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이완짹슨 Nov 25. 2021

대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연 (첫 번째 에피소드)

한국의 '비정상회담' 같은 프로그램이다.

'짹슨형! 방송 나갈래요? 작가님이 한국인 한 명 필요하다는데요!'

3년 넘게 살던 남부 도시 가오슝을 벗어나 수도 타이베이에 정착한 지 3개월 만에 기회가 찾아왔다.


<같이 살던 프랑스인이 놓아준 다리>

타이베이에서 어쩌다 같이? 살게 된 'Ku는 프랑스 사람이지만 영어와 중국어는 물론 한국어까지 능통했다. 자기 말로는 프랑스어를 제일 못 하는 것 같다고 했는데, 내가 본 외국인 중에 한국어가 제일 유창한 편에 속했다. 나와 같이 살 때만 해도 만 명이었던 유튜브 채널이 현재는 100만을 넘어서 대만에서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이 되었다. Ku's dream酷的夢- - YouTube (쿠의 채널명이다, 홍보 아님)


어쨌든, 기회는 생각지도 못 한 곳에서 찾아왔고 쿠가 다리를 놓아준 덕분에 작가님과 사전 인터뷰를 마치고 녹화 3일 전 낯선 중국어로 가득한 대본을 받아 들었다. 대본을 받아 든 순간 머리가 멍해졌지만 내 분량은 다행히? 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첫 방송이라서 배려를 해 준 것이었을까? 아니면 내 밥그릇을 나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일까?라는 혼란 속에서 녹화 당일을 맞이했다)



<첫 녹화의 기억>

녹화를 하루 앞두고 미용실을 찾았다. 깔끔하게 머리를 정리하고 노란 머리 아래로 새로이 자라고 있는 검은색 머리를 다시 탈색 해서 색깔을 통일시켰다. 대만에서 '외국인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 가 찾아왔으니 잘 보이고 싶었고 잘 해내고 싶었다. 그 첫번째는 '방송에서 튈 수 있는 모든 여건을 갖추는 것이었다.


이제 내일 가서 한바탕 휘젓고 오면 될 터였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현실은 내 생각과 달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방문하는 방송국 분위기에 녹화 전부터 살짝 주눅이 들어버렸고 그 영향이 녹화장까지 미친 듯하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카메라와 조명' 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을 보면서 설렘으로 가득했던 심장은 긴장감으로 존재조차 희미해졌다.


녹화는 사전에 받은 대본대로 진행이 되었고 맞은편 커다란 화면에서 대본이 나오고 있었기에 녹화 흐름을 따라가며 그저 내 순서만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고 대만의 국민 MC 샤샤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받아쳤다.


'처음에 한 세줄 정도까지는 말이다'


그때 그 순간을 상기시켜 보면 '피구왕 통키의 마지막 장면처럼' 귀에서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언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이명증처럼 '삐' 소리와 정적만이 감도는 듯했다.



<순간, 생각이 안 나는 대사 분량>

그래도 처음 줄 정도는 잘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중간중간 분위기를 살려 주기 위한 다른 게스트의 리액션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리액션에 나도 모르게 흠칫하면서 다음 대사가 머릿속에서 순간 사라진 것이다.  음, 한마디로 표현을 하자면 '사람이 너무 놀래면 움직이지도 못 하고 소리도 못 지른다'라는 말이 딱 그 상황에 들어맞는 듯했다. (나중에 옆에 앉았던 게스트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내가 한 5초 정도 영혼이 나가 있는 사람 같았다고 한다)


그래도, 경험이 풍부한 방송국 사람들답게 사전에 준비된 영상 자료를 먼저 시청하며 한숨을 돌렸다. (생방송이 아니라서 끊고 갈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흐름을 끊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내가 나오는 영상과 그 영상에 '응원 섞인 게스트들의 리액션' 덕분에 정신이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이후에는 대본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내 이야기를 했다. 대본에 내가 끌려가면 나답게 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뭔가 확실한 '눈도장을 못 찍은 것 같다'라는 아쉬움을 남긴 채로 녹화를 마쳤다.



<나를 다시 보는데 걸린 시간 1년>

녹화가 끝나고 작가님이 출연료라고 봉투를 하나 주셨지만 받기가 쑥스러웠다. "다음에 또 불러주실거죠?"라고 묻고 싶었지만 억지로 집어 넣었다. 아쉬움과 홀가분한 마음을 정리하며 방송국을 걸어 나왔다. 스튜디오의 조명과 다르게 타이베이의 하늘은 맑음 그 자체였다. 뒤늦게 목마름을 느껴 편의점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이킨 후에 나는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약 한 달 후 녹화 방송이 오늘 나간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나는 TV를 켜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에서 먼저 알아보고 캡처 화면을 보내주면서 자신감을 불어넣어줬지만 나는 풀 영상을 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그렇게 약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에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1년 전 악몽? 이 떠올랐지만 어쩌면,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친척 용기를 내었다. 그리고 지난 첫 방송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모니터링하기 위해서 1년 만에 나의 첫 방송 영상을 시청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음, 생각보다 잘 나왔네? 였다' 45분 방송에 내 분량이 5분 정도였으니 첫방송 치고는 나름 선방한 셈이었다.


【WTO姐妹會】2018-09-12 如夢初醒 我被韓劇騙大的!?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RU_0tdRvkaA&t=1386s

<22분 30초부터 등장한다. 그리고 '그게 거의 유일한' 내 분량이기도 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하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대만에서는 8월에도 군고구마를 먹을 수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