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명절이 뭐길래.
명절은 인간이자 한 여자를 지워버린다.
겨우 일년에 두번이라지만,
존재가 부정당하는 시간은 길고 깊다.
오로지 제사상을 준비하고 차리는 게 목적이 되어버린,
그리고 강요당한 믿음의 시간이 기준이 되어버린,
사람으로 관계하고 귀하게 여겨 서로 대접하는 게 아닌 행사 치르듯 일처리가 되어버린,
지난 10년 간의 명절이었다.
가게를 한다는 이유로, 그래서 휴일이 월요일이라는 이유로
우리 가족의 명절은 쉼이 없었다.
추석에는 차례를, 설날에는 제사상을 차려야 하는 상황에서
명절의 첫날은 언제나 각자의 할 일이 있었다.
1시간 30분 남짓 걸리는 거리에 사는 우리들의 배려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언제부턴가는 반찬을 해오라는 형수의 명령에
명절 새벽에 일어나 반찬 2~3개를 바리바리 싸들고 지하철과 택시를 타고 가야만 했다.
집에 도착하면 숨 돌리고 인사할 틈도 없이 현장에 투입되었다.
잔소리는 시작된다.
형수는 웃는 얼굴로 사악한 말을 던진다.
제사 음식을 준비하며 아내의 가정교육 이야기를 던지기도 하고,
'이씨 집안'의 만행이라며 당당히 흉을 보기도 한다.
잘한 게 있으면 (3살이나 많은) 아내의 엉덩이를 (실제로) 토닥이며 우쭈쭈 하기도 한다.
반말. 시작은 반말이었다.
반말에서 오는 노골적인 하대에는 존중이란 찾아볼 수 없다.
시작은 결혼 초기였다.
어느날 아내를 불러 세운 어머니의 소원이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반말이었다.
동서끼리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고 한 바람을 담은 게 반말이라니.
"그 때 거절하고 이야기 했어야 하는데,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 순간 더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히지 않은 아내와
그 이야기를 듣고도 아내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핑계로 시작된 댓가는 잔인했다.
신뢰와 존중이 없는 반말은 곧 고성과 욕으로 변했다.
가뜩이나 위계가 뚜렷한 결혼 문화에서 반말은 그마저 있던 안전장치를 해제했다.
'마음에 들면 반말로 친절하게 깔보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말로 무자비하게 난도질했다.'
아내는 그 긴 기간을 책임으로 버텨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며 견뎌냈다.
시댁과의 만남의 귀갓길은 언제나 통곡의 시간이었고,
나는 마음의 문을 잠궈나갔다.
두번의 큰 사건이 기억난다.
첫번째는 결혼 3~4년차쯤 임신 사실을 안 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았던 추석이었다.
그 때 아내의 몸은 좋지 않았고, 절대적 안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우린 서로 의논하고, 이번 명절에는 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흔쾌히 그러라고 한 어머니와의 통화 후 전화가 걸려온다.
형수는 아내에게,
형은 나에게.
형수는 큰며느리인 나를 무시했다고, 자기의 역할을 무시했다고 했다.
형은 왜 니 형수를 무시하냐고 했다.
고성과 쌍욕을 들었고,
임신 초기의 아내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충격을 받았다.
그 때의 순간이 트라우마로 남아, 우리 부부에게는 손윗 가족과의 통화를 할 때면 심장이 요동친다.
"니가 사과해라.
생각이 깊고, 더 어른스러운 너희가 사과해라."
결국 그 사단의 결말은 사과였다.
그렇게 우리는 사과를 했고,
아내는 존재를 지워나갔다.
두번째는 단절의 계기가 된 사건이다.
아들이 태어나고,
명절 때마다 반드시 '자고 가는 둘째네'를 원하셨던 부모님은
우리를 재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고 생색을 내셨다.
화장실 청소도 하고, 방도 정리하고..
그런데 그게 끝이었다.
명절 첫날 정신없이 음식을 하고,
추석에는 할머니 납골당에, 설에는 정월 초하루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냈다.
가족끼리의 추억을 만드는 시간 따윈 없었고,
그렇게 밤이 되면 형네는 근처의 자기 집으로,
우리는 부모님의 집으로 가 씻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다시 차례상을 차리기 바빴다.
그게 아이가 태어난 후 몇년동안 반복된 '명절엔 자고가기'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세가족은 아무도 잠을 못잔다는 것이었다.
특히 어디서든 잠을 잘 자는 아들은 새벽 내내 울고, 코피를 흘렸다.
그래서 단절의 날 바로 전 명절에는
고통스러운 새벽을 보내면서 선언했다.
우린 이제 여기서 잠은 안잘거라고.
부모님은 그러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역시, 그 때의 말뿐이었음을 왜 몰랐을까.
그리고 또 다시 명절이 되었다.
생신으로 모인 저녁식사를 마친 후 지난번 이야기를 들며 명절의 스케줄을 말씀드렸고, 또 알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며칠 후,
어머니는 아내에게 전화로 소리를 질렀다.
10년 동안 겨우 붙잡고 있던 줄이 위태롭게 보였다.
그렇게 난 위태로운 줄을 끊고, 아내를 시댁에서 분리해야 겠다고 결심했다.
생각해보면 결혼 후 명절이 즐거웠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가장 편안해야 할 것 같은 원가족과의 시간은 늘 가시방석처럼 불편했다.
무슨 말을 해도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상 의도를 의심받았고, 앞 뒤가 다르다는 전제가 깔린 계산적 관계가 이어졌다.
무슨 말을 하면 그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언제나 가족 중 누군가에게는 말과 행동의 일부가 잘려져나가 전달되었다.
그래서 말을 하는 게 힘들었다.
생각해보면 결혼 후 즐거웠던 적 뿐 아니라,
우린, 나의 원가족은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일이 있었던가?
제대로 대화하고, 소통해본 적은 있을까?
서로를 가족으로서 믿고 지지해준 적이 있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명절이 정말 싫었고, 지금도 싫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경험을 하게 한 아내에게 미안하다.
우리 사회의 결혼 문화에 화가 난다.
매우 불안했다. 나와 아내, 아이로 맺어진 가족 관계가 무너질까봐.
이 지경까지 왔다는 생각에 나를 자책한다.
저 깊숙한 마음 속, 단절의 타이밍을 기다려온 건 아닐까.
가족으로부터의 감정을 가감없이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