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도 괜찮지만 알면 더 좋은 것들.
미국에서 자수성가하신 분이 출간한 책에서
"미국 생활에서 영어를 못 하면 영어를 잘하는 사람에 비해 1년에 약 2,800달러 정도의 손실을 볼 수 있다"는 통계가 있다.
라는 한 구절을 읽으면서 도통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는 생각에, 그렇다면 '나는 대만에서 중국어를 못 해서 생기는 손실은 얼마였을까?'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지난 일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몇 가지 기억들이 희미하게 떠 올랐다. 내가 읽었던 책에 나와 있는 사례와 동일하게 나 또한 맥도널드에서 뭔 소린지도 모르고 “네 네” 했더니 토핑이 추가되고 Large 사이즈로 음료수를 주문하는 바람에 발생되는 비용(물론 내가 먹긴 했지만)부터 중국어를 몰라서 생각 없이 지나쳤다가 발생되는 위약금 그리고 이번 달 가스 비용이 말도 안 되게 많이 나와서 전후 사정을 자세히 좀 물어보려고 하니 중국어가 안 되어서 군 말없이 내는 비용. 물론, 주변에 부탁을 할 수 도 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주변에 아쉬운 소리 하며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외에 할인 전단지를 받아도 그게 뭔지도 모르고 버려서 날리는 비용까지 포함하면 나도 만만치 않게 손실을 봤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물론 지금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아니다 싶은 상황에서는 할 말도 하며 가끔은 중국어로 상대방에게 웃음을 주며 대만 사람들과 친목도 쌓아가며 대만에서의 생활 만족도를 스스로 올리는 중이다.
그렇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해외에서 해당 국가의 언어를 모르면 생길 수 있는 일들과 언어를 알면서 생기는 좋은 것에 대해서 나의 경험담과 생각을 좀 나눠보고자 한다.
외국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의사 선생님을 찾는 것보다 현지 언어를 배우는 것이 빠르다.
간혹 대만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 한국어 가능한 병원 혹은 대만의 병원은 영어로 대화가 되나요?라는 질문들이 올라오고는 하는데 대만은 한인 사회가 미국, 캐나다, 호주처럼 크게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공급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 안에 작은 한국이라고 불리는 LA 한인 타운의 경우 영어 못 해도 한국어로 음식을 주문하고 병원을 가도 한국어로 내가 아픈 곳을 자세히 설명하고 그에 따른 진단 또한 한국어로 들을 수 있지만 내가 사는 대만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한인 거리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떡하면 좋을까? 언젠가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화교가 의사 선생님이 될 수도 있지만 이건 불 확실한 기대일 뿐이며 만약에 실제로 그렇게 된다고 해도 당신이 원하는 진찰 분야가 아니거나(이가 아픈데 이비인후과 선생님이 진료를 할 수는 없다.) 전혀 다른 지역에서 개업을 하게 된다면 그다음에는 또 어떡하면 좋을까? 매번 동네 병원 나 두고 저 멀리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외국에서는 더더욱 나에게 맞춰주길 기다리기보다 맞춰가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조금 더듬거려 말해도 상대방은 알아듣는다. 외국인이 한국어 더듬거려 말해도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아는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 타지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의사를 찾는 건 무리라는 것을 알아서일까? 그럼 두 번째 옵션을 꺼내 드는데 "그럼 대만은 영어가 어느 정도 통하나요?"라는 질문이다. 이 또한 본인은 기본적인 영어 회화가 된다는 전제하에 (잘하지 하더라도 중국어보다 영어가 익숙한 것도 있다) 하는 질문일 것이다. 물론 영어가 세계적인 공용어임에는 이견이 없지만 전 세계에는 영어를 제외하고도 6,000가지의 언어가 존재를 하고 100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언어만 해도 250가지가 존재한다. 즉, 대부분의 나라는 고유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에 미국이나 영국처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있어도 특정 국가의 모든 사람이 영어를 잘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국가에서 본인의 의사 표현이 필요한 상황에서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영어를 구사하면 도움은커녕 상대방이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조금 서툴더라도 중국어로 "나는 중국어를 못 합니다. 혹시 영어로 대화가 가능할까요?라고 먼저 시도를 해 보는 건 어떨까? 번역기는 이럴 때 쓰는 것 아닐까?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대만에서 간혹 영어로 대화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을 하고는 하는데 이런 경우 크게 2가지 상황이 발생한다. 첫 번째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과 두 번째는 반대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다.
