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욕구는 언제 높아질까? 나의 퍼포먼스가 낮게 평가되고, 회의에서의 발언은 무시되고, 의사결정에 기여를 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 때이다. 한마디로 존중 받지 못할 때 일에 대한 동기부여는 떨어지고 자존감은 낮아진다. 반대로 여러 의사결정에서 나의 발언에 힘이 실리고, 팀원들과 상사의 인정을 받으면 정말 일할 맛이 날 것이다. 회사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새로운 인력들이 많이 들어오게 되면서 조직의 구조도 계속해서 변화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회사에서 요구하는 역할과 기대수준도 점점 올라가면서 스트레스도 있었고, 계속해서 나만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포지셔닝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입사하고 퇴사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주변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역할과 영향력을 계속해서 개척해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오지라퍼’ 즉, 자신의 일을 해내는 것에만 몰두하지 않고 주변의 팀원 혹은 다른 부서에서 하는 일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내 일만 하기에도 바쁜데 이 사람들은 대체 왜 남들에게 오지랖을 부리고 다니는 걸까? 몇 년 간의 관찰 끝에 오지랖의 장점에 대해 공감하게 되었고, 회사에서도 실천을 하게 되었다.
다음은 회사에서 부린 대표적인 오지랖 리스트이다.
1. 사업 소개서에 들어가는 회사 비지니스 모델들의 시각화(직무와 무관)
2. 사업적 행사, 사내 회의 영상 촬영(직무와 무관)
3. 회사 소개 및 인터뷰 진행
4. 디자인 세미나를 개발자, 디자이너 대상으로 10주간 진행
5. 영화를 활용한 영어 스터디를 16주간 사내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직무와 무관)
6. 마케터, 사업부와 함께 데이터 스터디 진행
2년전까지 사업 소개서는 대표님이 들어갈 내용을 정리하고 디자이너가 시각적으로 예쁘게 만드는 식으로 진행이 되고 있었다. 대표님이 설명하는 비지니스 모델을 도표나 아이콘을 통해 시각화하는 부분에서 디자이너와 마케터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공모전과 스피치 강사를 활동을 통해PPT를 매일 같이 만들었던 경험을 살려, 비지니스 모델의 시각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내고 디자인 작업을 도와 사업 소개서에 들어갈 콘텐츠 제작을 돕게 되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던 일이지만 내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어서 디자이너도, 마케터도 많이 고마워했다. 그 이후로는 사업계획서나 서비스 소개에 들어가는 콘텐츠를 많이 작성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회사의 방향성과 상황 등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아주 높아졌다.
이외에도 직무와 전혀 상관 없는 영상 촬영에 오지랖을 부려, 해외 사업 행사에 따라가서 실제 사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글과 강연을 통해 회사의 비전과 서비스의 매력에 대해서 어필을 하고 다니니, 회사에서도 PR이 필요한 자리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나를 찾아오게 되었다. 이를 통해서 업계의 여러 실무자들에게 회사와 서비스를 소개할 수 있는 자리도 더 많이 생기고, 이를 보고 회사에 관심이 생겨 지원하는 분들도 종종 있게 되었다.
위와 같은 오지랖 덕분에 올해는 신사업을 맡아서 진행하게 되었다. 실제 스타트업을 창업해서 운영해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이 과정을 통해서 다른 업체들과 사업 미팅과 기획, 계약 등을 진행하면서 단순히 IT서비스를 기획하는 영역에서 벗어나 사업적인 부분들을 고려하는 PM으로 경험의 폭을 확장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몸값을 올리고 이직을 하는데도 도움이 될 뿐만아니라 장기적인 면에서 실제로 창업에 하게 되었을 때 필요한 경험들을 실패에 대한 부담이 적은 상태로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일은 사람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일을 뛰어나게 잘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나 커뮤니케이션을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 오래갈 수 없는 이유이기도하다. 많은 프로젝트의 경우 혼자하기보다는 여러 부서의 실무자들이 함께 협업하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에 업무를 요청하고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일은 일’이라는 생각으로 동료들에게 필요한 업무와 일정만 전달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많이 쌓지 않았었는데, 일이 원하는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처음에 고생을 했었다. 그 당시 회사의 총괄매니저였던 JC는 회사사람들 뿐만 아니라 회사 건물에 있는 다른 회사 사람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전형적인 오지라퍼였는데, 힘들어하던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일은 너 혼자 하는게 아니니 일만 할게 아니라 사람들과 대화해라. 그들에게 관심을가지고 너가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해라. 회사와 시장은 같다. 여기저기서 자신을 팔고 다른 사람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나중에 너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조언들을 받아들이고 실천한 덕분에 미국 회사에서도 잘 적응하고 풀타임 잡을 오퍼받을 수 있었고, 현재 회사에서도 업무적인 부분, 비업무적인 부분에서 오지라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업무적으로 동료들과 연결고리가 많이 생길 수록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을 짤 수 있다.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 회사 밖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관계로 발전되기도 한다.
참 똑똑하고 실력 좋은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행운임과 동시에 힘겨운 경쟁이기도 하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정보력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이것은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회사의 자금상황 방향성, 조직 구조 변경 등에 대한 정보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선택지는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오지라퍼들은 정보력을 바탕으로 본인이 생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나가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맥락적 사고이다. 맥락에 대한 파악은 회사의 사업과 서비스, 제품에 대한 히스토리를 모르고서는 불가능하다. 어떤 회사에서 억대연봉을 받는 슈퍼스타가 다른 회사에 갔을 때 똑같은 퍼포먼스를 낸다는 보장을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본인의 직무에서만 국한되지 말고 사업, 마케팅, 세일즈 등 여러 부서에 걸쳐서 히스토리와 레거시 등을 파악하자. 아이비리그 출신이나 10년차 경력자도 자문을 구하게 만드는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레거시 : 현재까지 남아 사용되고 있거나 현재의 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과거의 체계)
필자의 말
긍적적인 오지랖을 부려서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고, 다른 부서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훌륭한 태도이다. 하지만 너무 오버해서 과도한 지식자랑과 일하는 동료들의 일까지 방해하는 눈치없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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