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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완짹슨 Jan 02. 2022

오늘도 버스를 타는 대만 장애인들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

대만에서 살면서 참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사람 간 벽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이 말의 의미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사람과 사람이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이나 성별 혹은 지역 때문에 생기는 장벽이 없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두 번째는 국가별 혹은 일반인과 장애인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나 벽이 없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대만 사람들 특유에 몸에 베인 친절과 배려 덕분이었는데 특히나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인상적인 부분은 장애인을 배려하는 문화였다. 기본적으로 나처럼 대만 모국어가 유창하지 않거나 행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한데 그 시작은 친절함과 배려 외에도 삶 속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대만에서 장애인의 생활을 지켜보며

1인당 오토바이 보유수가 제일 많은 국가지만 장애인들에게는 대중교통이 유일한 이동 수단이다. 그래서 대만 정부는 장애인을 위한 저상 버스 보급을 추진 중인데 이는 정말 칭찬해 주고 싶은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정부의 역할이고 이것이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협력 또한 필수적이다. 그런 면에서 대만의 높은 국민성은 본받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장애인이 탑승 시 버스 기사님이 직접 내려서 탑승을 도와준다. 승객들도 묵묵히 기다려준다>


타이베이에서 지하철로 10분 거리에 있는 신베이 최고 상업지구 반치아오 역은 한국의 서울이나 서울의 도쿄처럼 항상 붐비는 지역이다. 나는 대만 생활 말미에 1년 정도를 이곳으로 출근했었는데, 사진 속 모습처럼 장애인이 버스 탑승하는 과정을 종종 볼 기회가 있었다.  (하루는 조심스럽게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어서 촬영을 시도했다) 



익숙해 보이는 기사님과 묵묵히 기다리는 시민들

천천히 버스가 들어왔고 휠체어를 타고 있는 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낯선 경험이었던지라 처음에는 저분도 버스를 타시는 건가?라고 생각을 하려는 찰나에 버스에서 기사님이 내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기사님은 익숙한 듯 저상 버스에 장착되어 있는 발판을 꺼내셨다. 그리고 휠체어를 탄 분이 탑승을 하고 발판은 다시 버스 안에 안전장치로 단단히 고정시키기까지 약 3분 정도 소요가 되었다. 버스가 한 정류장에 체류한 시간 치고는 제법 긴 시간이었지만 아무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삼분이라는 시간>

2021년도 훌쩍 지나가는 것을 보면 삼분이라는 시간은 분명히 짧은 시간이다. 그렇지만 엘리베이터를 타면 십 초도 못 기다리고 닫힘 버튼을 누르고 커피 자판기에 커피가 나오기 전부터 손 넣고 기다리고 최근에는 '유튜브 건너뛰기 광고' 5초도 힘들어하는 민족에게 3분은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닐 것이다. '혹시 그거 아는가?' 우리가 제일 즐겨먹는 육개장 익는 시간을 3분으로 정한 이유가 3분을 넘기면 한국인들이 못 기다려한다고? 오죽하면 대한민국에 '3분 카레'가 출시되었을까?


이 상황에서 사람마다 느끼는 생각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 시선에서 위 모습을 '느림의 미학'으로 묘사하고 싶다.  


요즘 인스타 핫플이나 맛집들을 보면 추운 날씨에 기다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기의 즐거움을 채워주기 위한 기다림은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상으로 복귀 후에는 삼분이라는 여유도 찾기 힘들어 보인다.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기다림과 바쁜 삶 속에서 기다림은 본질이 다른가 보다.



일반人 장애人, 같은 사람이라는 존재

<대만 기차 안, 장애인이 탑승 시 역무원이 미리 대기하고 있다>

물론 한국도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 정책이 잘 되어 있고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태도는 아직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개인의 생각이 다르고 관점 또한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맞고 틀리다. 옳고 나쁘다'라고 말할 순 없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은 우리가 매일 손을 씻고 열심히 마스크를 착용하고 방역을 위해 주의하는 것처럼 더 노력해서 나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으니까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고 지내는데 그것은 '나는 그렇게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의 오류이다. 평생 부자가 하루아침에 돈을 다 잃어서 거지가 될 수도 있고 유망 전도한 축구 선수가 불운의 부상으로 평생의 꿈을 포기하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 어떤 당사자도 그런 최악의 결과를 예측하지도 또 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YOLO는 미래보다 현재의 충실한다는 것이고 그 안에는 불확실한 미래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조금은 넓은 범주에서 세상을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세상은 따뜻해서 살만한데 너무 치열하게 살다 보면 차가워지기 마련이다.  


시각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 키오스크, 여전히 미미하기만 한 저상 버스 보급률 등. 우리 사회는 아직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다. TV에서 사고 혹은 학대로 신체 일부가 절단된 채 살아가야 하는 동물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치 못 하면서 우리는 사람이 동일한 장애를 가지고 있을 때는 배려보다는 배척이 앞서는 분위기이다.


한국 전쟁 이후에 '이제는 먹고살만하다' 를 넘어서 대부분은 잘 살아가고 있는 현재. 그러나 이는 신체에 큰 불편함이 없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어쩌면 장애인들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어렵고 두려운 세상일지도 모른다.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과 동일 선상에서 시작할 수는 없더라도 시작점이 같지는 않더라도 그들을 일방적으로 냉대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한겨울 길거리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유기견 혹은 길고양이의 소식을 들으면 안타까움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피부색이 다르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같은 인간임에도 멸시를 하고 차별을 하기도 한다. 적어도 우리가 피부색이 바뀔 일은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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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무래도 낯선 곳에서는 필연적으로 의지할 곳을 찾게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때 만나는 사람들로 인해서 그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각인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누군가는 대만에 대해서 부정적일 수 있겠지만 저는 그 반대였기에 어쩌면 제 시선이 누군가에게는 편협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고 기억하는 대만은 그저 "사람 간 벽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다시 한 줄로 정의를 하자면 '사람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편견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짧은 일정의 여행에서 느끼는 것과는 조금은 결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저 대만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입장에서 정리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장사의 신이다'를 읽은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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