이 2가지 상황에서는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하더라도 대화의 깊이는 확연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서 내가 미국 인하고 대화를 하면 내가 영어를 조금 못 해도 상대방이 나를 배려해주고 이끌어 줌으로써 대화의 소득이 있고 상대방이 나의 이야기에 공감을 해 주었다는 사실에 후련함이 있다.
하지만 나의 영어 수준과 비슷한 대만 사람(혹은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하게 되면 대화가 전체적으로 단조롭고 분위기도 점점 무미건조해져서 시간이 흐를수록 할 말이 점점 없어지는데. 정확히는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단어가 제한적인 상태가 되는 것이다. 서로의 의사는 충분히 확인을 했지만. 하지만, 그뿐이다.
즉, 대화를 하기는 했는데 뭔가 답답함이 가슴속에 자리 잡고 숨어서 나오지 않는 것 같다. 화가 날 때 욕도 한국어로 해야 속이 시원하지. 영어로 욕 하면 그냥 아무 감정 없는 외침이라 후련함이 전혀 없다.
그런데, 위에 말한 2가지 대화 상황 중에 후자의 상황으로 대화를 하는 커플이나 부부(국적이 다름)를 본 적이 있는데 이런 경우 보통은 한쪽이 배우자의 모국어를 습득해서 대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서로 영어로 대화(위에 언급한 두 번째 상황에 해당)를 하는 커플이나 부부들도 종종 있다.
내 경험담을 비추어 보면 그들은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의사 전달만 하는 정도이다. '대화를 끌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본인이 생각을 본인 영어 수준에 끼워 맞추다 보니 대화의 수준 또한 본인이 아는 어휘나 문법의 수준 내에서 맴돌게 된다. 허심탄회하게 속 시원한 대화가 오고 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대화를 할수록 공감대가 형성이 안 되니 관계 유지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만날수록 답답함만 쌓이는데 또 만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사춘기 자녀가 아버지에게 용돈 필요할 때만 말을 거는 것처럼 대화는 건조해질 따름이고 커플이나 부부의 경우 애정 전선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상호 간 "신뢰 형성의 시작은 대화"이며 신뢰는 인간관계의 첫 단추이다. 그리고 그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무한하다. 단순한 예를 들어서 언어를 할 줄 알면 자주 가는 편의점 직원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그 직원과의 관계가 훗날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조차 시도하지 않는다면 인간관계는 늘 제자리일 수밖에 없다.
한인 타운이 존재하지 않는 대만이라는 국가에서는 소수의 한국인이 필연적으로 대다수의 대만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살아가야 할 수밖에 없고 외모 또한 유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 10분만 서성이고 있으면 현지인으로 생각하고 길을 물어보는 사람도 있는 곳이다.
오늘 이 이야기는 해당 국가의 언어를 못 해서 발생하는 유형적 금전적 손해로 시작했지만 마무리는 금전적 손해에 대한 이야기보다 보이지 않는 얻음의 가치를 말하고 싶었다.
다양한 인간관계는 수학적 수치로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1년에 얼마의 이득이 발생하고 손해가 발생한다고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좁은 것보다는 넓은 것이 좋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국제결혼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지만 해외 여행자 수의 증가만큼이나 젊은 세대들의 국제결혼 비율과 그 국가의 폭도 이전보다 넓어지고 있으며,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우리의 지난 10년 사이의 생활 방식은 많이 바뀌고 편리해져서 그래서 또다시 10년 후에는 외국어를 공부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발전된 번역기가 스마트 폰에 수많은 어플 중에 하나로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대화의 목적은 소통"이고 소통을 하는데 다른 수단이 끼어드는 건 아쉽게만 느껴질 듯하다.
물론 당신이 중국어를 못 해서 생기는 좋은 점도 있을 수 있다. 중국어를 못 해서 거리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나에게는 아직 없는 경험이지만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커플이 되는 경우를 본 적도 있다. 하지만 몰라서 도움이 되는 것보다 알아서 도움이 되는 일이 더 많지 않을까? 그곳이 적어도 내가 터를 잡고 살아가려고 하는 나라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