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이완짹슨 Mar 06. 2021

여행은 머무는 것,그러나 사는것은 일부가되는 것.

잠시 머무르는 것과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가끔 인터넷 기사에서 "헬조선에서는 못 살겠다" 라는 댓글을 접하고는 하는데 현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과 한국 사람의 관계는 마치 내가 너 때문에 못 살아! 라고 말하는 부모와 자식 관계의 것과 같은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때로는 삶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 우리는 떠나고 싶은 용기를 내어 본다. 

길지는 않지만 또 멀리는 못 가지만 아쉬운 대로 짐을 싸들고 떠나 체한 마음을 위로받고 돌아온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인생에서 남은 동력이 떨어져서 간당간당할 때 내 손에 쥔것들이 모래알처럼 빠져나가 버려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느껴질 때 가끔은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과 말을 섞는 것조차도 스트레스가 될 때 뭐 그럴 때들 말이다.



<떠나고 싶은 이유> 

우리는 각자만의 사연 속에서 다양한 이유로 힘겨워한다. 극복하는 방법이야 다 다르겠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여행으로 극복하기 시작했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쏟았던 열정이라는 동력이 떨어졌을 때, 최선을 다 했는데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 미래에 대해서 혼란이 왔을 때 심지어 집에서는 가족과 한 집에 있는 것도 괴로웠던 때. 그때가 바로 내가 여행이라는 것을 처음 생각하게 된 시기였다. 떠나야만 계속 숨을 쉴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아무도 모르게 떠날 준비를 했다. 

<미얀마 양곤에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기차 안에서>

위 사진은 2018년 양곤에서 찍은 사진이지만 정작 나의 첫 여행 사진은 단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 왜냐하면 아무도 모르게 준비했던 여행을 뒤늦게 알게 된 여자 친구가 나 몰래 여행 사진을 다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괜찮다. 비록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기억들이 생생하니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새로운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감과 용기를 얻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큰 다리가 되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여행이었다. 그저 여름이니까 휴가라고 생각하고 떠낫다면 혹은 그저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따라 떠낫더라면 얻지 못했을 것들은 지워져 버린 사진들보다 소중한 것들이다. 


처음으로 한국을 떠나는 시간은 낯설고도 설렘이 공존했다. 이렇게 말하면 '여행 전이 설레고 현지에서 낯설었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처음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정 반대였다. 나는 공항에서 처음 해 보는 수속 과정과 사전에 주문한 면세품을 찾는 일들이 너무나 낯설기만 했다. 오히려 처음 가보는 낯선 땅에서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설렘을 느꼈다. 아직은 더웠던 9월의 그 날. 무엇을 보든 신기했고 무엇을 먹든 맛있었다. 낯선만큼 현실을 벗어날 수 있었고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내고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짧은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 나는 더욱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물어보니 사람들은 그것을 '여행 후유증'이라고 말했다. 


여행 후유증 : 

후유증이라는 단어는 "어떤 일을 치르고 난 뒤에 생긴 부작용"이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여행 후유증이라는 단어는 따로 검색이 되지 않았는데 정리하자면 여행을 다녀온 뒤에 생기는 부작용 정도로 볼 수 있겠다. 

내게 찾아온 부작용은 '현실과 여행 사이에서 혼란이 왔었다' 즉, 내 몸은 현실로 돌아왔는데 아직 정신 상태가 여행 세계에서 돌아오지 못한 것이었다. 무엇이든 처음은 그런 법이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한참을 울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 이제 집 나갔던 정신이 돌아와서 나의 몸과 합체를 했다. 첫 여행의 잔상이다. 




- 여행 이야기 끝, 사는 이야기 시작 - 

<왜 그렇게 사서 고생해?라고 말하지 말아 줬으면>

누군가는 말한다. "집 나가면 고생이지"라고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여행도 한 일 년 하면 집이 그립지 않을까? 집만큼 포근하고 익숙한 곳이 또 어디 있을까?

내 30대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대만에서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대만이 좋아서였지만 그렇다고 '대만에서의 생활이 어찌 매일매일 좋았고 행복했다' 라고 말할 순 없다. 그래도 힘들었던 일들도 다 버텨낼 정도로 대만을 좋아했다. 라고는 말할 수 있다.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저 외국에 있으니 고생이라고 생각하는 건 관점의 차이에서 또 걱정스러운 마음에서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행복한 사람에게 불행하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달콤한 면만 보지 않았으면>

하지만 해외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행과는 분명히 다름이 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무수히 많겠지만 정말 하나만 말해줄 수 있다면 여행에서 좋았던 점만 생각하며 떠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여행은 머무는 것이지만 사는 것은 일부가 되는 것이다. 가까이는 국내 귀농 사례만 보더라도 그렇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곳에서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고생스러움을 유발한다. 그런데 여행자 같은 마음 가짐으로 오면 그 고생스러움을 대게는 견디지 못하고 돌아간다. 


그들의 일부가 될 자신이 없으면 그들과 이질감 없이 섞여서 지낼 자신이 없으면 영어가 세계 공용어라고 외치며 중국어를 공부할 의지가 없다면 또한 그들이 먹는 고수 향에 거북함을 느낀다면 그저 잠시 머물다 가면서 좋은 추억만 가져갔으면 한다. 그리고 원래의 일상으로 되돌아가면 여행에서 남겨진 추억 외에는 아무일도 없으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서른,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