 병이면 된다.
그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 속에서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감각이 돌아온다.
그리고 달콤함이 그리운 날엔,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빗소리를 기다린다.
이불속에 몸을 묻고, 눈을 꼭 감은 채 그 소리를 듣는다.
그건 세상이 내게 속삭이는 온기 같은 것이다.
그런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삶은 다시 움직인다.
창작의 위기는 감각의 단절에서 온다.
그러니 억지로 작품을 밀어붙이기보다,
시선과 속도, 감각을 새로 써보자.
앉는 자세 하나, 걸음의 리듬 하나, 빗소리의 울림 하나로도
세계는 다시 낯설어지고,
그 낯섦 속에서 생각은 다시 피어난다.
창작이란 거창한 영감의 순간보다,
돼지국밥 한 숟갈과 빗소리 한 줄기 속에서 세상을 처음처럼 느끼는 일이다.
그때 멈췄던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